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칼 부닥치어, 살기를 띠고/백성들의 아우성 또한 처연한데=여명원에서」「판자집 유리딱지에 아이들 얼굴이 불타는 해바라기 모양 걸려있다. ①쓰레기구덩이엔 입버린 깡통 밀나간 레이션박스, 찢어진 성조기, 유리병, 또 한구석엔 총맞은 삽살개 시체, 전차의 이빨자국이 난 밭고랑엔 말라삐트러진 괭이의 잔해 ③핼로OKㆍ마담나이스ㆍ나이스OKㆍ지폐맛을 본 꼬마들은 이 참혹한 현실을 그들대로 활용하게끔 되었다.
④악의 껍질같은 칠흑 어둠이 덮힌 창굴 마당에다 시인은 오줌을 깔기면서 이 굴속에도 비록 광채는없으나 별과 시가 깃들어있음을 따스하게 여긴다
⑤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그래도 양지바른 두매를 골라/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 사랑보다도/더욱 신비스러운 것이도다=적군기지 조국아 심청이 마냥 불쌍하기만 한 너구나/ (중략) 저기 모두 세기의 백정들/도마위에 오른 고기모양 너를 난도질하려는데 ⑨=이상 초사의 시에서」
지극히 간단히 예든 시구만 보더라도 동족상쟁의 비극속에 버려진 초토가 한민족한테 무엇을 뜻하는가를 쉽게 알 수 있으리라고 본다.
그러나「여명원」에서「초토의 시」에 이르는(현존재로서의) 현실속에서의 실존적 고뇌는 제2단계의 정신적 영토인장시「밭 일기」와「강」으로 연결되면서 보다 넓고 원천적인 의미에서의 존재의 어머니인 대자연과의 내적교섭을 이룩하며 그에 대한 인식 및 교감으로서 우주적인 시공속에서의 밭이나 강의 현장에 서게된다.
오늘 바로 이때의「밭」과「강」은 언제나 현재이면서 그 근원조차 밝힐 수 없는 아득한 과거와 어떤 면에선 영원한 미래에 연결되며 그것은 또한 순수자연의 일부인 동시에 역사적 현실의 현장이기도 하다. 인류의 시초부터 사람들은「밭」과「강」과 더불어 살아왔다고 말할 수도 있으며 그때 그 「밭」과「강」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그곳에서 일함으로써 생존하고 생활하는 삶의 현실일뿐만 아니라 생존하고 생활하는 모든 유한적 존재인 삶에다 무한적인 존재의 뜻을 알려주기도 하고 눈을 가졌다고 다 볼 수 없고 어쩌면 한치의 앞도 못보는 갈등하고 싸우는 그러다가 죽으면 한줌 흙으로 돌아가는 허망한 인간의 삶이다. 신의 섭리가 깃들어 움직이고 있다고 말할수 있고 대자연의 질서와 그속에 유한적인 존재를 자각케하는 깊은 지혜를 일깨워주고 있다. 모든 생명을 돋게하는「밭」은 인간에게 식량만을 공급해주기 위해 있는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탄생하고 성장하고 곡식을 거두는 변화무쌍한 일련의 생사과정을 통해 우리들한테 여전한 삶의 뜻과 함께 죽음의 뜻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우리는 옛 러시아어로 농부를「크리스쳐아민」이라고 부른다는데 그 원뜻은 기독교에서 말하는「하느님의 아들」이라는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밭일기」와「강」의 시를 예들어 일일이 설명하지 못함을 지극히 유감으로 생각한다.
제한된 지면때문에 부득히 생략하기로 한다.
다만「밭일기」와「강」을 거쳐 최근의 시작에선 다시 현실적인 것에 대한 관심과 함께 그 현실의 모순 타락 부조리를 기독교적인 비유로 표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출애급기 별장」「성모상앞에서」「부활송」등의 시를 들수있다.
①「서로 다투어 사람의 탈만 쓴 짐승들이 되어갔다. 세상은 아론의 무리들이 판을치고 이에 노예근성이 꼬리를 쳤다. 자유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출애급기 별장」 ②「당신과 우리의 부활이 있으므로 진리는 있는것이며 당신과 우리의 부활이 있으므로 정의는 이기는 것이며=부활송」이렇듯 대충이나마 세 단계의 시전개를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신과 대자연과의 연관과 현실과 삶의 복판에서 실존의 고뇌를 통해 이 시인이 하나의 독자적인 시세계를 꾸며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시인이 제 나름대로 독자적인 시세계를 갖는 일은 몇 편의 우수한 시는 있지만 연륜과 함께 막상 시세계를 논하자면 논할만한 시인이 몇명밖에 없는 현 시단에서 지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그러면에서「구상 문학선집」이 갖고있는 시문학사적인 뜻은 충분히 그 이유를 지닌다고 말할수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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