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이나 종교나 국적의 차별없이 누구나 다 타인과 자연의 예속상태에서 해방되어 참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계、 명실상부한 자유세계、 가난한「나자로 」도 부자와 같은 식탁에 앉을 수 있는 인간 공동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인 것이다.』(교황 바오로 6세의 민족발전 촉진에 관한 회칙)
교회는 인간들이 시급히 건설을 시작하여야 할 새로운 인간 공동체의 비젼을 이와 같이 제시한다. 이는 제2차 바티깐공의회에서 채택된 「현대세계의 사목 헌장」의 정신에 따라 구체화 할 인간공동체 건설의 상을 이와 같이 표현하면서 『하느님께서 땅과 그 안에 포함된 모든 것을 사람과 모든 민족이 이용하도록 하시었다. 따라서 창조된 모든 재화는 사랑을 동반하는 정의에 입각하여모든 사람에게 공정되어야함』을 이야기한다.
오늘날의 세계의 상황은 어떠한가?
흔히 총생산으로 표현되는 GNP의 기준에서 본다면 전세계 인구의 사분의 일을 차지하는 소위 선진공업국이 전 세계 총생산의 78%를 점유하고 있는 현실은 오늘날의 세계상황이 얼마나 비복음적인 구조인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 소수의 인구가 전 세계 에너지 소비의 81%를 사용하고 있는 바 미국인 한 사람이 사용하는 에너지의 양은 55명의 인도인이 사용하는 에너지 양과 같고 아프리카 탄자니아인의 1백68명이 사용하는 에너지양과 같다.
인간의 복지를 위한 보건비의 비교에 있어서 선진공업국은 개발도상국의 1인 사용량의 2백40배를 사용하고 있으며 그 반대로 군사비는 40배를 사용한다. 국가 간의 부의 격차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가난한 나라들이 지난 70년대의 10년간 GNP가 미화 17불 증가임에 반하여 서방 선진공업국들은 2천1백17불이나 같은 기간에 증가 하였다는 사실은 심각한 부의 편중사실을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부의 격차는 국가 간의 차원 뿐 아니라 같은 나라 안에서도 같은 현상을 드러낸다. 일례로 브라질의 경우를 본다면 전 인구의 10% 미만인 부유층이 GNP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반면 브라질 전 인구의 50%나 되는 극빈층이 총 GNP의 12%밖에 차지 못하는 현실이 이를 웅변적으로 이야기한다.
이와 같은 심각한 부의 편재현상은 제3세계 인구 중 4억3천5백만 명이 극심한 기아와 영양실조 상태에 빠져있음을 이야기 한다. 이미 아프리카 여러 지역,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인간생명을 유지시킬 최소의 식량 섭취 불능으로 아사 인구가 늘어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와 같은 기아가 있는 반면 선진국에서는 인간이 먹어야 할 식량의 47%를 사료로 사용하는 참혹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음을 우리는 본다. 이와 같은 세계가 사랑과 자비를 가르치고 있는 종교를 신봉하고 있는 그리스도교 선진공업국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것인가?
이와 같은 현실을 타개하여 온 인류가 한 형제임을 드러내는 길이 우선은 그리스도인들의 의식이며 책임임을 우리는 안다. 바로 그 길은 사랑과 정의에 바탕을 둔 나눔임을 우리는 안다. 그리스도인들의 신원을 규정하는 여러 요소 가운데에서 나눔은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측면의 하나이다. 나눔만이 그리스도인의 신원을 규정하는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나눔은 적어도 필요조건이다. 따라서 나눔이 없는 그리스도의 삶은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바로 그들이 신앙하는 스승이며 모범이신 그리스도로 부터 그 삶이 연유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사실로 자신의 전존재를 인간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분은 자신을 완전히 나누어 주시기 위하여 하느님의 지위를 버리시고 인간 속으로 인간이 되셨으며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특히 가난하고 힘없고 천대 받는 이들에게 자신의 전 삶을 나누어 주셨고, 심지어는 자신의 몸과 피、 즉, 전 생명을 나누어 주심으로써 아버지 하느님께 새로운 희생의 제물로써 자신의 전 존재를 봉헌하셨다. 인간을 위한 철저한 자기증여가 바로 새로운 생명의 시작임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이시며 스승이셨던 그리스도의 삶을 살기로 결단을 내린 이들이다. 원죄에 물든 인간은 자신의 인간 조건과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결단 사이에서 고뇌와 갈등을 겪는 이들이다. 나눔이 그리스도인들에까지 어려운 것은 이 때문이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의 길을 가야 하는 인간이 취득한 재화나 능력이나 명예 등은 인간에게 맡겨진 임시적으로 위탁된 것들이다. 하느님이 인간들에게 이러한 것들을 맡기셨음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처럼 남을 위하여 살도록 맡겨주신 것일 뿐이다.
결국 인간이 자신에게 일시로 맡겨놓은 것을 주인의 뜻을 거스려 자신이 쥐고 놓지 않는 것은 하느님의 것을 도둑질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소유욕은 인간의 이기심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와 변명으로 자신을 합리화시키며 이와 같은 도둑질을 합리화 한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가진 바를 하느님의 뜻대로 내어놓아야 한다. 많이 가진 이는 많이 내어놓아야 하며 적게 가진 이는 적게 내어놓아야 한다. 심지어는 자신이 가진 바를 전부 내어놓아야 할 필요도 있다. 내어놓는 것은 원래 공평히 나누어야 할 몫(타인이 차지할 몫)을 제자리로 환원시키는 일일 뿐이다.
근래에 들어와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점차로 자기 것을 내어놓기 시작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제 신원을 깨닫기 시작한 좋은 증거의 하나이다. 이제는 우리가 가진 재능、 힘、 시간까지도 내어놓는 이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삶 전체를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하여 내어놓는 이들이 많이 나타난다. 세계성체대회를 맞이하여 「한마음 한몸」운동은 이러한 나눔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생활로 실천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자신을 인간의 밥으로 내어놓으신 그리스도의 성체성사는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그 신비를 드러낸다.
이 길이 성체성사를 전례로써 만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내는 길이며、 신앙이 생활과 연결된 구체적 실천임을 우리는 믿는다. 그럼으로써 독점과 지배와 예속과 수탈의 이 세상 속에 참 평화이신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작은 걸음이 오늘 이 땅에서 구현되기 시작할 것이다.
최재선(주교회의 인성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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