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물어볼 겨를도 없이 마치 흡인력에 빨려든 듯이 가방을 챙겨내었다.
나는 문고리도 깜박 잊은채 문을 열려고 덜컹댔다.
『안으로 잠겼잖아요!』
명구는 밖에 있어도 알 수 있다고 소리쳤다.
나는 그제야 문고리를 벗기고 방을 뛰쳐나갔다.
어머니는 가방을 급히 돌려주며
『쪽지에 뭐라고 씌었니?』
물었다.
『말할 여유가 없어요』
나는 간밤에 입은옷 그대로 잤으므로 시간을 단 일초라도 소모하지 않게 되었다.
명구는 이미 대문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나는 가방을 손에 쥔채
『어머니 편지하겠습니다』
급히 말하고는 구두를 신고 내달렸다. 흡사 한쪽 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한쪽 발이 전진하는 것이었다.
길 가는 사람들이 이상스러워서 어이하고 소리지르는 것도 귀에 들어올리 없었다. 나는 꿈이 아니기를 바랬다.
만약 꿈이라 해도 좋았다.
그녀는 창문을 열어놓고 있었다. 토마스가 들어닥치면 눈깜박할 사이에 챙겨놓은 물건들을 가방에 넣을 것이다. 그리고는 가방을 창문으로 해서 토마스에게 건네고 자기는 방문으로 해서 신발장의 신을 꺼내신고 달려나올 것이었다. 이 같은 일들은 벌써 초안이 잡혀있었으며 실행만 하면 되는것이었다. 그녀는 다시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어머님이 목욕하러간지 꼭 이십분. 어쩜 어머니는 이십분만에 목욕을 끝내고 올지도 몰랐다. 그녀는 이제 발을 동동굴리고 있었다. 맥박도 갑절이나 더 뛰었다. 모든 사물들이 북이 되고 그녀는 북위에 얹힌 깨알처럼 동동 뛰었다. 북치는 자는 자꾸만 북을쳤다.
그녀는 북의 타음에 실려 자꾸만 동동 뛰었다.
일칸의 직공들이 명구를 들먹인다.
『그 자식 제일 먼저 나오는데 오늘은 왠일이지?』
『누가 데릴러가봐』
『조금만 더 기다려봐요』
『새끼 말안들을테야』
『이것만 짜르고 곧 나갈께요』
김군이 호통치는 바람에 견습공은 급히 톱질을 해댔다. 톱질소리가 급박해질수록 그녀의 가슴은 양철지붕에 소나기 퍼붓는 소리를 낸다.
그녀는 커텐자락을 입에 물고 있었으며 야적야적 깨물었다. 눈은 거침없이 출입국 쪽으로 지켜보며 마음으로는 성모님과 토마스를 번갈아 부르짖고 있었다.
토마스는 어느 저택앞을 내달리고 있었다. 마침 아침 배설을 위해 나온 세파트가 달려가는 토마스를 보았다. 가방을 들고 후다닥 달려가는 사나이가 개의 눈에는 아무래도 수상쩍었다. 세파트는 목에 사슬도 끌려겨있었다.
『커엉!』
세차게 한번 짖고는 질풍같이 토마스의 뒤를 쫒는다. 토마스와 개와의 거리는 십오미터 남짓되었다.
토마스가 제 아무리 재빨라도 세파트를 능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토마스는 뒤에서 세파트가 덤벼든다는 것은 추호도 알바가 없었다.
토마스보다 먼저 집을 나온 명구는 출근이 늦다고 주인한테 꾸중듣지 않기 위해 분주히 뛰었다. 그는 저택의 한골목 어귀에서 오줌이 마려워서 멈춰섰다.
명구는 형님이 곧 오겠지하고 저만큼 뒤쪽을 바라보았다. 명구의 눈에 그 광경이 위태롭게 보였다. 세파트가 허옇게 이빨을 세우고 불과 삼미터의 거리에서 형님을 물려고 하지않는가. 명구는 바지를 추슬릴 틈도없이 돌을집어 들었다. 항상 시냇물을 건너다니는 그는 시냇가의 자갈을 무수히 돌팔매질해 왔던것이다. 명구는 개를 향하여 힘껏 돌을 날렸다.
『캥!』
세파트는 턱을 얻어맞고 비칠거렸다. 명구는 그제야 후유하고 숨을 내불고는 바지를 추슬렸다. 그녀는 전신에 땀이 쏟아졌다. 눈이 한치나 기어든것 같았다. 몸은 흡사 남의 것처럼 감각이 무디어졌다. 몸의 전 신경은 눈과 가슴에 몰려있는것 같다. 그녀는 이따금 가슴에 손을 얹고 조바심을 풀려고 했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침착해지려고 애쓸수록 조바심은 더 끓었다. 이대로 한시간이나 두시간만 지탱하고 있다면 끝내는 가슴이 파괴되고 말리라.
견습공의 톱질소리가 끝나가고 있었다. 그녀는 온몸을 파닥거렸다. 견습공인 명구를 데릴러 간다면서 진열실을 뚜벅뚜벅 나올 경우, 토마스가 들어닥친다면 그 애는 큰소리로 박형의 출현을 직공들에게 알릴것이다. 김군이 가만있을까? 견습공을 불러들이고 박형의 동태를 묻겠지? 견습공은 짬도 모르고 훌훌 불어버리면 김군은 어떤 낌새를 알아채고 말것이다.
그녀는 토마스가 김군을 꺼리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김군이 운동을 좀 했다는 것도 안다. 김군은 분명히 일을 방해하려 할것이다.
그녀는 시계를 보았다.
여덟시 이십오분.
어머님이 목욕을 하러 들어갔다면 지금 나올 시간인 것이다. 목욕탕은 극장 근처에 있었으므로 얼마간의 거리는 있었다. 적어도 오백미터쯤은 되었다. 어머님은 이 오백미터를 몇분 걸려 내습할 것인가 십분 이상만 걸려준다면 오죽 좋으랴. 명구가 토마스의 집까지 십분은 걸렸을테고, 토마스는 가방을 챙기면서 오분, 그리고 여기까지 달려오는데 십분, 이렇게 양쪽의 시간이 약간 차질이 생길 수가 있다. 그녀는 여기에다 모든 것을 내걸었다. 생명까지도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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