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않은 사람을 겉으로 보아 구별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구체적인 상황에서 나타나는 처신이 엄청나게 다를 때가 있다. 전혀 다른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할 만큼 수용자세가 다르다. 죽음에 대한 태도도 그 하나라 할 수 있겠다.
모 교구에서 묘지를 조성한다는 소문을 듣고 꽤 멀리 떨어진 미 신자 동네에서 항의와 데모, 협박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불도저 앞에 드러눕는 예도 있다. 이렇게 일반 사회에서는 죽음은 싫은 것, 재수 없는 것, 슬픈 것, 절망적인 것이다. 인간이 결국 모두 죽어야 한다는 것을 마지못해 인정은 하지만 죽는 날까지 죽음은 생각지 않으려하고 더욱이 암이라는 사형선고를 받았어도 끝까지 숨기려든다.
죽음은 자연스런 것이다. 더구나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있어서 죽음은 근원적으로 슬프거나 절망적인 것이 아니라 지복을 누리시는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통과하는 관문이다. 신앙의 눈으로 볼 때 기쁘고 희망찬 사건이다.
그래서 천주교 장례식 때는 기쁜 노래를 부른다. 옛날 사도예절을 라틴어 성가로 할 때 뜻도 모르는 성가대원들이 시체를 앞에 두고 유족들이 모여 있으니 슬프게 불러야 된다고 생각하고 구성지게 뽑다가『그거 슬픈 노래 아니야! 기쁘게 불러! 』하는 본당신부의 벼락을 맞은 적도 있다.
서양의 성당들을 가보면 우리네와 눈에 띄게 다른 모습을 한 가지 보게 된다.
성당 뜰이 온통 묘지로 되어있다. 본당 신부가 신자들이 죽으면 그 본당 뜰에 묻힌다. 특별히 훌륭한 삶을 산사람은 제대 옆이나 성당지하에 묻힌다. 그래서 죽음이 자연스런 것으로 친숙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주일이면 가족들이 미사에 나오면서 꽃 몇 송이를 들고 나와 천지를 묘지 앞에 꽂아주고 기도를 한다. 죽은 이들이 육신적으로는 산 이들을 떠났지만 신앙의 눈으로 볼 때 그들과 더욱 가까이 있음을 실감케 해준다.
신앙인답게, 잘살려는 노력보다 육신적인 목숨연장에 필사적 노력을 쏟는 자세, 자신은 죽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사는 자세, 이미 일어난 죽음을 안 받아 들이려 몸부림치는 자세는 신앙인으로서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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