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란서 왕은 몽고에 러브럭 신부를 사절 단장으로, 동회원 바르톨로메오(Bartholo-mewda cremona)신부, 예물 운송관 고셋(Gosset) 그리고 콘스탄티노플에서 니콜라라고 하는 노북 한 명을 사서 4명을 몽고로 파견하였다. 러브럭 신부 일행은 특별한 목적을 띤 것은 아니고 친선 사절로 선교를 위하여 파견된 듯하다.
러브럭 신부 일행은 몽고의 헌종을 알현하는데 마치 대 미사 집전 하듯이 러브럭 신부는 제의를 입고 손에는 불란서 왕이 몽고 황제에게 보내는 성경책을 들고, 바르톨로메오 신부는 미사 견본과 십자가를 들고, 고셋 관원은 흰 반장백의를 입고 손에는 향로를 들고 일렬로 헌종의 장막으로 들어가 성가를 불렀다 한다.
성가가 끝나자 곧 병사들이 와서 러브럭 신부 일행과 통역관이 무기를 소지하지 않았나 전신을 조사하였다. 헌종이 거처하는 곳은 장막(帳幕)인데 금과 보석으로 장식되어 호화찬란하였으며 황후와 공주도 그곳에 있었다 한다.
러브럭 신부는 헌종에게 몽고에 영주하기를 청했으나 헌종은 단기 체류를 허락하였다.
몽고에 포로로 잡혀온 구주의 천주교 신자들은 러브럭 신부의 높은 학식과 덕행에 상당한 존경심을 가졌다 한다.
러브럭 신부는 몽고에 포로가 되어 가족도 못 만나고 외롭게 억류생활을 당하고 있는 천주교 신자들을 찾아다니며 고백성사도 주고 미사도 드려 주었다. 러브럭 신부는 경교 사제들과도 친분을 가져 경교 사제를 따라 헌종의 장막에 가서 헌종을 알현하고 강복해 주었다한다.
러브럭 신부는 화림에서 성지주일을 맞이하게 되었다. 러브럭 신부는 화림에 빨마나무가 없으므로 생각다 못해 빨마가지 대신 아직 싹이 트지 않은 버들가지를 축성하여 들고 화림시를 돌았다한다.
러브럭 신부는 성주간과 부활주일에 경교사제의 허락을 얻어 경교 교당에서 자유롭게 미사를 드리고 세례까지 주었다. 러브럭 신부가 부활미사를 집전할 때 교당에 포로 신자들이 참석하였는데 신자들은 물론 러브럭 신부 일행 모두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한다. 그때의 미사가 얼마나 감격적이었나 하는 것을 알 수가있다.
헌종은 수차 사람을 보내어 러브럭 신부가 몽고에 온 목적을 묻더니 드디어 본국으로 가라고 출국명령을 내리고 러브럭 신부와 함께 온 바르톨로메오 신부에 대해서는 몽고에 계속 거류해도 좋다고 허락해 주었다. 그리하여 바르톨로메오 신부는 홀로 몽고에 남기로 하고 러브럭 신부와 고셋관원, 함께 온 노복 니콜라 세 명은 몽고를 떠나게 되었다.
헌종은 이 세 사람이 몽고국경지역까지 가는 데 드는 여비 일체화 호송원을 딸려 보내주기로 약속하였다.
세 사람이 화림을 떠날 때 실향민이 된 포로 천주교 신자들이 성 밖까지 나와 눈물을 흘리며 전송하였다 한다.
러브럭 신부 일행은 아란산을 통과할 때 그 지역에 인가도 없고 물이 없어서 심한 갈증과 허기로 사망할 뻔 하였다한다. 천산만수(千山萬水)에 혹한 기근과 싸우며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불란서에 돌아왔다.
러브럭 신부는「러브럭의 달단(撻袒)여행기」를 썼다. 이 여행기 속에 중국인의 문자몽고의 풍속ㆍ기후ㆍ종교ㆍ음식이 소개되어 있다. 이 여행기는 지리학, 전교학, 인류학, 여행학에 큰 공헌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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