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은 국제적으로 소련 등 공산국가들의 대서방 및 제3세계 정책의 변화로 인한 해빙무드로 기존 세계질서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으며 국내적으로도 민주화 실현, 서울 올림픽, 5공 비리 등으로 큰 변혁을 가져온 한 해였다. 신앙의 눈으로 볼 때, 역사 창조의 주도자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직시하면서 본보는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김남수 주교로부터 국내외적인 역사 흐름을 재조명하면서 국내교회의 제반문제들에 관해 들어본다.
-금년은 국가적으로 보아 전 국민의 민주항쟁、전 전 대통령의 은둔、 서울 올림픽 성공、 국회 청문회 등 민족사적으로 중요한 한 해였다고 평가됩니다. 주교님께서는 금년 한 해 동안 전개된 우리나라의 정치ㆍ사회적인 상황들을 어떻게 느끼고 계시는지요?
『나는 모든 것을 우리 믿음 안에서 바라보고 있는데 작년 6월 성신강림절에 성모성년이 시작됐고 그리고 성모성년동안 세계적으로도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민주화가 성모님의 보호 밑에서 이뤄졌다고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민주화 과정에서는 그동안 일어난 것이 너무 지나치게 대립적으로 즉 근로자와 기업주 혹은 정부와 국민의 사이에서、그동안 억압 받았던 사실 때문에 지나치게 미움을 자극하는 듯한 일들이 일어나는、 그런 과정을 겪고 있어요.
사법부서 진실을
청문회도 어떤 면에서 보면 너무 지루합니다. 물은 것 또 묻고 요령 없이 묻고… 대답하는 사람도 법적 책임을 질만한 문제는 대답 안 할 수도 있는 그 청문회의 제도 속에서、무슨 진실이 밝혀질는지 나도 모르겠읍니다.
그냥 야당 측의 주장을 한 번 속 시원하게 털어놓는다는 효과는 있을지는 몰라도 정말 진실을 밝히는 일은 사법부로 넘겨야 됩니다. 사법부에 책임을 넘겨서 사법부에서 진실을 밝히도록 하고 국민과 정부 또 근로자와 기업주들은 되도록 빨리 화해하고 서로 양보하는 아름다운 국민적 화합이 이뤄져야 우리 앞에 가로놓인 남북통일에 대한 준비가 되지、 우리 안의 갈등을 우리 스스로 해결 못하고 그런 분열된 상태 속에서 어찌 감히 아주 획일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북한형제들과 대화를 할 수 있으며 교통을 하고 무역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1988년으로 이 갈등과 대립을 합리적으로 해소하고 새해에는 정말 화합된 국민과 정부、 근로자와 기업주가 합심해서 민주화에 박차를 가하고 동시에 남북대화와 통일에 빨리 나아갈 수 있는 저력을 준비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면 백담사에 은둔해 있는 전 전 대통령의 처리는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시는지요?
『그것도 사법부에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좀 더 진실된 내막을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풀어줬으면 싶어요. 청문회에서 알고 싶은 것、 그 진실을 밝히는 문제는 사법부가 훨씬 나을 것 같아요. 다시 말해서 진실을 밝히는 문제는 사법부의 할 일이라고 보며、 입법부에서는 진실을 못 밝힐 것 같아요.』
민주화에 교회기여
-지난해에 이어 금년에도 정치ㆍ사회의 민주화과정이 진행되고 있는데、교회는 민주화에 과연 얼마나 기여했다고 평가하십니까?
『교회도 나름대로、방법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었지만 민주화에 많이 기여했다고 봅니다
인권의 탄압에 대해선 굉장히 꾸준하게 지적하며 가르쳐왔고 4ㆍ13 호헌조치 때는 교회가 거의 모두、 소위 온건파라느니 여당시 됐던 사람들도 그것만은 잘못이다고 지적했지요. 또 개인적으로는 청와대와 연계해 6ㆍ29선언이 나오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나도 6ㆍ29선언 이틀 전 청와대에서 사람이 왔길래 「목숨을 아끼면 잃을 것이요、 버리면 되찾을 것」이라는 내용의 그 주일 복음말씀을 인용해 「민정당이 정치생명을 버리고 아예 죽으면 최소한 동정이라도 받아 되살아날 수 있을 것이나 목숨을 아끼면 타살되고 말 것이라고 역설했어요.』
상처치유 먼저해야
-현재의 국내정국은 5공 비리청산과 민주화실현이란 두개의 큰 과제를 놓고 진통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교회는 어떤 역할을 해야한다고 보십니까? 또 5공 비리청산은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시는지요?
『교회는 지금 평화에 기여해야 하고 민족화해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지금은 정말 사랑을 부르짖을 때 이지、과거에 너무 집착해서 잘못과 한을 너무 심화 시켜서는 안될 것입니다.
국회 청문회도 너무 질질 끌지 말고 진실을 밝히면서 상처 입은 광주시민들의 마음을 치유해주고 명예회복과 마땅한 대책을 수립하는 데 치중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국회는 비합리적인 법을 고쳐나가는데、 법을 없애는데 신경 쓰면서 민주화 제도부터 빨리 수립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교회도 5공 피해자
-금년은 특히 정부의 북방외교 정책 강화에 따라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공산국가들과의 문호가 속속 개방되고 있고 이와 때를 같이 해 중국과 북한의 교회도 개방의 기미를 보이고 있읍니다. 교황님께서도 한국의 세계성체대회 전후 중국을 방문하고자 하는 원의를 밝힌 바 있으며 지난 10월말에는 우리 신부님 두 분이 평양에서 미사와 고백성사를 집전한 바도 있읍니다. 이러한 상황들로 미루어 볼 때 앞으로 중국이나 북한의 교회들은 어느 정도 개방될 것으로 보시며, 이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우리 교회는 어떤 노력과 준비를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십니까?
『공산권의 교회문제를 보면、 역시 성모성년의 결과로서 또 성모성년 동안 미소관계가 해빙기에 들어섰고 핵무기 제거 협정에 조인했읍니다. 소련정부는 교회설립 1천주년을 지내면서 러시아정교의 성당 37개를 교회당국에 내줬으며 앞으로 더 많은 성당을 내줘 국민들이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면서 종교자유를 확실하게 보장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3억불을 빌려달라고 하는 판인데… 하여튼 과거에는 상상도 못할 변혁을 겪고 있읍니다. 이런 점에서 소련이 회개했다고 봅니다. 적어도 회개를 시작했다고 보는 겁니다. 종교적 입장으로 봐서 말입니다.
중국과 북한도 점차 나아질 것으로 봐요.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서 정부는 자꾸 정부 주도로 무얼하고 싶어 하는데… 남북관계는 사실 민간주도 곧 민간교류가 먼저 돼야지요.
이 점에 있어서는 우리 또한 5공의 피해자지요.
북한에 몇 번 갈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5공 정부가 극구 말려서 못 갔어요. 이제 할 수 없이 북한 가톨릭에 관해서는 바티깐이 우리를 대신하게 됐어요.
우리로서는 교회문제로 북한당국과 직접 접촉하기엔 때늦은 감이 있어요. 우리 신부가 북한에 갔다 왔지만 평양에 지어놓은 성당은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건립됐는지도 아직은 석연찮아요.
교황 방한에 관해서는 한국의 신문이 아주 잘못 보도했어요. 교황님은 내년 10월 중국을 방문하시기 위해 아시아로 오시는데、 그때 마침 세계성체대회가 한국에서 개최되니까 잠시 들르시게 되는 거예요. 방문의 으뜸목적이 세계성체대회와 한국 땅이 아니라 중국이에요.
중국의 애국교회와 성좌와의 화해가 어떤 모양으로든지 이뤄져야 하거든요』
-언제쯤 북한 땅에 선교사가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그 문제는 그리 투명하지 않아요. 평신도가 선교사로 입북하는 것이 훨씬 쉬울 것 같아요. 성직자의 경우 대학교수, 의사 등 다른 직업과 목적으로 들어가 간접선교를 하는 것은 몰라도 직접 성직자가 선교사로 파견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울 것 같애요. 적어도 당분간은.』
-그러면 이 시점에서 북한교회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시대의 상황과 환경을 보고 기다리면서 더욱 열심히 기도하다가 때가 되면 경제적인 측면에서 북한교회에다 도움 줘야지요. 중국의 신학교는 독일천주교가 도와줬읍니다.』
-이제 딴 문제로 넘어가겠읍니다. 교회의 사회참여 혹은 정의구현이라는 측면에서、 주교회의가 정식 인정하지 않은 단체들이 임의적으로 활동해오고 있으며 금년에는 정의구현전국연합과 가톨릭대학생연합이 결성돼 정치문제에 적극적으로、 깊숙이 참여한 것으로 나타나 있읍니다.
주교님께서는 이들 단체의 활동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가톨릭이나 천주교라는 명칭만 사용 않는다면、그들의 자의적인 단체활동을 반대하지 않아요. 그러나 가톨릭이란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분명히 위법입니다.
교회법 300조에 교구장이나 주교회의의 인준을 받지 않은 단체는 가톨릭이란 명칭을 사용 못하게 돼 있어요.』
-공식인가를 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위의 명칭을 사용하는 단체들의 활동이 잘못된 것이라면 왜 지금까지 주교회의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않고 있는지요?
『각 교구장이 알아서 할 일이지요. 교구장이 묵인하면 괜찮은 문제입니다.』
교구장권한이 우선
-우리 신자들은 정치적 소요ㆍ사회적 불안ㆍ계층간의 갈등 등 큰 문제가 있을 때마다 교회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합니다.
다시 말해 혼자서의 판단이 어려울 때 신자들은 한국교회 최고책임자들인 주교님들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주교님들의 말씀이 크게 줄어들었읍니다. 성명서 발표조차 줄어든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는 우리 주교회의가 모든 평신도들의 또 전국 단체의 모델이 돼야 한다고 봅니다. 중앙집권주의적인 형태는 시정돼 나가야지요. 주교회의는 하나의 협의기구로서、 교구장의 권한을 침해해선 안 된다고 봅니다.
주교회의 전원일치의 의견이라면 성명서를 내야지요. 그러나 시국 문제엔 주교들의 뜻이 모두 일치하지 않는 것이 통례지요.
또 주교회의 의장의 성명서보다는 교구장의 성명서가 오히려 존중돼야 한다고 봅니다. 주교회의 의장은 회장도 대표자도 아니고 그냥 사회자예요』
의장은 사회자일뿐
-그렇다면 주교님께서는 교회의 대사회 및 정치 참여에 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십니까?
『정치 참여는 평신도들이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이지 성직자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성직자는 초연하게、평신도가 어느 정당에 참여하든 간에 그 정당에서 크리스찬 정신으로 일할 수 있도록 양성하는 것이 성직자의 사명이라고 봅니다.』
-현재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어떤 것이라고 보시며 그 타개책은 무엇입니까?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을 생각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은 성당에 나올 수 없는 현실、 이 현실은 어떻든 간에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거지가 성당에 들어와 앉을 자리가 없어요. 이 현실을 시정 않고서는 한국교회가 제 구실을 할 수가 없죠.
나도 이해는 해요. 본당이 새 성당을 건립해야 하고、 다른 본당을 도와야 하고… 자연히 돈 얘기가 많아지는 것、 또한 헌금대열에 참여 못할만한 가난한 이는 정신적인 소외를 느낄 수밖에 없는 현실.
그러나 어떤 모양으로든 지양해야 할 문제입니다.
중산층화 시정돼야
그렇지 않아도 가톨릭신문에서 「우리 교회 신자가 중산층화 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는데 이 문제는 시정해야지、 시정 않고서는 참된 가톨릭이라고 할 수 없지요.
우리는 가난한 계층을 뜻하지 않게 소외시키고 있는 이 현실을 깊이 반성하고 그들까지도 포용해 나갈 길을 모색해야지요.』
-신자 노동자들의 대다수가 성당을 떠나 냉담자가 돼 있는 이 현실을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성당마다 그들이 모일 방 하나씩 만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노동자들의 방 하나라도 있는 본당이 전국에 몇이나 되겠어요. 나도 신부들을 만날 때 노동자들이 모일 장소를 제공하라고 강조하곤 합니다.』
-농촌교회 문제도 심각합니다. 사목적 대책은 어떻게 세워야한다고 보는지요?
『지도자 빈곤이 우선 문제지요. 똑똑한 이들이 도시로 빠져 나가버리니… 유급 전교사를 파견하든지、 수녀들을 파견하든지 환경에 맞게 대처 해야겠지요. 도무지 도시로 가려는 수녀회는 경쟁이 치열한데 농촌교회는 그렇지 않은 것 같읍니다. 수원교구의 경우 과천의 성모영보수녀회는 자신들도 정말 물질적으로 가난하면서도、 다른 수녀회가 안 가려는 농촌지역에 자원、 생활비도 못받는 어려운 실정에서 기쁘게 활동하고 있읍니다.
농촌사목은 농촌에 적합하고 관심있는 신부가 일생을 바쳐 일하는 특수사목의 영역으로 점차 변해야 한다고 봐야 할 것 같아요.』
질적향상 부족 탓
-각종 신흥종교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대단히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읍니다. 여호와의 증인의 경우 전체 교인의 70~80%가 천주교 신자 출신이라고 합니다. 우리 신자들이 이들 신흥종교에 쉽게 빠져드는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시며 그 대책은 어떤 것입니까?
『성경지식이 부족한 것을 이용해 그들이 의식적으로 천주교인에게 접근해 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수적으로 증가되기 때문에 질적으로 저하한다는 일반적인 원칙이 적용되고 있읍니다.
예비기간 동안 성경에 친숙하도록 가르쳐 나가야 할 것입니다.
또 교회로서는 신자교육을 나름대로 하고는 있으나 사실상 인력부족 입니다.
신자들도 성경을 비롯한 교회출판물을 효과적으로 이용、 공부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용서와 화해 절실
-1989년은 주교회의가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라는 주제의 공동사목교서를 발표、 신자들의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셨읍니다.
이 주제는 10월 서울서 열릴 제44차 세계성체대회와 연관지워 선정된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주교단 사목교서의 내용과 특히 우리시대에 필요한 평화는 어떤 것인지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용서와 화해입니다. 「부모의 한을 풀어 드려야 효도」라는 말이 있지 않읍니까? 구약에도 아직 사랑이 성숙되지 못해 「이에는 이、눈에는 눈」이라는 귀절이 있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읍니다.
이 말씀은 종교들의 일반 윤리도덕을 초월한、 참으로 아름다운 가르침입니다. 또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가르침이 있읍니다.
사실 용서랑 참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5공 비리와 관련、 진실을 밝히는 것은 좋으나 너무 오래 끌면 민주화합에 저해가 되지 않을까、증오심을 자극하지 않을까 걱정 돼요.
잘못한 사람은 솔직히 시인하고 피해 받은 이는 그들을 용서해야 할 것입니다.』
성체신비 실천을
-끝으로 주교회의 의장님으로서、 새해를 맞는 한국신자들에게 그리고 한국민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해주시기 바랍니다.
『성체성년 입니다. 특별히 성체의 신비를 우리 생활에 실현시키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욕망성취를 너무 조급하게 생각치 말고 우리가 겪어야 하는 민족발전의 이 갈등을 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서로 자제해 나가면서 서로 용서ㆍ이해ㆍ화합하기 바랍니다.
특별히 화해하고 화목해야 하는 이유는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우리로서、우리가 먼저 화합하는 길을 살아야 그 어려운 통일도 가능해 지지 않겠는가 하는 점입니다. 아무쪼록 서로 화해ㆍ화목하는 아름다운 민족으로 새해를 맞이했으면 합니다.』
-오랜 시간동안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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