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진실한 「나눔」은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는 신자라면 누구나 지향해야 할 큰 사명이다.
그러나 「나눔」은 때때로 감당하기 힘든 지극히 추상적이면서 거대한 「의무사항」으로, 혹은 동전 몇 닢에 실려 가는 「자선」이나 「시혜」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혼란에 빠지게 하고 있다.
과연 그리스도인으로서 추구해야 할 나눔의 실상은 무엇인지 기초교회 공동체ㆍ협동조합 공동체ㆍ기도 공동체 등 교회 안의 공동체들은 「함께하는 삶」 안에서 결코 삶과 떨어져 있지 않은 「살아있는 나눔」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이 펼쳐가고 있는 구체적인 현장들, 추구하고 있는 복음적 지향을 살펴봄으로써 그 안에 숨쉬고 있는 나눔의 의미를 캐내어 본다.
기초교회 공동체
다원주의、 개인주의、 물량주의 가치관이 팽배해져 있는 가운데 최근 남미와 필리핀에서 기초교회 공동체 운동이 활발히 전개돼 교회 안의 나눔에 있어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좋은 표본으로 제시되고 있다.
또한 국내에서도 구체적인 기초교회 공동체의 성공사례는 제시할 수는 없지만 이와 비슷한 시도는 여러 번 있어 왔다.
기초교회 공동체는 사도행전 2장 43절에 그 좋은 모델이 제시돼 있듯이、 전반적인 모든 삶 안에서 서로가 가진 것을 나누며 사는 복음공동체이다.
기초교회 공동체를 알고 있는 신자들은 이런 공동체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갖고、 참여하려고 한다. 그러나 막상 이런 형태를 시도한 이들은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한결같이 얘기하고 있다.
『필리핀과 남미는 가톨릭이 전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어떤 분위기가 형성돼 있고、 특히 남미는 본당과의 지역격차가 너무 커서 함께 모여 사는 것이 편하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에 이런 지역에서의 기초교회 공동체는 잘 활성화 되는 것 같아요. 그러나 우리나라는 본당 중심이 잘 형성돼 있고 이런 공동체에 익숙치 않기 때문에 무척 힘들 것 같읍니다』고 복음자리 공동체의 한 일원이었던 빛나 어머니의 말이다.
그러나 기초교회 공동체의 결성 조건이 어려움에도 불구、 끊임없이 시도되고 있다. 그것은 사도행전 2장 43절에 나오듯、 성체성사의 나눔의 신비를 그대로 실천하고자 하는 신자들의 원의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국내에서는 기초교회 공동체와는 형태를 조금 달리하지만 비슷한 유형의 생활나눔 공동체를 형성했던 복음자리 공동체가 있다.
이 공동체는 1976년 정일우 신부와 제정구씨가 시작、 1982년 평신도 부부 세 가정과 수녀 4명이 참여하면서 본격 활성화 되었고, 1986년까지 교회 내외의 관심 속에 생활하여 오다 현재는 각 가정이 잠시 흩어져 살고 있다.
지역사회 안에서 형성되는 이런 공동체는 그 특성상 부분적인 나눔의 생활이 아닌 「전인적인 나눔」이 이루어지고 그것이 확산돼 그 지역의 나눔생활을 촉발하거나 주축이 되곤 한다.
실제로 복음자리 공동체가 인천 신천리에서 자리를 내리자 이 공동체를 중심으로 마을조합 및 다수가구가 협동、 생산업을 한 것은 그것을 잘 나타내주는 현상이다.
이런 공동체는 어떤 한 지역에 있음으로 해서 그 가진 성격으로 인해 주위에 나눔의 상징이 되고 또한 멀리 바라보면 공동체의 형성과정이 어찌됐건 지역사회 복음화의 기수가 된다.
그러나 실상 공동체를 형성하여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함께 모여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절감하게 되고 이 어려움이 결국 공동체가 흩어지게 하는 요인이 된다.
이들의 어려움은 우선 집구조에서부터 온다. 이들은 경제적 여건 때문에 기존의 주택에 몇 개의 가정이 모여 살게 되고 대개 장소의 협소로 인해 마찰이 빚어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독신자가 아닌 가정들이 모여 살기 때문에 경제 문제와 자녀교육 문제、 자녀들끼리의 문제가 어른의 문제로 비약하는 그 어려움은 크게 나타난다. 즉 이런 공동체는 일차적인 공동체인 각 가정과 그 가정들이 모인 이차적인 공동체라는 특수상황에서 나오는 어려움이다.
복음자리 공동체원들은 이와 같은 어려움 보다 더 근본적이고、 극복하기 힘든 어려움은 따로 없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이들은 그것을 『자본주의의 사고방식 안에서 어렸을 때부터 교육 받아 자라왔기 때문에 「내 것과 네 것」을 따지는 소유의식과 이기주의가 공동체의 삶을 원만하게 해주는 공유생활 태도를 끊임없이 배척하게 만드는 정신구조』라고 지적한다.
삶을 나누는 생활공동체의 형성은 힘들지만 세상의 표징으로서 또 성체성사의 나눔의 상징으로서、 실상 구체적 현실 안에서 사랑의 표지로서 끊임없이 시도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아직 한국 실정에 맞는 공동체에 대한 연구가 미비해 시도하려는 이들이 오직 부딪히며 알아가야 한다는 난점이 있다는 것이다.
교회 내의 나눔의 질적인 성숙을 위해 또 그것이 널리 퍼지게 하기 위해 자발적인 평신도의 삶을 나누는 공동체를 활성화시킬 수 있도록 그에 따른 연구작업과 이제까지의 경험을 냉철한 이성으로 비판하고 그것을 토대로 한국 실정에 맞는 생활공동체의 육성이 요구되고 있다.
생활협동 공동체
이와 함께 생활협동운동을 지향하며 왜곡된 현실의 삶을 바로 잡아보려는 일련의 움직임들도 교회 안에서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
교회의 가르침에 뿌리를 두되 협동조합 조직을 통해 교회의 벽을 넘어 사회로의 파급을 시도하고 있는 이 움직임은 최근 「한살림 공동체 소비자 협동조합」 「서울 가톨릭 소비생활협동조합」 발족으로 구체화 되고 있다.
서울 가톨릭회관 2층에 들어서게 될 「서울 가톨릭 소비생활협동조합」의 창립 안내서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의 약점은 영적음식을 적극적으로 먹고 마시면서도 이웃과 자신의 삶을 복음의 빛에 물들여 더 구체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하는데 있다』고 지적하면서 『생활협동운동은 일상적 삶의 인간화를 통해 신앙의 생활화를 이루려는 운동』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아직 현 단계에서는 소비조합 형태에 머무르고 있지만 이들이 추구하는 근본적인 나눔은 「영적 나눔」을 「삶의 나눔」으로 자리매김 해내는 데 있다.
그렇다면 삶의 나눔은 얼마만큼의 폭을 담고 있는 말일까.
그것은 근본적으로 이들의 공통된 지향점을 살펴봄으로써 자명하게 드러난다.
이들 운동은 시장자본주의 체제 아래 철저하게 인격적인 만남이 단절되고 있고 생활환경도 비틀어져 있다는 「상황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무공해 농산물 도ㆍ농직거래의 매개체로 1985년 원주교구에서 창립한 「한살림」은 농약투입으로 죽어가고 있는 땅ㆍ농산물 그리고 이것이 소비자들의 식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를 「깨진 현실」, 「죽임」으로 규정하고 있다.
서울 가톨릭 소비생활협동조합은 시장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중대한 문제는 「생산과 소비의 분리」, 「생산자와 소비자의 인격적 만남의 단절」이라고 말한다. 이에 따라 우선 독과점 유통으로 막혀 있는 소비자ㆍ생산자 간의 「물꼬」를 트는 일이 자연스러운 출발점이 됐다.
어떤 형태로든 작은 숨통이 트이게 되자 「삶의 나눔」을 이루려는 다른 시도들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는데 이는 어떻게 보면 이미 사회구조의 모순 안에서 시달릴대로 시달린 생산자ㆍ소비자의 「필요」와 딱 맞아 떨어졌기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다.
1986년 서울에 진출한 한살림의 경우 5백 가구에 달하는 회원들이 5~10세대가 모여 「공동구매」, 「생활나눔」을 하고 있는 소비자공동체가 벌써 50여 군데에 이르고 있고, 이들의 힘으로 한살림 소비자 협동조합이 결성된 것은 한 예에 불과하다.
이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늘 무심하게 지나쳐온 자신의 삶을 신선한 시각으로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한살림 공동체의 생산지로 3년째 병아리가 될 수 있는 「유정란(有精卵)」을 생산하고 있는 강원도 원주 「공근부락」. 5가구가 횡성본당 신자들이다.
무농약 쌀을 생산하는 8백 평의 논과 밭 1천 평도 경작하고 있는 정현모(바오로ㆍ35)씨는 『계약에 따라 가격이 보장되니까 걱정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어서 좋고 무엇보다도 내가 생산한 농산물을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 것이 기쁘다』면서 『약을 주지 않기 때문에 농사짓기에 일손이 배는 들어가지만 농약중독의 위험이 사라지고 딱딱한 산성토양이 부드러운、 살아있는 땅으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부락은 중부지방을 휩쓸고 있는 「뉴캐슬병」으로 가구당 6~7백 마리에 달하는 닭이 몽땅 죽어버려 큰 손실을 입었는데도 주민들은 『오염된 농산물이 이 사회 전체를 오염시킨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이 운동을 그칠 수는 없다』며 재기의 의욕을 다지고 있다.
삶의 나눔을 지향하는 이 운동은 앞으로「생활협동운동」, 「생활공동체운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 사회의 전반적인 흐름을 바로잡고 전체가 구원되는 총체적인 공동체 운동이 생활협동운동』이라고 정의하는 안경렬 신부(서울 가톨릭 소비생활협동조합 이사)는 금융협동ㆍ소비자협동ㆍ주택협동ㆍ의료협동ㆍ생산자협동 등 5개 분야를 운동의 주요영역으로 설명했다. 돌 하나가 일으키는 파문처럼 증폭의 효과가 놀라운 이 운동에 교회가 과감히 뛰어 들어 촉매제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교회는 1950년대초 신용협동조합을 도입、 국내에서 이 분야에 선구적인 업적을 남겼지만 「신협」이 「사목」과의 불협화음 때문에 기타 협동운동으로는 발전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던져주고 있는 실정이다.
안 신부는 조합원이 85만2백 세대에 달하는 일본 「나다고베」생협을 예로 들면서 『가톨릭농민회ㆍ평협ㆍ여성연합회 등 교회의 다양한 유관단체가 중심이 되고 교회 안팎의 많은 단체들이 협력한다면 생활협동은 좋은 결실을 맺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빵과 말씀이 조화를 이루는 삶의 공동체의 구현을 위해 교회는 과감히 이 운동에 뛰어 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한살림공동체의 박재일 대표는 『30년 전에 서울에서 「공해」를 얘기했으면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터이지만 이제는 삶의 여건이 이런 문제들을 생각하지 않으면 않 될만큼 변모했다』면서 『모든 이가 갈망하고 있는 가장 「인간적인 상황」 이것이 바로 이 운동의 요체』라고 설명했다.
기도 공동체
진정한 나눔은 크리스챤적인 삶의 결과로 방향지워진다는 전제 하에 기도를 통해 공동체의 정신을 가꾸어 나가는 기도모임들이 점차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
연령별ㆍ본당별로 형성、 발전해 온 기도회들은 각각의 특성을 살려 나눔의 생활을 실현해 나가고 있다.
서울대교구 금요청년모임은 젊은이들이 가진 어려움과 문제점들을 찬미와 기도를 중심으로 함께 나누어 왔다.
지난 1986년 처음 시작된 청년기도모임은 20대에서 30대 사이의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청년기의 특징이 그러하듯 삶의 근본적인 방향ㆍ구체적인 방안ㆍ직장생활 등 불안한 청년기의 문제점들을 기도로 나누어 갖는 것.
누구든지 자유롭게 기도모임에 참여할 수 있으며 필요하면 자유롭게 다른 공동체로 옮겨가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이 기도 공동체는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도록 이끌어주고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는 데서 출발한다. 『구체적으로 나누기 위해 모인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들이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모습이 나눔』이라고 말한 봉사자 박보아씨는 『구체적으로 영적ㆍ물적ㆍ정신적 나눔이 없을 때 기도공동체는 의미를 잃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밖에 청년기도공동체 중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실로암기도모임은 대학가의 복음화와 함께 생활공동체의 모습으로 정착되어 기도회 모임과 함께 생활 공동체를 꾸미고 있다.
기도모임이 주는 단편적인 나눔에 비해 전면적인 나눔을 생활 속에서 자리매김한다는 차원에서 이 생활 공동체는 전망이 밝다.
또한 본당 공동체의 모습을 견고히 하고 이웃과 함께 생활을 나누는 본당 중심의 기도 공동체는 그 뿌리가 깊다.
서울 미아3동 목요기도모임은 지난 1978년 성령세미나를 받은 몇몇 신자들이 함께 모여 기도를 나누면서 시작된 기도 공동체.
주로 목요기도회의 봉사자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이 기도모임은 복음을 생활 속에서 전파하는 데 일익을 담당해 왔다.
한 주간의 생활체험 및 기도에 관한 이야기 나눔으로 시작되는 이 기도 공동체는 자매들의 소모임과 형제들의 소모임으로 다시 구분되어 구체적인 생활나눔을 펼쳐 나간다.
미아3동 목요기도모임의 최운식씨는 『기도 공동체에서의 나눔은 특정한 모습이라기보다는 전체적인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진정한 나눔은 모든 이를 풍요롭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기도 공동체가 갖는 한계점 즉 생활전반 보다는 일부분만 강조되는 점、 대사회적인 상황에 둔감한 점、 통일된 체계 부족 등이 지적되면서 생활을 토대로 한 새로운 생활 공동체로의 전환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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