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0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치명한 순교사 8인중에서 남은 마지막 3인은 김 안나 김 로사 두 과부와 원 마리아 동정녀이다.
김 안나의 생애에 관해선 오직「기해일기」가 전하는 것 뿐이고 그나마도 간략하다. 기해일기에 의하면 안나는 서울 출신이고 구교집안에서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했다. 중년에 이르러 과부가 된 후로는 노모를 모시고 살면서 빈궁한 생활을 감수인내하고 모친에게 극진히 효도했다. 모친은 다행히 신부 입국하는 때까지 살아서 성사를 타당히 받고 선종하였다.
안나는 같은날 한가지로 순교한 이요한(겸삼)과 같이 조그마한 장사를 하며 먹고 살았다. 이 요한과는 이웃에서 말하자면 한 집에서 거처하고 있었던 관계로 2월 28일(4ㆍ8) 그와 함께 잡히어 문초와 고문도 같이받았다. 종래 배교하지 않으므로 형조로 옮겨져 사형이 확정되었다. 옥에 있은지 5개월만에 치명하니 나이는 51세였다.
김 로사는 일명 감골집으로 불렸다. 아마 감골이란 곳으로 출가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본시 외인 부모에게서 나서 남편이 죽은 후에 비로소 성교를 알게되었다. 천주교인 친척과 같이 살고있었으므로 도리와 경문을 부지런히 배워 익혔다. 열심히 벌어 의식이 구차하지 않았고 그래서 모친과 동생들을 회두시키고 그들과 화목하며 살아나가기가 어렵지 않았다.
매양 진절한 통회를 발하고 신공에 아주 충실했다. 신부가 입국하자 예비를 타당히하고 성사를 자주 받았다. 또한 신부에게 대한 정성이 지극하여 자주 음식을 성의껏 준비하여 드리곤 했다.
김 로사는 이미 4월 12일에 순교한 권 베드로와 같이 잡혔다고 한다. 그렇다면 로사는 이미 무술년(1838) 12월 2일에 잡혔을 것이다. 밤중에 허다한 포졸들이 불시에 달려들자 예수 마리아를 부르며 위주치명할 결심을 하고 동서와 함께 잡혀갔다.
포장이 출두시켜 신문하기를『네가 천주학을 한다니 사실이냐』『과연 그러하옵니다』고 신앙을 고백했다.
형구를 내보이며『네 몸이 흑독한 주리와 주장을 받기전에 천주를 배반하고 일당을 대라』고 위협했다. 『장하에 죽사와도 배반은 할 수 없고 당도 댈 수 없습니다. 그러니 더 묻지 마옵소서, 죽을 따름이로소이다』이에 포장이 크게 노하여 로사에게 잔인한 형벌을 가하게 했으나 그의 견고함은 한결 같았다. 세 번을 계속하여 이 같이 고문했으나 로사는『죽을 따름입니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형조로 이송된 후에도 포청에서처럼 몹씨 매를 맞았지만 한결같은 그의 굳은 신앙을 조금도 약화시킬 수는 없었다. 마침내 옥살이 8개월만에 희원해 마지않던 순교의 월계관을 획득하니 때의 그의 나이 56세였다.
끝으로 6월 10일 서소문 형장에서 최후의 희생자는 21세의 젊은 동정녀 원귀임이었다. 귀임은 1819년 고양군 용머리에서 출생했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아홉살때 서울로 와서 아주머니뻘 되는 원 루시아 집에 붙여 살았다. 여기서 천주교리를 배우게 되었고 또 이 집이 수놓아 생활했으므로 귀임도 한가지로 수놓는 것으로 본업을 삼았다. 양순한 성품에 항상 심신이 평화스러웠으며 비록 나이가 젊었을지라도 백사에 신중하고 성숙한 태도를 보여서 모든 이를 탄복케했다.
15세에 신부로부터 세를 받은 후 수정하기를 결심하고 허원하였다. 기해년에 군난이 크게 일어나자 2월 25일(4ㆍ8) 밤중에 포졸들이 원 루시아의 집을 포위했을 때 마리아는 요행히 빠져나와 성문밖으로 피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길에서 아는사람을 만나 그 사람의 고발로 그만 잡혔다. 이때 세 사람이 같이 잡혔다고 한다. 처음에 마리아는 당황한 나머지 정신나간 사람처럼 실신한 모양이었다. 모든 것이 주명이 아닌 것이 없을뿐더러 이것도 천주께서 주시는 은혜일 것이라는 생각이 곧 마리아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포청에서 우선 종사관이 나타나서 대략 문초한 다음 포장이 직접 마리아를 불러 이와 같이 신문하였다. 『네가 천주학을 하느냐』『과연 천주를 공경하옵니다』『이제라도 배교한다면 놓아주겠다』『천주를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로 뜻을 결단하였사오니 다시 더 묻지마옵소서 다만 죽음을 기다릴 따름이로소이다』
이에 형리가 주리를 틀고 흥몽둥이로 매질하며 형벌을 흑독하게 가했지만 굴복하지 않았다. 이렇게 신문이 있을 때마다 여러번 받은 중한 고문때문에 온 몸이 늘어지고 피가 땅에 흘렀으되 마리아는 언제나 정신을 잃지않고 항상 조용히 또 품위있게 대답했다.
형조로 이송된 후에도 마리아에게서 한마디 배교한다는 말을 얻어내고자 친절하게 달래기도 하고 부귀영화로 유혹하다가 못하여 마침내는 가혹한 고문으로 위협하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했으나 도리어 그의 순교의 뜻을 굳힐 뿐이었다. 이밖에도 마리아는 감옥에서 굶주림과 추위, 갈증과 염병 등으로 미문의 고초를 겪어야 했으나 그의 마음은 항상 안온을 잃지 않았다. 드디어 5개월의 구류끝에 그의 피로써 직접 그리스도와의 혼인계약에 수결함으로써 신랑을 마중나가는 저 지혜로운 다섯 동정녀 축에 끼이는 영광을 차지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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