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년
3월 19일 영하 8도. 북서풍. 너무 추워서 내 방에서는 도저히 몸이 더워지질 않는다.
3월 25일 마라발 신부로부터 편지. 조선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돌아오고 싶다는 그의 소망을 매우 감동적인 글로 적어 보냈다. 그는 여전히 허약하여 거의 온종일 누워 지낸다. 삭발례를 받은 학생 박 방지거가 그의 집으로 떠났다. 용산 신학생 바드리시오는 심한 기관지염에 걸렸다. 빌렘 신부도 요즈음에 몸이 좀 불편했으나 이젠 많이 나았다.
3월 31일 샤르즈뵈프 신부로부터 전보가 옴. 노렌조라는 교우가 어떤 외교인에게서 매를 맞고 강가 다리아래로 내던져졌다고 한다. 관장이 그 죄인을 벌하겠다고 약속하였다고. 드 장드르 신부는 회복되어 가고 있다. 대성당 건축을 위한 첫 번째 측량이 있었다. 언제나 완공될까? 한 수레에 2냥씩 주고 돌을 실어오다.
4월 3일 두세 신부가 저녁식사에 오다. 그는 내일부터 그의 성당공사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이틀이나 더 양로원에 가서 성사를 주어야하니 말할 것도 없이 내가 그의 일을 대신해 주어야겠다.
4월 4일 이질로 인한 설사와 복통으로 고통스런 밤을 보내다. 양로원에가다. 낮 동안 몹시 고통스럽게 보내고 저녁 때 두 명의 어른에게 영세를 주다.
4월 8일 고통스런 밤을 보내고 와일즈 박사에게 가 진찰을 이질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더 이상 악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단다. 고기도 생선도 포도주도 리큐르주(酒)도 모두 금지다. 고추도 먹지 말고 너무 짜게도 먹지 말란다.
4월 9일 좀 나은 밤을 보내다. 낮 동안엔 한결 더 좋아지다. 아침에 게렝씨에게 샤르즈뵈프 신부의 청원서를 보내다. 원산사건을 해결 짓고 기장사건(천주교신자와 양인(洋人)의 고발을 권고하는 벽보사건)에 대한 정보를 알려달라는 청원이다.
4월 12일 어제 용산에 르비엘 신부가 찾아오다. 그의 소망은 제물포에 성당을 짓는 것이라고 한다. 사실 성당을 지어 놓으면 당장에라도 크게 유용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마련한 얼마 안 되는 돈에 교구 보조금을, 다시 말해서 적어도 2천불은 선금으로 보태주어야 할 텐데, 그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4월 14일 8시에 미사. 성유 축성 후 제의실 뒷방에 마련된 무덤 제대로 성체를 옮겨가다. 낮 동안에는 줄곧 여 교우들이, 밤에는 남 교우들이 아주 열심히 성체조배를 하다. 비가 오다.
4월 17일 예수부활주일. 할렐루야. 오전나절에 비.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차례의 미사에 유례없이 많은 사람이 참석하였다. 영성체자가 2백 명 가까이 되다. 정오미사는 두세 신부가 와서 드리다. 저녁 무렵부터 날씨가 개다. 성체 강복식에 아주 많은 여 교우들이 참석하여 많은 사람들이 밖에 서 있어야만 했다.
4월 26일 아침에 일어나다가 허리가 아파 다시 눕고 말다. 그럼에도 8시경에 불편한 몸을 이끌고 미사를 드리다.
5월 8일 비 때문에 교우들이 예식에 참가하는 기쁨을 누리는 데에 큰 곤란을 겪다. 예정 했 던대로 오전에 정초식을 거행하기란 불가능하다. 4시에 드디어 머릿돌 축성식을 시작할 수 있게 되다. 머릿돌을 고정시키기 전에 쿠데르 신부를 포함하여 거기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서명한 식순(式順)과 오늘까지 조선에서 일 해온 주교들 및 선교사들의 명단, 그리고 은인들의 명단을 넣어 땜질로 봉한 양철통을 돌 아래에 만들어 놓은 훔 속에 넣다. 한문으로 작성된 문안은 거의 단어 하나하나 라틴어로 번역되었고 긴 명단(1천명이상의 이름)에는 대성당을 짓는 데에 애긍으로써, 또는 자원 봉사로써 기여한 조선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예식은 성체강복으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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