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날이 밝았다.
우리가 쉰 살이 되는 새날이.
천명(天命)을 알 나이라는 쉰 살이、쉬어갈 나이라서 쉰 살이고 쉬었다고 해서 쉰 살이라며?
어쩐지 쉬어도 쉬어도 피곤하고 봐도 봐도 쉰밥 같더라니.
「그래도 못 다한 말」이 있어 말의 홍수에서 자유형으로 헤엄치는 쉰 살들.
여자들만 그런 줄 알았더니 청문회 보니까 남자들도 그렇더라.
장장 수백 시간을 시청하면서 「본 의원」은 아니 「본 시청자」는 이런 소감도 간간이 들더라.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말이라고 다 말이냐….』
그러면서 말이라고는 야옹 밖에 모르는 고양이 보기가 부끄러울 때도 있더라. 물론 『말씀이 오사 우리와 함께 생활하고 계시는』 그분 앞에서는 더욱 몸둘 바를 모르겠고.
차라리 어느 개그맨의 『다들 이불 개고 밥 먹어… 왜 너는 이불 안 개고 밥 안 먹니…』 같은 말은 고양이의 야옹이나 다름없는 거라서 해롭지나 않지.
그래도 오십 년 묵은 어른이랍시고 「본 쉰 살」은 어린 아이들에게 이런 역설적인 「쉰똥 철학」을 역설하곤 한다우.
『약속을 가장 잘 지키는 방법은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다』 같은.
그래서 「쉰똥 철학」 제2탄으로 『말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를 발표할 예정이라우.
이왕 하려면 거짓말이 아닌 참말을、 크게 보다는 작게、 빠르게 보다는 느리게 하되、 노무현 의원처럼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애정을 갖고、 허삼수 증인처럼 겸손하게、 이광표 증인처럼 고뇌하며、 윤홍정 증인처럼 진지하게、 박찬종 의원처럼 단정하게 하자는 것이 「본 시청자」의 소감이라는 것을.
쉰 살이 되는 아이들아、아무리 졸리고 피곤해도 「아침 해가 떴으니 자리에서 일어나」 천명에 귀 기울이자.
짹짹이는 참새를 통해、 울리는 첫 전화벨을 통해、 조간 신문을 통해、 청문회를 통해 전해오는 하늘의 메시지에.
쉰 밥이면 어떻고 반백이면 어떠냐.
천명을 알 나이까지 엎치락뒤치락 곤두박질 쳐가며 달려온 마라톤 주자의 실력과 긍지를 갖고.
그러면서도 아직 진짜 어른으로 성숙하지 못한 쉰 살짜리 미숙아로서의 겸손을 지니고.
오십 년 달려오다 멈춘 자리가 가정이든 회사는 교회든 국회든 형무소든.
히틀러 복장으로 하느님의 메시지를 만방에 고하는 채프린처럼.
그래서 고양이와 어린이와 하느님께 오십 년간 본의든 본의 아니든 범한 실수들을 「자수하여 광명 찾자」.
오공비리와 광주 사태와 언론 통폐합에 크게든 작게든 직접으로든 간접으로든 기여해온 부분들을.
환경오염과 우민 정책과 입시지옥에도 한몫을 해왔음을.
「마흔에 불혹」 하지 못하고 나이만 쉰이던 「어른아이들」임을.
그래서 아직 「어른공해」에 오염되지 않은 어린이들의 이해와 용서를 구하자.
참말이 아닌 거짓말을 하느라고 큰 소리로 빠르게、 오만하고 불손하게、 얼굴에 철판을 깔고 싱글벙글하며 지저분하고 너저분하게、 불성실하고 경박하게 쇼를 벌려 왔음을.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같은 자식들」을 위해서라는 미명 하에 「애국애족」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우고 「역사와 민족 앞에 반성하고 참회하는」 「악어의 눈물」을 흘리며 온갖 비리의 버라이어티 쇼에 출연해 왔음을.
「웃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을 되새기며, 「문제아는 없다. 문제어른이 있을 뿐이다」를 자인하며, 「죄 없는자 저 여인을 돌로 쳐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명심하며.
새 날이 밝았다.
쉰 살 되는 아이들아、 쉬었다 가자.
쉬면서 살펴보자.
쉰 밥이 썩어가고 있지나 않은지、 아주 썩어 못 쓰게 되지나 않았는지.
참새 소리 들으며、 저무는 해보며、 청문회에 비치는 내 얼굴들을 들여다보며、 젊은이들의 함성에서 내 목소리들을 되찾아보며, 잠시 달리기를 멈추고 일손을 멈추고 쉬었다 가자.
싱크대 앞에서고、 회전의자에 앉아서고、 십자가 밑에서고、 의원석에서고、 철창 안에서고、 누워 천정을 바라보면서라도, 촛불 켜놓고 꿇어서라도 잠시 쉬었다 가자.
천명에 귀 기울이기 위해.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천명에 어긋남이 없을 일흔」을 향해 다시 달리기 위해.
민병숙<엘리사벳ㆍ외화번역가ㆍ서울 월곡동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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