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른들도 학창시절의 방학을 기다리던 순수한 낭만을 잊지 않고 있어야한다. 그리고 또 그때 어른들의 지나친 간섭이 괴로웠고、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로부터 무작정 떠나고 싶었던 절실한 마음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
H군의 어머니는 아들의 가출문제 때문에 의논을 하면서 비교적 차분했다. H는 방학이 될 때까지 아무런 눈치도 안보였다. 2학기말 고사를 치르는 동안 동네 독서실에서 밤을 새우다시피 열심히 공부를 했다. 그리고 시험이 끝나고 겨울방학이 시작되면서 H는 두명의 친구와 함께 가출을 했다. 『남편이 사업 때문에 지방에 있어서 아이들을 엄하게 기르고 있어요. 친한 친구들이라도 그집에 가서 잔다거나 우리집에 와서도 늦은 시간까지는 놀지 못하게 했죠. 동생과 달리 말이 업고 착해서 말썽을 피운 적도 없답니다. 성적이 중간정도여서 그 애 아버지도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말만 할뿐 별다른 잔말은 안 한답니다』.
H의 어머니는 고등학교 일학년인 아들의 가출원인을 지방에 계신 아버지와 사귀는 친구들 때문으로 보는 얘기였다.
국민학교에 다니는 동생에게 형은 친구들과 함께 하고 나간 H는 닷새가 넘어도 오지 않았을 때、H의 친구들 어머니 두 사람이 H군 집에 왔다. 그 어머니들은 H군의 얘기를 아들들한테서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집은 감옥과 다를 바가 없으니 어서 커서 독립을 해야한다는 엉뚱한 얘기를 친구들에게 했다는 것이다.
냉정할 만큼 침착한 H의 어머니는 전화통화까지 여섯 번을 같이 의논하였다. 열흘 만에 무사히 세 소년이 돌아온 후에 만났을 때 H의 어머니는 오히려 당황하고 초조해 했다. 오직 두 형제 기르는데 온갖 정성과 희망을 걸었는데 H는 이제 자신의 친아들이 아닌 것 같이 아주 멀게 느껴진다고 호소했다. H의 어머니는 이 방학이 끝나기 전 시골 친정집에 가서 머리를 쉬어야만 할 것 같다는 얘기를 기운 없이 했다. 짧은 겨울해가 기울어、어두워진 방에 마주 앉아서、두 아이들과 집 밖에 모르는 이 야무진 어머니에게 아들의 가출사건이 왜 일어났는가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얘기를 펴 나갔다.
고등학교 학생들은 모두가 밧줄에 묶인 기분이라는 걸 이해해야 한다. 한 집안의 부모라면 더욱 이런 학교생활을 자녀와 함께 느낄 줄도 알아야 한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짜여진 일과표에 따라 생활한다. 월말고사 기말고사 모의고사 등등. 시험을 수없이 치르고 해도 해도 끝이 안나는 공부 그리고 쉽게 오르지 않는 성적. 학급에서는 상위권에 들어야만 겨우 대학교 교표를 달수 있는 현실. 공부만을 위해서 먹고 걷고 웃고 로봇과 다르다는게 신기할 만큼 기계적인 삶이 고등학생들이다. 그나마 방학이라는 단어가 있기에 숨통이 막히지 않는다고나 할까. 겨우 고등학생이 된 H는 이 겨울방학이 지나고 나면 2학년이 되고 그때부터는 대학교 진학을 준비하느라 방학이 없다는 걸 잘 안다. 이런 마음의 갈등을 의논하고 싶어도 집에는 형이 없는 H는 아버지도 모처럼 한번 만날 뿐 어머니는 늘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해지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H와 그의 친구들이 큰맘 먹고 배낭을 지고 설악산을 거쳐、야영을 하면서 고생한 얘기도 이제 어머니는 들어 주어야만 한다. H어머니께서는 가출신고를 받고 이제 개학이 되면 또 전쟁 치르듯이 바쁜 새 학기가 시작될 터이니 함께 준비하면、훌륭한 동조자가 된다. 그러면 빨리 커서 독립하고 싶다는 말은 아들의 입에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조용하게 H의 어머니는 긴 얘기를 들었다. 「가출신고요?!」처음으로 웃었다.
조순애<선일여고교사ㆍ시인ㆍ「소복」「어색한 외출」등 시집ㆍ수필집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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