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예쁘다』
전원도시국가、세계 제2의 무역항、말레이반도의 현관문이라는 연중 여름의 코스모폴리타니즘의 나라 싱가폴. 입국심사를 끝낸 공항직원이 유창하게 우리말을 한다.
『고맙습니다. 한국말을 잘하시네요』
그리고는 그에게 빙긋 웃어 준다. 공연히 싱가폴이 좋아질 것 같다.
오늘 아침은 호텔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매번 식사 때마다 늘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호텔에서의 아침식사는 대개 부페식인데 이에 익숙해 있지 않으신 노인들께선 종종 공동수저를 들고 오시기도 하고、예쁘게 썰어놓은 치즈조각을 과일인줄 알고 집어오시기도 한다. 오늘은 접시가 비는 대로 가져가는 웨이터를 붙잡고는 식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왜 가져가느냐고 호통을 치신다. 그래도 식사를 거르시지 않고 잘 드시는 노인들의 모습이 보기가 좋다.
밤새 비가 내렸는지 거리는 흠뻑 젖어있었다. 그러나 날은 화창했고、거리는 말할 수 없이 깨끗했다. 「깨끗한 정부、깨끗한 거리、깨끗한 공무원」이라는 3대 지표를 걸고 있는 나라답게 어디를 바라보아도 청결함을 느낄 수 있다. 거리에 휴지나 담배꽁초 등을 버리면 벌금이 미화 2백50달러라고 하니 환경보존을 얼마나 중요시하는가를 알 수 있다.
싱가폴 남쪽에 있는 센토사 섬에 갔다. 센토사는 평화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섬은 우리나라의 경북궁과 비원을 합친 정도의 크기이다. 월드 트레이드센터에서 페리를 타고 3분정도가더니、그만 내리라고 한다. 마침 초등학교 학생들과 중학교학생들이 소풍을 온 탓으로 그곳은 활기에 가득 찼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흑단처럼 검은 눈동자. 문득 싱가폴에서 맨 처음 들었던 말을 기억해낸다. 함께 유람열차를 타고 가던 중학교 소녀들에게 꼬마 아가씨들 참 예쁘다고 했더니 귀엽게 웃는 얼굴에 보조개가 팬다.
섬에는 박물관과 미술센터、수족관등의 시설을 완비하고 있었다. 박물관에는 싱가폴이 어떻게 영국의식민지가 되었고、나중에는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독립된 국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필름으로、그림으로 혹은 그 모형으로 잘 설명되어 있다. 싱가폴에는 박물관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식민시대를 느끼게 하는 건축물도 많다. 고딕 양식의 성안드레아교회、빅토리아 기념극장、코린트양식의 시청사 등이 그것이다. 견고하고 유려한 건축물들을 바라보며 느껴지는 울적한 심사의 내역은 무엇인가.
케이블카를 타고 섬을 떠났다. 케이불카창문 너머로 해한 멀리 크고 작은 배들이 정박해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한쪽으로 소련 배들이 많이 들어와 있었는데、수리비가 싼 때문이라고 한다. 자유항으로 세계 속의 물건을 제 나라보다 싸게 살 수 있다는 싱가폴이니 쉽게 이해가 가는 일이다.
시의 서북쪽 흘랜드로(路)에 있는 식물원을 찾았다. 1ㆍ8㎞ 가득 싱가폴의 깔끔한 조경이 극치를 이루고 있다. 정갈하게 손질된 나무、맑고 고요한 호수 그리고、이 나라의 국화인 오키드의 화려하고 현란한 아름다움이 한데 어우러져 풍성한 기쁨을 느끼게 했다.
둥근 돔의 성곽과 같은 회교사원、적ㆍ청색의 원색으로 칠한 중국사원이나 기괴한 짐승의 상이 서 있는 힌두사원이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하는 싱가폴.
그곳에도 성당은 있다. 우리 일행은 주교좌 성당인 듯 한「착한 목자의 성당」을 찾았다. 문이 잠긴 성당 주위에서 서성이고 있었더니、성당지기인듯한 남자분이 와서 문을 열어 주었다. 고요하다. 제대 앞과 감실 앞에 장미꽃이 정결하게 장식되어 있을 뿐.
감실 앞에서 우리는 잠시 묵상을 했다.
『주여、내가 당신을 뭇백뭇나라 가운데서 당신께 노래하리이다』(시편58、9)
문득 몸이 훈훈해진다. 싱가폴의 밤은 그렇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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