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교도소 소임을 맡고 교도소문을 찾은 것은 1972년 11월 어느날 오후였다.
과거 더많은 시간으로 소급해 본다면 신학교 시절에 학생의 신분으로 일년남짓 광주교도소에 출입한 경험이 교도소 사목을 담당한 나에게는 다소 마음의 여유를 갖게한 것 같기도 하다.
내가 교도소 사목을 담당하기 5년전부터 자진해서 교도소를 찾아 따뜻한 사랑과 많은 관심으로 봉사해온 대구포교 성베네딕또회 배 바르나바 수녀님과 함께 동행했었다.
감격스런 마음으로 복음서와 교리서를 갖고 수녀님과 함께 교도소문을 들어섰다. 마음은 무거워지고 밀려오는 감회는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사회안에 산발적으로 흩어져서 사회를 어둡고 두려움으로 몰아넣던 장본인들이 집결한 죄의 산더미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현실의 부조리와 생활의 빈곤때문에 빚어진 삶의 용맹스런 투사(?)들의 집단인것 같기도 했다. 물론 이곳은 비겁한 투사들이요 만용의 기수들이 모인 인생수련원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시선을 모으는 사람들에게 신부의 고유한 체취를 느끼겠금 점잖고도(?) 침착한 걸음으로 교도관을 따라 교도과장실로 들어섰다.
이미 배 수녀님은 낯익은 장소요, 다년간 활동한 곳이기에 행동 하나하나가 으젓하기만 했다. 그러나 나는 조금후 교도소 사목의 첫장을 열어야할 일들이 가슴을 설레이게 하며 걱정이 태산같기만 했다.
이렇게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동안 드디어 가톨릭 종교담당 교도관의 안내를 받아 미사준비가 된 강당으로 갔다.
미사에 참석한 수인들의 수는 대략 3백명정도였다. 미사전 20여 명에게 고백성사를 주고 교도소에서의 첫미사를 집전했다. 미사후 40분 정도 교리강좌를 하고는 다시 교도과장실로 안내되었다.
미사에 엄숙한 마음으로 참여하는 수인들의 진지하고 성실하던 모습을 마음안에 엮어가면서 멍하니 앉아있으니 과장실의 문이 열린다. 고개를 들어 시선을 문쪽으로 향하니 그때 두 손목이 결박된채 교도관의 안내로 과장실을 들어서는 극형수와 눈이 마주쳤다. 과장실에 안내된 사형수는 고개를 떨어뜨린채 나의 맞은편에 조용히 앉았다.
『고생이 많으십니다』라고 말을 걸자『신부님, 감사합니다』하면서 고개를 들고 나의 얼굴을 쳐다본다. 흔히 생각하길 죄수, 특히 사형수라 하면 보통 사람의 모상과는 다르게 연상하기가 일쑤다. 그래서 얼굴이나 몸매도 험상궂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통례다. 그러나 나와 처음으로 대면한 서 스테파노는 넓고 둥근얼굴 귀밥이 축느러진 미남형의 어질게 생긴 무척 호감이 가는 인상이었다.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할지 몰라 한동안 망설였다.
더 이상의 침묵이 흐른다면 말문열기가 더욱 힘들것 같아서 낮고 부드러운 음성으로『세상에 사는 모든 인간들은 전부가 죄인이 아니겠습니까? 잘못에 대한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잘못(죄)을 저지르고 산다는 점에서는 모든 사람이 한결 같을것입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나는 죄와 인연이 없는 사람이라고 자신있게 주장한다면 그 사람은 거짓말쟁이요 사기꾼임에 틀림없을것』이라고 전제해 놓고 너무 긴장하지 말고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눠보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그와 나의 균형있는 대화는 도저히 기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의 일방적인 이야기로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그는 줄곧 듣고만 있었지만 한마디로 놓치지 않을세라 성의있게 듣고있었다. 이러한 그의 자세는 나에게 무척 자신을 갖게하고 용기가 우러나오도록 했다. 나는 그의 성의있는 태도에 마음 깊숙히 감사의 정이 용솟음쳤다.
그래서『나의 말을 열성으로 들어주셔서 무척 감사합니다. 이제 나의 이야기는 이정도로 하고 이야길 듣겠습니다.
무슨 말씀이든 상관없으니 이야길 해보십시요』하면서 말하기를 권했다. 아무 말없이 나의 얼굴을 한참이나 쳐다보면서 말할듯 말할듯 하다가 다시 고개를 떨어뜨리며『신부님, 신부님의 말씀을 더 듣겠습니다』하면서 흩어진 자세를 바로 잡고서 나의 이야기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인생은 너무나 짜증 나는것 같애요 … 』하면서 이야길 계속 했다. 『왜냐하면 인생은 굴곡이 많은 탓이겠지요. 굴곡의 곡선이 나를 인생이란 틀안에 결박할때 나는 행복도 불행도 맛보는 것이지요. 안타깝게도 고통과 불행의 상황이 행복과 즐거움의 상황보다 더많은 회수로 더 무거운 잔인성을 띠고 나를 괴롭히니까 이것이 보통 짜증나는 일이 아니지요.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이같은 행불행의 엄청난 불균형속에 인생은 수련되고 더높은 인격이 영글게되니 심히 어려운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함으로써 우리 인간은 진정한 행복을 더 깊게 아는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되는군요』여기에 까지 이야기했을때 이미 저녁식사시간이 되었다고 담당 교도관이 찾아와서 양해를 구했다. 악수를 나누면서 다음 올 때까지 건강에 조심하라고 부탁하니『신부님 다음에 오실때도 꼭 만납시다』하면서 아쉬움을 안은채 헤어졌다. (계속)
지금까지 여형구 신부님께서 수고해주셨습니다.
이번호 제4화부터는 전 대구대교구 교도소 후원회 지도를 맡으신 정광영 신부님이 집필해 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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