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년
5월 10일 오늘 새벽 5시 반, 쿠데르 신부의 열이 다시 화씨102도에 이르다. 나는 그의 요청에 따라 또 다시 노자성체(路資聖體)를 영해 주었다.
5월 13일 이틀 전 대성당의 벽을 쌓기 시작했다. 저녁 때 박사가 쿠메르 신부를 보러왔다. 그는 신부에게 알약을 먹이려했지만 신부는 약을 입안에서 깨물기만 하고 내뱉어 버렸다.
5월 15일 9시 반경 우리가 쿠데르 신부 곁에서 넉넉잡아 1시간정도 기도를 드리고 나서 보니, 그의 숨결이 더욱 거칠어진 것 같았다. 이틀 전 부터 그를 보지 못한 프와넬 신부를 오게 하고(의사의 명령에 따라서)우리는 임종경을 바치기 시작했다. 1시 반경 환자를 지키던 사람들이 와서 신부의 상태가 몹시 나빠졌다고 전한다. 정말 임종이 시작된 것 같았다. 우리는 다시 죽어가는 이를 위한 기도를 시작했다. 결국 2시에 친애하는 신부는 그의 영혼을 창조주께 바쳤다.
5월 16일 인쇄된 부고(訃告)는 오전 내로 서울에서 유럽까지 가게 된다. 독판에게는 프랑스어로 된 부고 내용을 거의 완벽하게 한문으로 번역하여 부고 뒷 면에 적어 보냈다. 하루온종일 그리고 밤새도록 신자들이 끊임없이 연도를 바친다.
5월 17일 용산의 신부들이 신학생을 데리고 오다. 10시 15분 전 로 신부의 주례로 출관예절 거행. 코스트 신부는 거실에서 외국인 손님들을 맞았다. 관이 성당 안에 들어오자마자 우리는 죽은 이를 위한 기도 중 제 1밤 기도를 낭송하고 동시에 미사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다. 이어 장례행렬이 시작되었다. 프랑댕을 비롯한 몇 몇 분들은 가마를 타고 혹은 걸어서 서소문까지 왔다. 십자가를 선두로 한 장례행렬은 명동·구리개(현(現)중구 명동2가 1번지 부근) 곤당골(현(現)을지로1가 전(前) 미국대사관 서 측편)등 영원의 길을 지나 서소문에 이르렀다. 이 영원의 길은 다시 남대문 앞의 연못을 지나 청파암(현(現)용산구 청파동)으로 이어졌다.
친애하는 쿠데르 신부는 삼호정 블랑 주교 곁에, 주교의 무덤과 수녀들의 무덤사이에 마지막 거처를 정했다『평안히 잠드소서』(Requiestcat in Peace)
5월 18일 프와넬 신부와 함께 와일즈 박사를 찾아가 쿠데르 신부가 앓는 동안 그를 아주 정성스럽게 치료해준데 대해 고마움을 표하다. 이번에도 역시 박사는 자신이 환자들을 치료해 주기위해 조선에 왔으며, 우리를 위해 기쁜 마음으로 쿠데르 신부를 무료로 치료해주었고, 또 노동은 곧 기도이므로 어떠한 사례금도 받을 수 없다고 말하였다. 어떻게 해서 이 선량한 박사가 가톨릭 신자가 아니고 프로테스탄트란 말인가! 나는 우리 사전과 문법책에서 찾을 수 있는 모든 말을 동원하여 그에게 존경과 감사의 뜻을 표했다.
5월 20일 저녁 때 아일즈 박사가 1백 불짜리 수표 한 장이 든 편지를 가지고 왔다. 수녀들이 그렇듯 헌신적으로 임하고 있는 그 훌륭한 사업에 쓰라고 오래 전 부터 수녀들에게 주고 싶었던 기부금이란다. 이 선량한 박사는 수녀들을 치료해주고도 아무런 사례금도 받으려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우리의 은인이 되고자한다.『주여, 당신의 이름 때문에 우리 모두에게 선 익을 베풀어준 사람들에게 영생으로 상을 주심이 마땅하리 이다!』
5월 24일 대성당 지하 부에 다듬어진 돌을 놓기 시작했다. 조선인 석공들은 중국인 벽돌공들이 돌을 놓는 것을 대단히 못 마땅해 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중국인 벽돌공들은 일을 아주 잘해 내고 있다.
6월 8일 저녁 때 제의실 둘레의 구덩이(기초공사에 필요한 약5m가량의 긴 구덩이들)를 파다가 한 중국인 노동자가 하마터면 낙석(落石)에 깔릴 뻔 했다. 다행히도 겁 만났을 뿐 별 일 없었기에 망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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