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되면 나는 부쩍 살이 오른다.
남들은 죄다 여름엔 마른다지만 나는 절대 그렇지가 않다.
우선 너무 입맛이 나서 걱정일 지경이다.
대가 연한 어린 열무에 풋고추와 마늘을 뚜드려넣고 밀가루 풀물을 끓여넣어 익힌 열무김치를 한젓갈 듬쑥집어 부실부실한 반섞이 보리밥위에 얹어 잘 삭은 고추장과 같이 썩썩 비벼 입에 떠놓으면 야, 이게 바로 먹는 즐거움이로구나 하는 감회가 불쑥 솟구친다.
원래가 고습스런 인간이 못되어서 그런지 내 식성은 천하리만큼 소박하여 잣이나 호무를 얹고 레몬즙을 떨어트린 그런 요란복잡한 요리는 도대체 정이 붙지를 않는다.
허나 이 풋고추 곁들인 열무김치만은 다른 계절에 살때도 문득문득 사무치어 국화꽃을 보기위해 가을을 기다리는 시인만큼이나 간절히 여름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 이상한 노릇은 이 열무김치는 천상 여자에게나 합당한 음식이라는 괴이한 고정관념이 내게 못박혀있는 사실이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의 이야긴데 그때 내겐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멀어질수도 가까워질수도 있는 보이후렌드가 한사람있었다.
눈이 사슴처럼 크고 피부가 결백한, 일견해서 외국사람과 같은 인상의 청년이었다. 하루는 난 그 사람집에 소개받아 가서 그이와 정심을 같이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는 수저를 들자마자 댓자곳자로 열무김치 한탕기를 거의 반이나 밥위에 쏟아붓더니 버얼건 고추장을 한숱갈 듬뿍 떠서는 거기에 대고 이겨대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김치인지 밥인지 꼬추장인지 모르게 된 그것을 수저 가득히 끌어올려서는 입귀가 터지도록 우악지지 와작와작 씹어대는 것이었다 나는 그만 정이 똑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남자가 비빔질을 한다는 것부터가 도무지 싫은데다 입가에 버얼건 고추장을 묻혀가며 먹고있던 그 모습은 가히 추태라 불리울만 했다. 딱히 똑 그 이유 한가지만이었다고 할수는 없지만 그뒤 나는그와 아주 멀어져 버렸다. 그리고 그 뒤엔 나도 되도록 조심하여 아주 낯익고 스스름 없어진 사람들 앞이 아니고선 좀 체 고추장든 비빔밥을 입에 대 지않는다. 그러나 난 별로 낯선사람과 식사를 같이하여야 할 경우가 흔치를 않으니 그 때문에 한여름을 불편히 지낼 필요는 없는셈이다.
된장찌게가 제맛을 내는것도 이 여름철인데 왜냐하면 풋고추와 호박이 이 때에 번성한 것이어서 된장찌게가 제대로 제맛을 낼수있기 때문이다. 겨울엔 두부로 곁들인 청국장(담북장)이 제격이다.
쌉씨하고도 배트레한 된장찌게 역시 여름날 내 밥맛을 돋구는 요인이다.
이러고보니 계속 먹는 애기만 하고 있었던듯 한데 여름에 내가 살찌는 이유를 바로 대기 위함이다. 육기보다는 채소를 좋아하는 나의 식성이 바로 내가 여름을 즐거이 보내고 있는 까닭인 것이다.
하기야 어찌 여름이 푸성귀 때문에만 좋을것인가
노상 합성섬유의 눅눅하고 말끄러운 그늘밑에 숨막혀온 나의 살결이 비로서 그 답답한 구속에서 벗어나 비로소 햇빛아래 자유로와짐도 바로 이 여름뿐이요, 또 내가 무더위에 쫓겨나 한밤에 밖으로 나와 밤하늘을 오래 고즈넉 바라볼수 있는 계절도 바로 이 여름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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