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5월 라인강변「퀼른」에서는「루르드」로 가는 순례자용 특별열차가 플래트포옴을 떠났다.
이 순례단 가운데는 가련하고 동정 받을 28살의 처녀가 끼어있었다.
그 소녀는 1차 대전이 끝날 무렵이었던 18살 때 심한 뇌염에 걸려 쓰러졌던 소녀였다.
당시 그녀는 병상에서 회복의 희망도 사라지고 의사도 이미 환자를 포기 해버린 절망적인 상태에 있었다.
그래서 이미 병자성사까지 받아놓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참이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병환상태가 죽을 정도로 악화돼 가지도 않고 그렇다고 병세가 나아지는 것도 아닌 상태로 계속 시간이 흘렀다.
그야말로 10여 년 간이란 긴 수난의 시간이 시작됐던 것이다.
거기다 뇌염의 후발증세로 심한 신장병까지 재발됐고 2차 후유증으로 다리가 마비됐다.
가련한 소녀는 이제 서지도 앉지도 걷지도 그리고 끊어 앉지도 못 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다 섯 군데의 병원을 옮겨가며 무려 12명의 다른 의사들로부터 진단을 받아보곤 했지만 그들도 아무런 효험을 주지 못했다.
최종판결은「난치병」이란 진단뿐이었다. 게다가 광부였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과부가 된 노모와 함께 집세를 적게 물기 위해 조그만 방에서 살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한 암울함 속에서 이제 오직 한 가지 모녀의 한 가닥 빛나는 별과 같은 꿈과 희망은 「루르드」성지순례를 가는 염원이었다.
병치레로 가산은 이미 다 기울었고 환자도 이미 삶을 포기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이웃 사람들, 그들도 가난한 사람이 여행경비를 갹출해주었다.
드디어 5월초 이 처녀도 느린 완행열차를 타고 루르드 성지 순례 길에 함께 올랐다.
느리고 오랜 여행으로 루르드에 다 달았을 무렵엔 거의 반 죽음상태에 이르렀다.
그러나 저러나 루르드에 도착한 순례단 일행은 동굴에가 기도를 하고 성스러운 샘에서는 몸을 씻기도 했다.
그럭저럭 하루가 가고 이틀 사흘 나흘이 지났다. 그러나 병환은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악화되기만 했다. 보름째 되는 날 밤 처녀는 이제 자포자기 상태가 됐다.
심한 통증에 끊임없이 울면서『차라리 어머니 곁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집에 누워있을걸 그랬구나』하는 후회를 했다.
이 견디기 힘든 순간 그녀에게 악마가 다가와 속삭였다.
『너의 기도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것이야. 여기루르드에 있는 모든 것들은 터무니없는 환상일 뿐이야. 너 역시 다른 모든 이들처럼 속고 있는 거야…』
그러나 악마가 그렇게 속삭이며 마음을 흐트릴때도 그녀는 거룩한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더 깊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최상의 기도를 바쳤다. 끊임없는 기도 중에 사탄은 장난을 그쳤다. 그녀는 가슴 속에 기쁨이 서리고 고통도 줄어드는 후련함을 느꼈다. 그리고 아침에 다시 통증으로 눈이 뜨이자 환자 수송담당자들이 그녀를 동굴로 데려가기 위해 왔으나 이제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늘의 뜻에 맡기겠다고 거절했다.
내일이면 이제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날이다. 오후에 그녀는 환자호송인들에게 괴로움을 끼치지 않으려고 혼자 성스런 샘에서 떠온 물을 찍어 몸에다 대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인가. 그녀의 다리가 펴졌다. 순간 놀라운 기쁨이 번쩍 머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정신을 차린 그녀는 기뻐 어쩔 수가 없었다.
10년간 서지도 못 했지 않는가. 그녀는 급히 옷을 입어봤다. 10년을 그녀는 혼자 힘으로 옷을 입지도 못했지 않았던가.
감사로 복받치는 심장으로 털썩 끓어 앉아보지도 못 했던 그녀였지 않았던가.
그녀는 목이 터져라 기도를 했다.
『오 인자하시고 자비로우시며 사랑스러우신 성모 마리아님!...』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