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많은사람들은 때때로 해결하기 어렵다기보다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던 어려운 일들이 아침햇살에 이슬이 사라지듯 난제들이 풀려나가는 것을보고 감탄해 마지않는다. 그리고 당사자들의 능력을 격찬한다. 요한 23세가 아직 살아 있을때 문제 중 하나는 아직 우리기억에 생생하다. 즉 큐바의 위기다. 당시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큐바의 소련제 미사일 철거를 요구하고 해안봉쇄를 단행했다. 동시에 소련의 후르시초프 수상은 소련 선박의 공격은 핵전쟁을 뜻한다고 밝혔다. 온세계 정치가들 선의의 사람들 평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은 위기일발에 놓인 미국과 큐바사태를 주시했다. 제2차대전 후 가장 긴장된 시기였다.
그러던 것이 1962년 10월 28일 그리스도왕 첨례날 소련 수상 후루시초프는 큐바의 유도탄 장치를 철거하고 침략적인 전쟁물자를 큐바에서 다시 반출할 것을 선언했다. 따라서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 역시 큐바의 봉쇄를 해제하고 그 나라에 대한 침공을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써 그토록 긴장됐던 세계는 다시 평화「무드」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세상사람들은 케네디의 용단이나 소련 수상을 칭찬했다. 그러나 10월 25일 교황은「바티깐」방송을 통해 핵전쟁 직전에서 평화의 협상을 촉구하는 특별방송을 발표했던 것이다. 온 세상사람이 얼마나 평화를 갈망하고 있는지를 지도자들은 알아야 한다고 평화로의 제의라기보다 어른이 아이들의 불장난의 위험을 타일러 주는듯하는 호소가 심금을 올렸던 것이다. 세계의 평화는 실로 교황 요한 23세의 꾸준하고 열성적인 기원이었다. 크리스마스 메시지에서 전 세계에 평화를 위한 열렬한 기원과 호소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교황은 이 평화의 뜻을 30회 이상이나 열렬히 호소했다. 그는 세계 모든지도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하였다. 『왜 불화의 분쟁이 공정하게 해결될수 없겠는가. 왜 인류의 자원과 백성들의 재원이 모든 계급의 백성을 특히 더 가난한 계급을 위한 구제에 사용되기 보다도 더 자주 죽음과 파괴의 위험한 도구인 무기들을 만드는데 쓰이고 있는가』라고. 그의 평화에 대한 호소는 선의의 사람들에게는 물론 악의의 사람들 공산주의자들과도 대화하기를 조금도 꺼리지 않았다.
1963년 1월에 소련 수상 후르시초프가 신년인사를 해 올만큼 그의 호소력은 강했던 것이다. 그해 3월에는 후르시초프의 사위이며 「모스크바」의 일간지「이즈베스차」의 편집장인 알렉세이 아주베이를 접견한 것도 예전에는 생각도 못한일이었다. 1963년 5월 1일에는 소련도 가입국인 16만달러의 부상이 있는「발칸」평화상을 개인으로서는 최초로 받았다. 그 표창장은 평화를 위한 호소로써 모든 국민을 사이에 형제적 사랑을 불러넣은 그의 위대한 노력에 대해 그를 찬양했다. 그는 그 상금으로 평화를 위한 영원한 기금을 설치하기 위해 사용하겠다고 즉시 선언했다. 그의 평화에 대한 집념은 강인했다. 일생을 통해 위대한 업적을 이 세상에 남겨주었고 세계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의 친구처럼 가깝게 느끼게 했다. 낡은 교회를 새롭게 하고 굳은 마음을 녹여주었다. 그는 어두운 감옥을 찾았고 병원으로, 고아의 집으로 평화와 위로의 말씀을 뿌리고 다녔다. 재직 5년도 채 못된 교황은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와 같은 위대한 업적뒤엔 남모르는 고뇌 또한 얼마나 컸던가. 자기의 임종을 알았던지 병석에 눕게되었다. 온 세상은 그의 완쾌를 위해 기도했다. 1963년 5월 29일 밤, 한 추기경은『성하, 온 세계가 성하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그때 교황은『고마운 일이요. 나를 위해 모두가 마음 아파해준다니. 그러나 나는 병원과 가정에서 괴로와 하고 번민하는 사람들에게 더 가까와지는 것을 느끼고있오.
교황에게 관심을 보여줌으로써 이 세상에서 가치가 있는 것은 복음이 말하는 온유와 자비의 사랑이라는 것을 통절히 느끼게 됩니다. 죽음의 자리에서 교황은 참된 감사의 표시로서 모두가 서로 형제적인 사랑으로 맺어지기를 …』하시며 축복을 보내셨다. 『모두가 하나이 되기를』이 말씀은 일종시 의식불명에서 깨어나시며 자주 하시던 말씀이다. 얼마나 평화와 일치를 갈망하였으면 무의식 상태에서까지 일치와 평화를 외쳤을까. 필자도 그때 베드로 대성전 광장에서 기도했다. 그리고 유해를 모셔온 대성전 제대에 참배했다. 그리고 그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드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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