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 5월 4일 카나다로 이민간 전 가톨릭 출판사「소년」편집장 검돌 이석현씨가 고국신자들에게 보내온 안부 및 그곳에서의 생활수상이다. 이에 본보는 그의 수상을 통해 세계속의 한국인들의 떳떳하고 활기찬 생활상과 그곳의 교회소식 및 앞으로 그곳 교포들이 해야 할 과제 등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해외에 나가 나이를 먹으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을 흔히 듣는다. 외국에서 오래 지낼수록 고국과 겨레에로 쏠리는 정이 짙어진다는 뜻이다. 사람이란 아무리 외국생활에 젖어 언어며 사고방식이 백인을 뺨칠정도로 서구화 되었다 하더라도 역시 피부색깔과 핏줄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천륜인성 싶다.
「토론토」는 확실히 국제도시다. 약 60개국 사람이 세계 각지로부터 이곳에 모여서 저마다의 생활풍습과 문화를 지닌채 하나의 큰 사회를 이루며 살고있다. 지난 6월 22일부터 7월 1일까지「토론토」시내에서 열린 56개국의 문화(민속ㆍ무역ㆍ현대예술)를 보여주는 인류의 작은 축제인「캐러밴」이 그 좋은 본보기의 하나였다.
이 같이 각국인이 이곳에서 서로 어깨를 겨루면서 저마다 자기 나라를 과시고 자기 민족의 장점과 보람을 자랑으로 삼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틈에서 우리 한국인들도 떳떳한 세계인으로서 어깨를 펴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음은 참으로 대견스럽고 흐뭇함을 느끼게 해준다. 카나다에 와서 시일이 흐를수록 어깨가 펴지고 코가 놓아지는 일은『한국인은 공부를 잘하고 똑똑하며 일을 잘하고 부지런하며 성실하다』는 점이다. 온갖 곳에서 그런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다니는「죠지 브라운」대학에서도 단연 수재는 한국인들이 독점하다시피 하여왔다.
이 대학에는 세계 각국에서 모여온 수십개국 사람(공산권 사람들도)이 언어와 각종 특과에서 머리를 짜내면서 실력을 겨루고 있다.
이렇게 세계 각국인들틈에서 함께 숨쉬면서 나날이 더 굳어지는 스스로의 속다짐! 정신이 번쩍드는생각은『언제 어떤 경우에 처하여도 나라와 겨레에 욕될짓은 없어야겠다. 외국인들 앞에서 민족이 뒷손가락질 당할짓은 안해야겠다. 비겁하지 말고 당당히 행동하여 항상「코리안은 과연 다르구나. 위대한 민족」이라는 인상을 외국인들에게 박아주어야겠다는 자각심이다.』
우리 조상의 정신유산인 문화로 볼때에 타골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 민족은 분명히『아시아의 큰 빛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정신문화면에서 차원이 높은 유산을 이어받은 우리가 물질문명의 백인사회에서 조금도 위측되거나 주춤거릴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해외에 나와있는 한국인각자는 우리의 자랑다운 풍습(민조)과 문화예술을 외국인들에게 전달하고 빛낼 문화사절로 자처해야 된다는 소리가 점차로 드높아져가고 있다.
「세계는 한 지붕 인류는 한 이웃」이라는 인류공동체적 유대를 맺는 면에서도 서로의 대화와 이해 및 교루가 가장 효과적인 지름길일 것이니 역시 우리 문화의 전달 이해촉진이 시급한 과제임은 자명하다.
「토론토」에는 한국인이 약 1만명 남짓이 이민와서 살고있는데 직업은 장사(가게)하는 이와 각종 기술직 및 공장 노동자 등으로 나누인다. 교회는 한인천주교회와 개신교의 각파 예배당 및 불교도의 절 하나 정도가 한국인 경영이며 신문은 주간지「카나다ㆍ 뉴스」「코리언 저널」「뉴우 코리어 타임스」3개가 있고 한국어 방송은 토요일 아침과 일요일 저녁에 각 30분간씩 있다.
「토론토」에 와서 감동을 받은 일 중의 하나는 중국인들이 저녁마다 자녀를 꼭 중국인을 위한 야학에 보내어서 중국어와 중국역사 문화를 배우게하고 있는 점이었다. 낮에는 일반학교에 다니면서 통상교육을 받지만 밤이면 고달픔을 누르고 조국을 배우는 그 열띤 민족성! 대국민다운 저력이 거기서 우러나오는 것이리라.
한국인의 이곳 정착은 겨우 11년, 이민역사가 얕은 탓인지 그러한 시설이나 시도가 보이지 않음은 못내 안타까운 일이다. 저마다 눈앞의 생활에 바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아무도 손대지 않으니 이곳 교포의 자녀들은 밑바탕 없는「정신적 무국적자」가 많아질가 지레 노파심이 앞선다. 자기의 근원을 망각하고 자랑스런 민족의 정신유산도 터득못하고 백인사회에서 물위에 뜬 거품같이 된다면 가슴아픈 일이다.
아무리 시간에 쫓기고 과로에 시달리며「시간을 돈으로만 환산하는 철저히 제도화된 사회」에서 생활한다 하더라도 우리들 저마다가 한 뉘 내내 돈벌레나 기계의 부속품같은 존재로 시송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람의 참사는 보람은 자기가 조금이라도 남의 힘이 되고 남을 돕고 있을 때에 느껴진다고 한다. 그리고 이해관계를 초월한 뜻있는 일은 흔히 몇 사람의 열성어린 희생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자주 본다.
이에「토론토」에 살고있는 교포들 사이에「한국문화 연구 계몽시설」과 본격적이고 정규적인「한인학교」설치가 시급하다고 주장하는 소리가 날로 높아져가고 있다. 다행히 카나다정부는 이곳에 와있는 각 민족이 자기네 고유문화며 민속을 살려나가기를 권장하고 물심양면으로 후원하는「복합 문화정책」을 쓰고있으니 더욱 고무적이다.
1975년 7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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