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슈 최 신부 신부란 것은 다른 사람들보다 당신과 같은 죽음을 당할 가능성이 더 많기는 한 존재이지만 아니 그래 정말로 그렇게 떠난단 말이요? 이건 좀 너무하지 않소?
내가 당신을 마지막 본 것이 두 주일도 채 못지낸 이달 초이레, 피정을 마치고 김철규 신부와 함께 나오다가『여보게, 신학교에 와서 이렇게 며칠을 지냈는데 골방 샌님 좀 들여다 보고 가세』해서 찾아갔을 때지. 그런데 왜 그때는 그렇게도 명랑하고, 술을 먹으라고 해서 더워서 싫다니까 그럼 청주서 온 약수라도 먹으래서 그건 먹었지. 한 30분 이야기 하다가 간다니까 왜 또 그렇게도 억척스럽게 붙잡았지? 생전 안하던 짓인데. 한시간가량 더 앉아 있다가 나왔군 그래.
소식을 듣고 신학교로 달려가 당신 모습을 보았소. 그리고 집에 와서『00의 새끼』라고 욕을 했지 뭐야 왜냐구? 아니, 죽는건 좋아 하지만 사흘은 앓아줘야지. 그렇게 쥐도 새도 모르게 가다니 말이돼? 할말 없지? 죽기전 더러운 청소를 남에게 시키게 될까바 그랬소? 고놈의 성깔 머리는 죽을때까지 가지고 싶었소?
다음날 신학교엘 또 갔지. 계씨가 오셔서 굉장히 침몽한 표정으로 한마디말도 않고 계시더군. 그리고 누님이 슬퍼하시고 자지러지시는 모양은 정말 옆에서 보기 딱하더군. 또 조카 벌써 중령이 됐데. 사관학교 들어갈 때 우리가 그 조카 이야기한 것이 엇그제 같은데말야.
장례는 당신은 원하지 않았겠지만 굉장했었어. 학생들도 대부분 등교했고 차도 수10대에다 명동까지 경찰백차가 에스코트까지 해주었지만 말야. 하 참 명동성당은 안팍이 꽉찼더라니까.
사람들이 그러더군 성인 신부 하나 죽었다구. 아직 일 한참 할 나이인데 죽었다구. 큰 별이 하나 떨어졌다구. 인생을 고요하고 성스럽게 지냈다구. 수도자 이상으로 살았다구. 신학교에는 큰기둥이 하나 부러졌다구. 문우회에서는 이만한 지도신부를 어디가서 구할거냐구.
그런데 말야 당신이 죽을것 알았소 몰랐소? 「받으시옵소서」라는 유시 중에 다음과 같은 귀절이 발견되었다니 말야. 『님으로 말미암은 이 목숨이 사랑 오직 당신것이오니 도로 받으시옵소서』그러구 저러구 간에 인제 나는 뭐야? 최민순 작사 이문근 작곡은 이젠 영영 글러먹은거 아냐? 아니지 당신 시에서 가사로 적당한 것은 앞으로 내가 작곡해줘야지 그렇지?
당신이 죽을때 수녀들이 병실에 와서 성가를 불러주면 그 노래 소리를 들으면서 운명하고 싶다고 했다는데 그것도 허사가 됐구먼. 그러나 정작 당신이 운명할때에는 하늘의 천사들이 옆에서 노래했을꺼야. 나는 의심치 않아. 그리고 이문근이가 죄가 얼마나 많은지는 당신이 잘 알고 있어. 그러니 지금 천국에서 혼자만 도취되어 있지말고 나 좀 어떻게 너그럽게 보아주십사 하고 하느님께 귀띔이나 좀 해주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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