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랍 13일부터 31일까지 쟁의에 들어갔던 대구파티마병원노동조합이 1988년 12월19일에 한 유인물을 내놓았는데 거기에 「구미노동사목」이 이 쟁의를 지지하는 기구라고 제시되어 있다. 이「구미노동사목」이란 짐작컨대「가톨릭노동사목기구」와 관계가 있는「구미가톨릭근로자센터」를 뜻하는 모양이나、이것은 전혀 독립된 기구이다.
구리 가톨릭근로자센터는 공식적으로 지지를 청탁받은바가 없으며、공식적으로 지지를 약속한 바가 없다. 이 기회에 구미가톨릭근로자센터가 주장하는 노선을 밝히고자 한다.
우리는 노동조합들의 결성을 전적으로 지지하며、노동조합들이 노동자 해방의 역사에서 불가결한 역할을 수행해 왔고 또 수행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노동자들의 운명이 오로지고용주들과 정부기관들에만 맡겨져서는 흡족한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 이것은 또한 공식 교회의 입장이기도 하며、역대 교황들은 이를 거듭 표명해왔다.
그렇지만 우리가 어느 단체이든 노동조합이라는 이름을 내세우기만하면 무조건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지지를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전제되며、그 충족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될 조건이다.
1、노동조합은 그 지향이 민주적이어야 하며、그 행동도 그래야 한다. 민주주의는 하나의 사회질서 체계이다.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에 따라、한 공동체의 구성원들로부터 하나의 수권을 받아야한다. 즉、그들에 의하여 선출되어야 한다. 이것은 한편 이 대표자가 이 공동체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을 대표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그 대표권이 특정한 인간들의 공동체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다. 이 점、노동조합에도 해당한다.
노동조합은 이익단체이다 이익단체는 자유의사를 가진 회원들로 구성된다. 즉 어느 누구에게든지 한 특정한 집단이나 그대표자가 그대표권을 강요할수는 없다.
따라서 한 사업체 안의 한 노동조합이 자체 회원만이 아니라 종업원전체를 대표한다는 주장하고 나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런 비민주적인 주장을 하는 노동조합은 우리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노사협의회에 관한 한국노동법(6조)은 비민주적인 규정으로 생각한다. 노동조합이 구성되어있는 사업체 안에서는 이 노동조합이 자동적으로 노사협의회에서、노동자들을 대표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한 사업체에서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일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대표자들이 모든 이에 의하여 선출되어 있어야한다. 사업체내에서 민주화를 이룰 때 노동조합들의 기능은 하나의 분파가 노동자들 가운에서 그 목적을 달성하려고 애쓰며 노동자대표를 선출할 때 후보자를 내세우는 그런 기능일수밖에 없다.
물론 노동조합이 자기의 회원들을 위해서 따로 기업주와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이 노동자일부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협약(계약)은 그리 바림직한 것은 아니다.
한 사업체 종업원들의 자율성이 그러므로 항상 보장되어야한다. 이 자율성이외부로부터 초기업적으로 조종되는 어떤 집단에 의하여 박탈되어서는 안된다. 설사 이 집단이 합법적인 노동조합이라 하더라도 그렇다.
한 집단이 모든 이를 대표한다고 주장한다는 것은 스스로 대표권을 독점하는、일종의 월권행위이며 이것은 실상 독재에서나 나타나는 일이다.
애석하게도 한국에는 아직 노동자들을 민주적으로 대표하는 적절한 사업체 내부제도가 없다. 노사협의회는 전혀 미흡한 제도이다. 특히 초기업적인 영역에 자리해야 할 노동조합들의 역할도 새로이 정의되어야한다. (예컨대 산업별 임금과 노동조건에 대한 교섭권、노동법 개정과 노동경제 정책에 대한 공식적인 자문권)
2、노동조합들은 정당한경기 규칙을 지켜야한다. 즉、그 목적도 그 목적을 달성하려는 방법도 윤리적으로 선해야 한다. 최근일련의 노사쟁의 중 때때로 나돌았던 유인물에 나타난 바와 같이 상대방에 대한 비방과 중상(욕설) 、사실에 관한 기만과 왜곡(거짓말)이 우리의 동의를 얻을 수는 없으며、따라서 그런 집단의 행동들의 우리의 지지를 기대할 수는 없다.
하물며 폭력행사를 우리가 긍정할 수는 없다. 파업이란 조업의 중단이지、일을 하겠다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방해가 아니다. 이점、인간의 건강과 생명이 걸려있는 병원에서는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따라서 의료관계 서류의 압수、사무실의 점거、농성에의한 지나친 방해、환자들을 괴롭히는 소음 등을 수긍할 수는 없으며、이것은일종의 폭력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목적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해 두고자 한다. 현재 수많은 노사분규 현장에서는「노동자들이 주인이라야 한다」는 슬러건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비방하려는 것이 아니라、몇가지 묻고자 한다.
이 주장은 프롤레타리아독재의 추구를 의미하는가? 주인이 행세하는 곳에는 으례 종도 있게 마련이다. 그러니 주인을 바꿈으로써 좋지 못한 자본주의라는 종래의 관계를 그저 뒤집어놓자는 말인가?
우리의 목적은「주인 없는」사회이다. 이것은 무질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와 탈권이 없어야 된다는 것을 뜻한다.
허창수 <신부ㆍ구미가톨릭근로자센터소장겸 대구가톨릭신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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