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모델‧원천은 성삼
1.우리가 앞에서 본 무로부터의(Exnihilo) 창조에 대한 신앙진리는 우리를「천지의」창조주, 하느님의 신비 밑바닥으로 이끌어들 입니다.
『나는 믿나이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 창조주를…』이라는 사도신경의 표현에 따르면 창조는 원칙적으로 아버지께 돌려집니다. 실은 그것은 구약에 이미 어떤 식으로 나타나고 신약에서, 특히 바오로와 요한의 글에 완전히 계시된 가르침에 따르면 성삼의 세위의 작품입니다.
2. 이 사도들의 글에 비추어 우리는 세상 창조의 모델을 아버지와 같은 본체의 「말씀」, 아들의 영원한 낳음에서 그리고 세상창조의 원천을 성령이신「사랑」에서 찾을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본체가 같으신 이「위격-사랑」이 아버지와 아들과 더불어 무로부터의 세상창조의 원천, 즉 모든 존재에게 주는 존재 선물의 원천입니다. 이 무상의 선물에 수많은 존재 전체가, 너무나 다양하여 거의 한 없는 것처럼 나타나는「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그리고 우주론의 언어가「대우주」와「소우주」로 지칭하는 모든 것이 참여합니다.
하느님의 내적영광은 창조 통해 밖으로
3. 삼위 일체적 신비 밑바닥을 꿰뚫어보도록 이끌어 주는 세상 창조에 대한 신앙 진리는 성서가「하느님의 영광」(Kabod Yahweh, doxatou Theou)이라 부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계시해줍니다. 하느님의 영광은 무엇보다 먼저 자신 안에 있습니다. 말하자면 세위격안에 한 신성의 무한한 깊이와 한 없는 완전성을 채우는 것은 그「내적」영광입니다.
이 무한한 완전성은 「존재」와「거룩함」의 절대적 충만 인 만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서로 관상하고 주는 (따라서 친교의)「진리」와「사랑」의 충만 이기도 합니다.
신성의 신비 자체에서 솟아나오는 하느님의 내적 영광은 창조사업을 통해 어떤 의미로「바깥으로」옮겨집니다. 볼 수 있는 세계와 볼 수 없는 세계의 창조물에게, 그들의 완전성의 정도에 따라 옮겨집니다.
4. 세계(볼 수 있는 세계와 볼 수 없는 세계)창조와 더불어, 앞의 것과 구별하기위해「외적」이라고 부르는, 말하자면 하느님 영광의 새로운 차원이 시작됩니다. 성서는 많은 구절과 여러 방법으로 그것에 대해 말합니다. 몇 가지 보기를 들면 충분할 것 입니다.
시편 18편(19편)은 부르짖습니다.『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얘기하고, 창공은 그 손수하신 일을 알려 주도다…그 말도 이야기도, 비록 소리 없어도 그 소리 온 땅으로 퍼져 나가고, 그 말은 땅 끝까지 번져가도다』(1, 2, 4, 5절)이번에는 집회서가 말합니다.『만물이 찬란한 태양빛을 받고 있듯이 주님의 업적은 그분의 영광으로 가득 찼도다.』(42, 16)바룩서는 대단히 특이한 표현을 합니다.『별들은 때맞추어 빛을 내며 즐거워한다. 발들을 부르시니 「우리가 여기 있습니다.」대답하며 자기들을 만들어주신 분을 위하여 즐거움으로 빛을 낸다.』(3, 34)
인간은 피조물의 대변자
5. 다른 곳에서는 성서본문이 피조물들에게 창조주 하느님의 영광을 선포하라고 말하는 호소처럼 들립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 다니엘서는 말 합니다.『주님께서 만드신 만물이여,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님께 지극한 영광과 영원한 찬양을 드려라』(3, 57). 또는 시편65편(66)『온 땅은 춤추며 하느님을 기리라. 그 이름의 영광을 노래하여라. 빛나는 찬미를 당신께 드려라. 너희는 주께 아뢰어라. 「당신의 하신일이 얼마나 놀라운고. 갸륵하신 그 힘에, 원수들도 당신 앞에 숙이나이다. 온 땅이 당신 앞에 끓어 엎드려, 당신의 이름을 높이 찬양 하나이다」』(1~4)
성서는 비슷한 표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주님이 하신일이 많고도 많건마는, 그 모두를 지혜로써 이룩하시었으니, 온 땅에 당신 조물 가득 차 있나이다.』(시편103/104, 24)창조된 우주 전체가 창조주의 영광을 선포하라는 강력하고 끊임없는 수많은 호소입니다.『내가 살아있는 한, 이 야훼의 영광이 온 땅을 채우고 있다』(민수기14, 21)왜냐하면『부귀와 영화는 모두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니』(역대기상29, 12)
피조물 속에 새겨진 이 영광의 찬미가는 거기에 적절한 개념적ㆍ언어적 표현을 바칠 수 있는 존재, 하느님의 거룩한 이름을 찬미하고 그 업적의 위대함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존재를 기다립니다.(집회서17, 8참고)볼 수 있는 세계 안에서 이런 존재는 인간입니다. 우주에서 올라오는 호소는 인간에게 갑니다. 인간은 하느님 앞에 피조물들의 대변자이고 그들의 통역자입니다.
하느님은 창조 통해 자신의 완전성 나타내
7. 1차 바티칸 공의회가 창조와 세상의 창조주에 대한 진리를 표현하고 있는 말을 잠시 다시 봅시다.『이 한분의 참된 하느님은 당신의 착하심과「전능하신 능력」으로 당신 자신의 행복을 더하거나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피조물들에게 나누어주는 선물을 통하여 당신의 완전성을 나타내기 위하여 최고의 자유로운 결정으로「시간의 시작과 동시에 무로부터 이러 저러한 피조물, 영적이고 육적인 피조물을 끌어내시어…」』(DS3002)
이 본문은 그 나름의 언어로 성서 본문에 나오는 창조와 그 목적에 대한 같은 진리를 명백하게 만들어 줍니다. 창조 사업에서 창조주는 자신에 대한 어떠한「완성」도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추론하는 것은 하느님이 자신 안에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직접적 반제(反題)가 될 것입니다. 그분은 사실 전적으로 그리고 무한히 완전하신 존재입니다. 그 결과 그분은 세상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피조물들은 볼 수 있는 것이나 볼 수 없는 것이나 모두 삼위이신 하느님의 신성에 아무것도 보탤 수 없습니다.
피조물은 창조주의 완전성에 참여
8. 그렇지만, 하느님은 창조하십니다! 하느님에 의해 완전히 자유롭고 으뜸가는 결정으로 존재에로 부름 받은 피조물들은 하느님의 절대적「충만」의 완전성에, 한계 있고 부분적이긴 하지만 실재적으로 참여합니다. 그들은 무생물에서 시작하여 그 다음에 생물에, 마지막으로 인간에게 이르기까지, 아니면 오히려 더 높이 순수 영적 본성의 피조물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받은 완전성의 정도에 따라 서로 다릅니다. 피조물 총체가 우주를 구성합니다. 볼 수 있는 우주와 볼 수 없는 우주 전체와 부분에 영원한「지혜」가 반영되어있고 무진장한 창조주의 사랑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9. 하느님의 지혜와 사랑의 계시 속에 창조의 첫째 목적과 주목적이 있으며 그 속에 성서말씀에 따른 하느님 영광의 신비가 실현되어 있습니다.『주님께서 만드신 만물이여 주님을 찬미 하여라』(다니엘3, 57).영광의 신비 속에서 모든 피조물들은 그들의 초월적 의미를 얻게 됩니다.
그들이 그들의 시작과 마침을 가지고 있는 그분께 열려있기 위해 자신들을『넘어 그들이 뻗어나간다』
그러므로 창조주의 작품을 신앙으로 경탄하고 그분의 위대하심을 찬미합시다.
『주님이 하신일이 많고도 많건마는 그 모두를 지혜로써 이룩하시었으니, 온 땅에 당신조물 가득 차 있나이다. 야훼님 영광은 영원하소서, 야훼님은 이루신일 기뻐하소서. 내가 살아있는 한 주님을 노래 하리이다.
이 목숨 있는한, 내 하느님기리오리다』(시편103/104, 24, 31,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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