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5월하순 교우들에 대한 엄격한 검거령이 새롭게 공포됨에 따라 이미 6월 초순에 서울에서 유진길 조신철 정하상 등 교회의 중진들이 속속 검거되는거 하면 이광열과 7명의 여교우를 사형에 처하는 등 잠시 주춤했던 박해가 다시 열을 띄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한 때 평온한 틈을타서 서울을 빠져나가 배편으로 수원으로 피신한 앵베르 (범)주교는 거기서 안전하게 숨어있을 수 있었다. 수원의 양감이 고향인 정 안드레아는 손 안드레아와 한가지로 양감의 「상게」라는 곳에 주교를 위해 은신처를 마련해 드렸던 것이다. 그런데 이곳은 바다로 깊숙히 뻗어나간 반도 끝에 있는 매우 외딴 작은 마을이어서 배신자에게 고발당하지 않는 한 하등의 위험없이 오랫동안 안전하게 숨어 지낼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외딴 은신처에서도 범 주교는 서울과 지방으로부터 박해에 관한 소식을 계속 듣고 있었다. 그간 배신자의 책등과 배교자의 고발로 인하여 서양인 주교와 신부가 잠복해 있다는 사실과 그뒤 교회의 모든 비밀이 탄로되었으며 양인선교사를 체포하는 자에겐 큰 상금이 약속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궁지에서 범 주교는 적어도 선교사 하나가 자진하여 희생되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하였고 그래서 두 신부와 이 일을 상의할 결심을 하고 그들을 불러오도록 손 안드레아를 파견했다.
샤스땅 (정)신부에 이어 6월 19일(7, 29)에는 모방 (羅) 신부도 주교의 은신처에 도착했다. 이 모임에서 어떠한 결론이 나왔는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범 주교는 자기 혼자 남아서 박해의 희생이 되고 두 신부는 일단 중국으로 피신하도록 권고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두 신부는 이 제의에 동이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한국을 떠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뿐더러 중국이나 만주 해안에 상륙한다는 것도 뱃사공의 죽음을 초래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범 주교는 새로운 지시가 있을때까지 숨어있으되 최악의 경우에 대비하고 있으라는 당부를 하고 이튿날 신부들과 작별하였다.
상술한 바와 같이 3인 선교사를 잡는 자에게는 후한 현상금까지 걸려있었다. 이때 유다스 김여상이 만일 자기에게 필요한 수의 포졸을 동반시켜준다면 그들을 잡아 올리겠다고 자원하여 나섰고 포청은 그의 이러한 제안을 쾌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체포가 쉽지않을 것을 예측하고 김여상은 모략을 쓰기로 작정하고 한가지 흉계를 꾸몄다.
김여상은 우선 지방으로 내려가 이전 교우친구들을 찾아가서 이렇게 거짓말을 지껄여댔다『서울에서는 가장 견식이 있는 우리 교우들이 법정에서 천주교를 설명했더니 법관과 대신들까지도 진리에 대해 눈을 떴다. 만일 그들에게 누가 복음을 잘 설명한다면 모두가 그것을 받아들일 처지이다. 마침내 자유의 시대가 왔네. 주교와 신부가 나타나면 온 조정이 교우가 될것이 분명하네. 나는 주교에게 보내는 정 바오로의 편지를 갖고 왔네. 그러니 주교님이 어디 계신가 가르쳐주게』
이 굉장한 소식에 속아 넘어간 한 교우가 필시 정 안드레아가 주교의 피신처를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다스는 곧장 정 안드레아의 집을 찾아갔다. 정은 헌신적이고 훌륭한 교우였지만 불행히도 고지식하기 그지없는 인간이었다. 그래서 그는 유다스의 말에 조금도 의혹을 품지않았다. 그러나 정은 밤새 곰곰히 생각한끝에 만약을 염려하여 혼자서 가겠다고 했더니 유다스는 포졸만은 따라가지 않기로 했다. 김여상은 주교 은신처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단 길을 멈추고 정만을 주교의 은신처로 보냈다.
주교앞에 이르러 정 안드레아가 그간의 얘기를 하니 주교는『너는 마귀에게 속았다』고 하였다. 자수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한 주교는 이튿날 즉 7월 3일(8ㆍ11) 아침 일찍 마지막 미사를 올린다음 두 신부에게 편지를 썼다. 그 다음 조그마한 보따리를 싸갖고 유다스가 기다리고 있는곳으로 걸어가서 자수했다. 주교는 곧 서울로 이송되어 포청에 갇혔다.
범 주교의 체포는 조정을 심히 놀라게 했다. 시원임대신이 같이 입시한 자리에서 우의정 이지연은 이번일은 경솔히 다룰수 없고 자세히 조사함이 시급하니 포청에만 일임할 것이 아니고 의금부로 하여금 취급하게 해줄 것을 청하는 동시에 또한 양인이 3명인데 그 가운데 羅와 鄭 2명은 현재 남도에 갔다하니 즉시 포교를 발송해야 마땅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하여 대왕대비김씨는 국청을 차리는 일은 시급한 일이 아니니 포청으로 하여금 다시 형신하여 완전히 조사할것이고 또 羅와 鄭을 체포하게 발리 포교를 남도로 발송할 것을 명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체포를 칭찬하는 뜻에서 이번 체포에 공로가 있는 자들을 아울러 포상할 것도 분부했다. 그래서 범 주교를 고발해 준 김순성에게는 5형장에 상당하는 외직을 제수하였고 포교 손계창은 변장으로 영전되었다. 고발자 김순성이 김여상과 동일 인물일것이 분명하다.
羅와 鄭 양위신부의 체포가 강연되자 정부는 7월 13일자로 종래의 5가작통법을 충청도에서 엄격히 적용하라는 훈령을 내렸다. 이제 두 신부의 체포는 시간문제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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