명구는 진열실 안으로 몇발자국 들어서자 단번에 자기를 손짓하는 누나를 알아본다.
『누나, 굳모니잉』
『쉿』
그녀는 재빨리 손가락을 입에 갖다대어 한손으로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명구는 흠칫놀라며 무엇에 들킨것처럼 사방을 휘휘 둘러보며 창밑으로 다가왔다. 누나의 표정을 보아, 주인님이 자기를 때려잡으려고 공장안에서 기다리고 있는것만 같다.
『누나, 왜요? 』
명구는 기어드는 목소리로 물었다. 사방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처럼 온몸이 압축되는것만 같다.
그녀는 품에서 쪽지를 꺼냈다. 그리고 오백원을 한 장 명구손에 쥐어주고
『명구야 너 누나말 잘듣지? 』
명구는 난생 처음으로 거액의 심부름값을 받았으므로 오금이 저렸다.
『예』
『이 쪽지 박형한테 전하고 와 그리고 누구한테도 말해서는 안돼』
『예』
『급히 갔다와』
그녀는 명구한테 날개를 달아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명구는 누나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도시락을 내버려두고 손살같이 달려나간다. 그녀는 창문을 닫고 조금 진정했다. 이젠 쪽지가 토마스의 손에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데.
직공들이 하나 둘 들어서기 시작한다. 그들은 안마당으로 가로 질러가면서 주인이 방에 있든 밖에 있든 아침인사를 했다.
그녀는 어머님을 대적할 궁리에 몰두하고 있었다. 어머님은 좀처럼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었다. 더구나 오늘은 아버님의 부탁도 있으니 더욱 곤란하게 되었다. 그녀는 쪽지가 토마스에게로 전달되는 이 순간에 머리속이 혼란해질 수 밖에 없었다. 도무지 묘안이 떠오르질 않는다. 그녀는 다시 성모님 상본을 쳐다보았다. 흰 면사포를 쓰시고 자애로운 미소를 머금은 성모님 얼굴.
성모님, 마지막 관문입니다. 제발 여기만 통과시켜 주십시오.
『젬마야, 너 목욕 좀하고 오지그래』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타이르듯이
『눈에 들도록 엷은 화장도 좀해야지』
그녀는 잔뜩 초조한 마음이었으므로 어머님의 말에는 별생각없이
『어머님은 목욕 안하세요? 』하고 물었다. 어머니는 딸의 말을 듣고 자신의 차림새도 중요하게 생각되었다. 모녀가 함께 손님을 대할 것이므로 보다 더 차림새에 신경을 써야 할꺼야.
『참 그렇구나 젬마야 내가 먼저 목욕을 하고 올 테니까 좀 기다려.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
그녀는 껑충 뛰었다. 이 이상 기쁜일은 일생을 두고라도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성모님께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게되었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감사의 기도를 바쳤다.
어머니는 목욕을 하기위해 곧 나갔다.
나는 간밤에 몹시 울었으므로 아침엔 눈이 조금 부어있었다. 젬마가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게된 사실이 내겐 너무 충격적이었으므로 차마 죽어버리지 못하는게 한이었다. 물론 예전에도 이같은 사랑은 느껴왔지만 지금에 와선 생명의 한 요소처럼, 그녀를 잃고는 제대로 명을 이어나갈 것 같지가 않았다. 어쩌면 이대로 죽어버릴지도 몰랐다. 더구나 그녀에게 고백이란 것도 한마디 못 건내보고 물러선다는 것은 죽지도 못하게 하는 비참 그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신랑 될 사람과 결투라도 한번 해볼까 싶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이기면 그녀를 찾게되는 것이고 지면 깨끗이 죽는 것이다. 얼마나 신성한가. 그러나 나는 결투조차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미치광이 같은 마음이 생겨서였다. 즉 사랑했던 사람의 행복마저도 위하자였다. 먼발치에서 진달래꽃이나 꺾어들고 가버린 님을 기원하자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못이룬 사랑을 슬퍼하며 혼자 살아보자는 각오가 세워지기까지 나는 얼마나 심장을 쥐어짰는지 모른다. 나는 방문을 안으로 걸어잠갔으며 나만의 심장을 도래하고저 어머님도 잊어버렸다. 끝없이 환상을 떠올리며 밤의 황량한 어둠을 헤매었다. 빛이라는게 있을수가 없었다. 나의 빛은 결국 그녀였으니까.
지옥을 읊은 단테의 노래가 나의 귀에는 메아리치고 있었다. 물론 노래 그 자체는 절망이었지만 나에겐 동감에서 오는 그 어떤 위안조차도 느낄수가 있었다. 나의 이같은 쓰라림을 주님은 내버려두는가 싶어질때 나는 스스로 침대다리에 목을 걸고 비꼬았던 것이다.
그렇게 장시간 있으니까 의식이 몽롱해져버리고 아마 그렇게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얘야 누가 찾아왔구나 얘야! 』
나는 어머님의 부르는 소리가 재빨리 의식되지는 않았다.
어머님은 부르다가 마지못해 문을 쿵쿵두르렸다.
나는 간신히 몸을 일으켰는데 죽지않고 살아났음이 신기했다.
『형님 누나의 급한 심부름이에요! 』
명구의 외치는 소리가 비로소 나의 귀에 의식되었다. 그러고도 잠시 멍하니 앉아있었다.
『형님! 누나가 쪽지를 줬어요! 』
문에 발린 창호지가 푹 찢어지면서 명구의 손이 쑥 기어들어왔다.
나는 몸의 기능이 원활해짐을 느끼며
『쪽지? 』하고 최초로 말을 꺼냈다.
『네, 어서 펴봐요』
명구의 목소리가 잔뜩 다급했다. 사태가 매우 급박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아챌수 있는것이다.
나는 쪽지를 펴보았다. 그리고는 미친사람처럼 외쳤다.
『어머니! 어서 가방줘요! 어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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