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 선열들의 피어린 자취위에 어언 1백90여 년의 찬란한 역사를 지닌 한국 가톨릭교회는 금년 순교 복자 79위 시복 50주년을 맞아 곳곳에서 복자들을 현양하는 운동을 벌이는 등 한창 그 준비에 바쁘다. 차제에 본보는 복자들이 죽음으로써 신앙을 지킨 순교현장을 4회에 걸쳐 소개함으로써 다시한번 복자들의 업적을 현양코자 한다. <편집자 주>
「月落在天 水上池盡」(달은 비록 지더라도 하늘에 그저 있고 물은 비록 치솟아도 그 못속에 온전하다)
1820년 2월 26일 첫박해를 만나 서울 서소문밖 네거리현장에 꿇어앉은 한국인 첫신자 이승훈(베드로)은 하늘을 향해 두손을 모으고 자신의 변할 수없는 신앙을 이 한 수의 시에 담고는 칼을 받아 순교했다.
그로부터 90여년간 몇차례의 크고작은 박해가 있을 때마다 이승훈의 후예들이 같은 이유 때문에 같은 모양으로 죽어간 서울의 이름난 순교지의 하나가 서소문밖 네거리이다.
지금 동양방송국과 배재중고등학교 사이에 있었던 서소문을 나서서 아현동쪽으로 4백m쯤 내려오면 의주로와 이현고가도로가 교차되는 왼쪽 중앙시장을 중심으로 염천교 뉴서울슈퍼마케트 만리동 일대의 네거리를 이루는 지점이 바로「피의 제전」이 벌어지던 곳.
서소문을 통해 나간 장안시체중에는 옥에서 죽은 천주교 신자 시체도 있었고 3백여 명이 수레를 타고 이 문을 나서 순교했으니 서소문은「순교자들의 문」이고 그 문밖 네거리는 성지로 잊을 수 없는 곳인 것이다.
한강변 새남터는 주로 국사범 등 큰 죄인을 처형했는데 여기는 처형된 순교자 가운데 첫신자 이승훈ㆍ금서를 쓴 황사영ㆍ상재상서를 쓴 정하상ㆍ남종삼ㆍ여걸 강 골롬바(完淑) 등 쟁쟁한 면모가 많다.
서소문밖 순교자 중 41명이 복자위에 올랐다.
이런 땅이고 보니 교회는 오래전부터 성지로 확보하려고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고 대신 이곳 처형자의 시체를 쌓아두었던 순화동 옛날 부통령 관저자리나마 매입하려고 많은 사람들이 애를 써 어떤때는 매입은 할 수 있는데 돈이 없어 못하는 등 유감만 남긴채 이제는 별로 이 일에 관심을 갖는 이조차 찾기 힘들다.
옛 처형장은 근대화 덕분에 깨끗이 미화되어 녹지대까지 들어섰고 중앙시장도 옮기게 되면 변하는 모습과 함께 기념비 하나 못세운 아쉬움만 커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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