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만나 뵈오니 무척 반갑습니다. 그간 추운날씨에 건강에 조심하셨는지요』
『신부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날 이 시간을 무척이나 기다렸습니다. 신부님도 차가운 겨울날씨에 건강에 조심하셔야 합니다. 더욱이 이렇게 추운날씨에도 불구하고 불쌍한 저희들을 찾아 주시니 … 』하면서 눈물을 머금다가 얘기를 계속한다.
『신부님, 오늘 이렇게 날씨가 차가운 것처럼 사람의 마음도 얼음장 같이 차가워질때가 있더군요. 사람의 마음이 얼음장같이 빙점 이하로 내려갈때 마음의 상황은 극한점에 이르게되는 것을 신부님은 경험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빙점 이하로 냉각될 때 극단적인 최악의 발악으로 영점의 열기라도 경험할려고 발버둥치는 군상(群像)이 사회 저변에는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이지요 그러나 발버둥치는 방법이 중요하지요. 발버둥 치되 자신과 가정과 사회를 소각시키는 자멸의 상황은 만들지 말아야지요.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습니까?』
『예, 신부님 짐작이 갑니다. 극한점에 이른다는 것이 개개인에게 빈번한 사례는 아니겠지만 한번이라도 극한점을 경험하는 그 배경은 매우 복잡할 것 같애요』
상당히 과묵한 편인 그가 왠일인지 오늘은 예리한 질문을 던지면서 현실의 모순된 분위기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는 듯이 질문 하나하나가 진지하면서도 원망스러움이 서려있었다. 『예,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사는 현실인간사회는 언제나 문제가 있기 마련이고 잘잘못이 함께 하는 먼지투성이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잘못의 먼지(죄악)만 먹으면서 사회를 극도로 혼란하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사람은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는 것이 이상하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사회는 죄악으로 멸망하지 않고 그래도 줄기차게 계속되며 인간공동체는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가고 있는것이겠지요.
인간이 누리는 매순간의 상황은 행불행으로 엮어집니다. 그런데 행불행이 나의 처지로 현실화될 때 지나칠 정도로 불균형합니다. 안타깝게도 불행의 상태로 무겁게 기울여집니다. 물론 아주 드물게 예외도 있겠지요.
인간은 고통과 불행의 여건속에서 행복을 창조해내야 하니 여간 힘드는 일이 아니지요.
예수 그리스도는 고통과 희생의 최고 정상인 십자가에서 죽기까지의 극한적 불행에서 최고의 영광된 행복을 그리스도 자신의 댓가로 얻어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 여기에 인생의 모든 복잡한 문제가 해결되는 통쾌한 답변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철저한 신앙안에 모든 불행이 진정한 행복으로 승화되어 갑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자신이 베푸는 기적의 선물입니다』
『저는 사회에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의 측면에서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흔히 들었지만 나 자신과는 어떤 엄밀한 인연이 있는지 전연 몰랐습니다. 그러기에 나의 마음안에 한치의 깊이도 사무치는것 없이 무관심하게 살았습니다. 제가 그리스도의 가치를 신앙의 깊이로 받아들였다면 어떻게 이럴수가 있었겠습니까? 신부님 결국 교도소라는 감방생활이 이 값진 그리스도의 가치를 알아듣게 하는군요 저는 사람을 죽인 놈입니다』나즈막한 목소리였지만 그 소리는 떨렸다. 나도 엇갈린 감회로 잠시 당황했었다.
『예, 알겠습니다. 지나간 사실에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마세요. 다행히 우리가 믿는 우리 주 예수님은 그 어떤 무거운 죄악이라도 진심으로 참회하고 뉘우치는 사람에게는 용서를 베풀겠다고 하셨습니다. 현실의 부조리를 감당해 낸다는 것은 오로지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가운데서 찾을 수 밖에 없습니다. 다른 방법도 더러있겠지만 비교가 안될 정도로 허약하고 불완전한 것입니다』
『신부님, 저는 사람을 둘 죽였읍니다. 나같은 죄인에게도 예수님의 자비가 해당되겠습니까?』대단히 절박한 질문이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능력으로 잘못을 깨끗하게 용서받을 수 있다면 자기의 여생을 오로지 예수님을 위해 깊은 참회와 희생으로 살겠다는 강인한 결의를 다짐하는 것 같았다.
『예, 물론이지요. 정상적인 사람의 생각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그리스도의 불타는 사랑의 접근이지요. 이 거대한 사랑의 물결은 인간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원수까지 감싸 녹아버리게 합니다.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앞으로 40~50년의 세월이 흐른다면 우리같은 연령층의 모든 세상 사람들은 이미 죽어 무덤속에 있을걸 지금 생각해 본다면 인생의 무상함을 뼈에 사무치도록 느끼게합니다. 지금 세상을 떠나나 내일 또는 먼훗날에 세상을 작별하나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나라를 차지하는가 그렇지 못하는가 입니다. 영원무궁토록 계속되는 현실이라면 문제는 달라지지요. 모든 것이 하루 세끼 먹고 잠자고 돈벌이하는 바로 이 현실만이라면 이 무궁한 현실을 타의든 자의든 일단 포기한다는 것은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일 것입니다. 다행히 영원무궁한 삶은 각박한 현실이 아니라 피안의 세계에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의 출발점이 우리들의 현실 삶이 영위되는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데서 비롯한다는 것은 분명한 진리입니다. 애석하게도 이 영원한 삶의 비법을 세상의 많은 이가 외면하니 불쌍한 노릇이지요』이러한 대화를 나누는 동안 스테파노와 나는 한층 더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무언가 할 말을 다 못한 씁쓸한 기분을 안은채 자리를 일어서야만 했다. 『또 벌써 시간이 다되었군요』다음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건강에 조심하라는 인사를 나누고 배 수녀님과 함께 교도소문을 나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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