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로 급증하는 청소년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기 위해 본보는 그동안 「청소년 상담사례」를 연재,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이에 힘입어 새해부터는 청소년 문제를 포함, 현대인들이 겪는 정신건강 문제, 가정 문제, 법률 문제 등으로 상담분야를 확대, 각 분야의 전문가를 통해 해결방안을 찾아보고자 한다. 상담사례는 「정신건강」(박정수 박사), 「청소년」(조순애ㆍ선일여고 교사), 「가정문제」(차명희ㆍ한국가정법률상담소 부소장), 「법률문제」(강수림 변호사) 순으로 연재한다.
재수생은 글자 그대로 일차도전에 실패한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는 끝없이 가혹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그들은 자신의 주체성을 찾기 위한 끊임없는 시련과 부딪혀야 한다. 재수생이 가장 곤혹스럽게 느끼는 점에는 이떤 것이 있을까?
첫째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공부를 하되 남달리 해야 한다는 점이다. 친구들은 모두 대학에 들어갔고 그들이라고 공부를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자연스럽고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있는데, 재수생은 단순 반복의 암기식 공부를 다시 반복해야 하며 새로운 입시제도에도 적절하게 적응해서 후배들과 경쟁해야 한다. 이것은 큰 스트레스가 된다.
둘째는 또 다시 안게 될지도 모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다. 진학에 또 다시 실패한다면 설 곳이 없다는 불안이 두려움을 가중 시킨다. 여기서의 불안은 집중력과 안정성을 떨어뜨린다.
셋째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야 한다는 어려움이다. 자신이 하고 있어야 하는 과업은 고3의 학생과 같은 일인데 주위에서는 사회인의 역할과 같은 것을 요구 한다. 「완전정복」을 옆구리에 끼고 친구도 만나야 되고 차속에서 아는 사람과도 부딪혀야 된다.
넷째는 졸업식까지 일단 유보시켰던 생물학적 성적충동이 자신을 괴롭힌다. 대학진학이라는 큰 명제 앞에서 무조건 억압 되었던 충동은 재수기간 동안 재수생을 혼동의 와중으로 몰아넣는다. 대학에 입학한 친구는 여자친구와 어울려 데이트 하는데, 자신은 「○○완성」을 끼고 터져 나올려는 성적 충동을 조절해야만 한다.
다섯째는 『나는 과연 무엇인가?』라는 새로운 물음을 갖게 된다. 대학에 가는 것만이 과연 최선의 길인가? 인생의 종착역은 어디인가? 결국은 죽음 아닌가? 삶이 순조로울 때는 인간은 회의(懷疑)하지 않으나 어떤 난관에 부딪히게 되면 회의에 빠지게 된다. 그렇잖아도 청소년기는 갈등이 많은 땐데 재수생의 고민은 더욱 많아진다. 그래서 재수생은 자기 자신을 확인하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게 된다. 성(性)문제나 약물남용을 통해서 자신의 우울과 정체를 없애보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초조와 불안과 우울감에 빠지게 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들은 해결책이 아니고 하나의 몸부림이기 때문이다. 흔히 재수생의 문제가 사회 여론화되기도 하는데 그것은 재수생들이 갖는 폭발 일보 직전의 심리적 갈등과 자칫 탈선하기 쉬운 환경적 요인 도처에 주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재수생은 결코 인생의 낙오자나 패배자가 아니다. 사회가 전체적으로 그들을 관심있게 보살펴 준다면 문제의 해결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론일 뿐, 아무도 책임있게 그들을 뒷바라지 해줄 집단은 없다. 오직 가족만이 그들의 고통과 상처와 상한 자존심을 돌봐줄 수 있다. 그들이 속한 「학원」이 있을 수 있지만 학원은 학교와는 다르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가 재수중일 때는 그전보다 더 큰 관심과 이해를 가지고 그들을 대해줘야 한다. 짜증ㆍ방황ㆍ초조ㆍ성문제와 충동적인 범죄행위ㆍ우울증 때로는 정신분열증적 현상(극히 드물지만)까지도 부모는 관심을 가지고 수용해야 한다. 이들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대화가 필수적이지만 자주 이 얘기 저 얘기를 늘어놓고 위로하기 보다는 그들의 얘기를 듣고 그들의 행동을 봐서 그들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무조건 듣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줌으로써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어려움과 고통을 극복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박정수(의사ㆍ연세대의대 외래교수ㆍ「나눔의전화」지도상담원 및 내방상담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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