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학교 입학 소식은 우리 가족뿐 아니라 친척들에게도 화제거리가 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신부가 드물었던 그 당시에 집안에서 신부가 한명 생긴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집식구ㆍ친척들의 열렬한 격려와 관심 속에 나는 17살 나던 해인 1914년10월 대구의 성유스티노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성유스티노신학교는 대구대교구 초대교구장이었던 드망즈 안주교가 대구대목구초대감목으로 부임하신지 3년만에 세운 학교로 안주교님이 신학교 지을 돈이 없어 애를 태우던중 익명의 인사가 신학교 이름을「성유스티노 신학교」라고 명명한다는 조건 하에 기금을 내서 지어졌다고 한다.
나는 이러한 유리를 가진 성유스티노 신학교에 제1회생으로 입학하게 된 것이다. 지금 대구대건고등학교 운동장 좌측에 남아있는 건물이 70여년 전 내가 공부하고 생활했던 신학교건물이다.
그때 함께 입학했던 동기는 모두 58명이었는데 그중에는 후에 주교가 된 최덕홍 주교、지난 84년 선종한 박재수 신부님도 있었다. 야마구찌라는 일본인도 한명 입학을 했다. 그리고 서울 용산신학교에서 위탁교육을 받던 대구대교구 첫서품자 주재용 신부 등 6명의 선배들도 대구신학교로 전입해왔다.
동기생들의 연령층도 다양했는데 15~16세가 제일 많았다. 그래서 17세였던 나는 야마구찌ㆍ박재수 신부와 함께 나이가 많은 늙은 학생에 속했다.
마산에서 다녔던 성지학교와 같이 신학교도 말이 학교지 문교부의 허가 같은 것도 없는、서당과 같이 그냥 학생들을 모아놓고 공부하는 식이었다. 지금의 신학교와는 천차만별이었다. 학생들의 나이도 다양했지만 수준도 고르지 못해 한글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했다. 소학교를 다녔던 나는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이때 공부를 가르쳤던 신부님은 단 둘이었다. 으뜸신부라 불렸던 교장신부님과 당가 신부님이라 불렸던 관리국장 신부님. 이 두분이 모든 수업을 맡아서하셨다.
겨우 한글을 깨우친 정도에서 철학ㆍ신학을 공부하려니 죽을 지경이었다. 그것도 라띤어로. 우리는 수업을 포함해 일상생활을 라띤어로 해결해야 했다. 한국말을 하다 신부님에게 들키면 그대로 성적에 반영돼 감점처리가 되었다. 이러한 라띤어 사용은 주일ㆍ대축일ㆍ소풍날에만 관심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신학교 생활중 공부하는 것이 제일 어려웠던 것 같다.
수업과목은 철학ㆍ신학ㆍ라띤어 등의 어학이었고 한일합방이 되고난 후는 산수와 일어도 배웠다. 시험은 매월 치는 구두시험과 일년에 한번 치는 구두ㆍ필기시험이 있었다. 일년에 한번 치는 시험은 이틀에 걸쳐 실시되었는데 이때는 신학교 신부님 외에 주교님도 시험관으로 들어오시곤 했다. 그때는 5점이 최고였고 3점 이하가 되면 이유불문하고 탈락되었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학생들 중 한글을 모르는 이들이 많아 공부문제는 나뿐만아니라 동기생 모두의 걱정거리였다. 후에 신부가 된 사람은 58명중 11명뿐이었는데 중간에 병으로 사망한경우도 있었지만 공부문제로 세속사람이 된 경우가 더 많았다.
최덕홍 주교는 나보다 나이도 적었고 공부도 힘겹게 하는듯 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어 은근히 나를 놀라게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방학은 일년에 한번이었다. 7월부터 3개월 정도. 우리는 그때 한복두루마기를 입고 학교에서 만들어준 앞코가 물렁물렁한 구두를 신고 다녔는데 이 구두는 학교에 있을때만 신을 수 있었고 방학을 맞아 집에 갈때는 벗어놓고 가야했다. 방학 때는 집에서 집안일을 도왔다. 나무도하고 동생들 짚신도 만들어 주고….
「노사제회고」는 이번호부터「주님안에 한평생-원로사제들의 일선사목 체험기」로 제목을 바꿔 계속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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