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년
1월 1일 금요일. 우리는 아침 9시 반부터 방문을 시작했다. 맨 처음은 수녀들, 이어 프랑스 공사관 등을 방문. 도중에 우리를 방문하러 오는 첫 손님 두세 신부와 만나 합류하다.
1월 14일 전라도에서는 고산 현감이 그의 고을각 마을에 보낸 동학(東學)에 관한 공문을 보내왔다. 그 부근에 동학이 대단히 널리 퍼져있다는 소문이다.
1월 16일 영하 12도. 간밤에 두세 신부 댁에 도둑이 들었다. 신부의 강아지가 도둑이 온 것을 알고 평소와는 좀 다르게 굴더니, 아직 완공되지 않은 집의 한방에 사람이 숨어 있는 것을 찾아냈다. 그 자는 취한이 아니면 바보인체 하더니 결국 매를 맞으면서도 전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냥 10냥을 가지고 있었다. 잡힌 사람은 묶인 채 몇 시간 동안 감시를 받았다. 하지만 신부는 그가 추운날씨에 얼어 버릴까봐 걱정하여 한밤 중에 그를 돌려보냈다. 와일즈 박사가 아픈 학생을 진찰하러 오다.
1월 17일 일본에서 온 파발꾼이 죠조 신부의 편지를 가지고 왔다. 그는 계량(현(現)전남 나주군 노안면 양천리)에서 악의에찬 벽보를 한창 압수하였다. 그것은 고산에서 압수된 사학(邪學)에 대한 벽보를 본떠 만든 것인 듯하다. 여기서 말하는 사학이란 일반적으로는 서양인을, 특히 우리를 가리키는 것이다. 강원도에서는 유생들이 천주교에 대한 비방 문을 돌리고 있다는 소문이다. 온갖 종류의 적들이 모든 움직임을 조작하고 조종하는 모양이다.
1월 26일 피낭의 옛 신학생들인 구와 방을 구술시험하다. 박상지거도 와서 자리를 함께하며 구술시험에 관심을 보였다. 요컨대 훌륭한 구술시험이었다.
1월 29일 리우빌 신부가 신학교 학생들을 데리고 세배하러 오다. 요즈음은 영하10도에서 12도사이로 추운날씨가 계속된다. 유행성 독감이나 감기환자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사망자도 많다고 한다.
2월 25일 성 마티아 참례. 나의 사제서품 15주년을 맞는 날이다. 15년 동안 미사를 집전하다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내가 그 혜택을 얼마나 유익하게 사용했을까?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3월 8일 삭발례를 준비하는 서품자 4명(주요한 방 바오로 박방지거 한 바오로)의 피정이 시작된다. 어언 38년이 흘렀구나!
3월 12일 삭발례 거행, 1866년 이후 처음 거행하는 것이다. 비까지 내리는 진창길에도 불구하고 신학교 학생 전원이 와서 예식에 참석하다.
3월 15일 올 봄에는 조선 사람들의 머리속에 온통 한가로운 궁정안의 일뿐이다. 전원대인(흥선대원군)이 곧 조선에 돌아올 것이며(이 소문은 정말인 것 같다)얼마 전 청국정부가 섭정을 개로(開老)로 임명하였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는 것이다. 한편에선 그의 임무가 현 왕에 대항하는 것이라고 들하고 또 다른 편에서는 러시아의 영향력과 침입에 항거하는 것이라 고도한다.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눈ㆍ비에 진흙투성이의 지긋지긋한 날씨에 왠 낯선 사람이 함경도 개천관아에 왔단다.
그는 호위를 받으며 온 것도 아니고 우산을 쓰고 온 것도 아닌데 젖지도 않았고 진흙도 묻히지 않았단다. 그는 가지고 온 봉인한 편지를 관장에게 전해주며『이것은 바로 조선의 임금께 올릴 편지요 조선왕국의 구원에 관한 아주 중대한 내용이 담겨 있소. 두려워하지 말고 이것을 받아 틀림없이 전해주시오. 그래도 관장께는 아무 해가 없을 것이오. 해는 커녕 오히려 상을 받을 것 이오』라고 말하더란다.
그리고 이 낯선 사람은 올 때처럼 사라져버렸다. 이튿날 개천관장은 서울에 와 그 이상한 메시지를 왕께 전했다. 왕은 그 내용을 읽고 개천관장을 옥에 가두어 버렸다고 한다. 처음으로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다. 아직도 온갖 말들이 나돌고 있으니 결과는 두고 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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