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7월 3일 아침 미사를 드리고난 범 주교는 자수하러 출발하기 직전 모방(나)과 샤스땅(정) 두 신부에게 미련한 정 안드레아의 처사로 인하여 당신이 자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음을 알리는 동시에『그러나 신부들은 내가 지령을 보낼 수가 있으면 그 지령이 있을 때까지 깊숙히 숨어있으며 나를 위하여 기구해주기 바랍니다』고 짤막하게 편지를 띠웠었다.
이 편지를 받은 두 신부는 주교의 지시대로 안전한 곳에 숨어 주교의 새로운 지시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피신처에서의 신부들의 고생이란 이루 표현키 어려운 것이었다. 서울에 맡겨두었던 교회 돈이 몽땅 약탈되었기 때문에 신부들은 한푼없이 여기저기 교우집을 전전하며 구걸해야했다. 교우들 역시 구걸해야 할 신세인데다 어리석은 교우나 외인의 눈을 피해야 했으므로 동냥조차도 쉬운일은 아니었다. 한편 중앙으로부터는 충청도에 5가작통법을 엄격히 적용하라는 훈령과 아울러 두 신부를 체포하기 위한 수많은 포졸들이 지방에 파견되어 있었다.
정 신부는 이미 전라도지방으로 피신한 길이었고 나 신부도 거기로 피신하고자 안내자가 돌아오기를 초조히 기다리고 있을 무렵 서울포청에 갇힌 범 주교는 두 신부에게도 자수를 권고하기로 결심했다.
매일같이 죄없는 수많은 양들이 피를 흘리는가하면 소위 양인을 체포하기 위한 조처가 날로 엄격해짐을 목격하고 있는 주교로서는 신부들의 자수야말로 교우들의 재난을 그치게 하는 길일 것이라고 확신한 때문이다. 그래서 주교는 신부들에게 이러한 쪽지를 써보냈다.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해 목숨을 바칩니다. 만일 아직 배로 떠나지 않았으면 손계창과 같이 오십시오』손계창은 바로 범 주교를 체포한 포졸의 두목이었다.
범 주교의 복하인 이 도마는 주교의 체포후 신부들한테 와 있었으나 주교의 소식이 몹시 궁금했다. 그래서 그는 주교에 관한 확실한 정보를 얻고자 상경할 허락을 나 신부에게 청했다. 나 신부는 처음엔 만류했으나 들지않자 자기의 복사 최 베드루를 동행시켰다. 그러나 이 도마와 최 베드루는 상경하는 도중 정 안드레아를 만나게되어 그만 포졸들에게 잡히게 되었다. 이때 이 도마는 신부들의 은신처를 탐문하겠다고 혼자 떠날것을 주장했다. 포졸들은 좀 미심스럽긴했지만 최 베드루를 인질로 잡아두기로 하고 그를 떠나보냈다.
사흘동안이나 안타깝게 기다렸으나 결국 이 도마는 돌아오지않았다. 하는 수 없이 포졸들은 최 베드루만이라도 서울로 끌고가서 과연 주교가 자유의 몸인것처럽 납득시키려 했다. 서울에 이르러 최 베두루는 포졸의 집에 묵으며 친구대접을 받았다. 포졸들은 그를 속이기 위해 밤새 감방 하나를 서둘러 도배하고 잘 꾸미고 나서 주교를 그리로 인도하고 베드루도 데리고 왔다. 주교는 즉시 베두루에게『신부들이 계신 곳을 아는가』고 물었다. 베두루가『좀 찾아보면 알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고 대답하자 이어 주교는『신부님들이 내 편지를 못받은 것이 의심없다. 내 편지를 전해줄 수 있는가』고 물었다. 베두루가『주교님 명령한대로 하겠습니다』고 대답하니 주교는 아무말없이 라띤말로 몇 줄 적어 베드루에게 주었다.
포졸들은 매우 기뻐하며 베드루에게 치하해 마지않았다. 겉으로 그들의 찬사에 감동되는 체했지만 베두루의 속셈은 전혀 딴데 있었다. 즉 첫째는 어찌해서든 주교의 편지를 신부들에게 전달하는 일이었고 다음은 가능한한 빨리 달아나는데 있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위해 그는 우선 포졸들의 환심을 샀다.
그리하여 어느날 저녁대 산으로 도망하는데 성공하였고 또 주교의 편지도 다른 교우를 시켜 무사히 전달했다.
한편 충청도 흥주에서 40리 떨어진 곳에서 정 신부의 안내자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던 나 신부에게 먼저 주교의 첫째 편지가 도달했다. 나 신부는 즉시 정 신부에게 주교의 편지를 전달케하는 동시에 포졸의 두목 손계창에게도『노 신부는 정 신부가 현재 여기서 먼곳에 있으므로 즉시「발게머리」로 갈 수 없습니다. 10일 이내에 같이 갈 것입니다. 당신 마음이 변하여 죽은 후에 행복한 거처를 찾게되길 바랍니다』하는 내용의 쪽지를 보냈다.
7월 24일(9ㆍ1) 정 신부도 주교의 편지를 받았다. 편지를 받자 사랑하는 가족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고 난 정신부는 곧장 나 신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다시 한자리에 모인 두 신부는 주교의 권고대로 자수할 준비에 착수하여 우선 교우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신덕을 견고히 하며 목자없는 상황에서 필요할 몇가지 권고도 할 겸 각기 자기가 전교한 교우들에게 편지를 쓰는 동시에 두 신부가 공동명의로 같은 교우들에게 또 편지 한 장을 쓰기로 했다.
7월 26일(9ㆍ3)막 교우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데 주교의 둘째 편지가 도착했다. 그래서 급히 교우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끝내고 이어 포교성과「빠리」본부에도 편지로써 교세의 보고와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인사를 잊지않았다. 이제 준비는 모두 끝났다. 용감한 두 선교사는 홍주로 달려가서 대기하고 있는 손계창에게 스스로 몸을 맡겼다. 그 길로 서울로 압송되어 주교와 같은 감옥에 갇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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