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무더웠다. 구름 한점 없는 해맑은 날씨에 햇살은 따갑게 대지를 감싸는 찌는듯한 복더위다. 1973년 7월 어느날 성세성사를 집행하는 날이다. 본당 신자 30여 명과 삼덕동 신자 10여 명이 두 사람의 사형수 영세를 축하하기 위해 참석했다. 참석한 교우들은 과장실을 입추의 여지없이 꽉 메웠다. 그리 넓지 않은 교도과장실에 빽빽히 들어섰으나 복더위의 뜨거운 열기도 잊어버린체 두 사람의 영세자를 위해 제가끔 기도에 여념이 없는것 같았다. 사무실 공기는 열과 열이 합산되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덥고 짜증나기만 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다. 참석한 모든 이가 짜증을 전연 못느끼는 것 같았다.
믿음의 힘이란 이렇게 고통마저 잊어버리게 하는 마력이 있는가보다. 교도과장의 책상을 간이제대로 해서 준비가 완료되었다.
조금후 담당 교도관의 안내로 두 손목을 결박당한체 그들이 사무실로 들어섰다. 실내를 꽉 메운 교우들은 일제히 두 사람의 극형수를 볼리고 시선을 모은다. 모두가 한결같이 애석한 표정이다. 『너무 아까운 청년이다. 저렇게 인물도 잘생긴 청년이 어떻게 그런 죄를 저질렀는지 … 』하면서 안타까와 하는 이야기가 여기 저기서 가늘게 들려온다. 제대 맨 앞좌석에 그들을 앉게 한 후 나는 제의를 입고 제대를 앞에 하고섰다. 『오늘 미사는 조금후에 세례를 받게되는 이 두 분의 극형수들을 위해 바쳐지는 미사입니다. 여기 사무실을 꽉 메운 교우들도 바로 두 분의 영세를 진정으로 축하하고 싶어서 오신 교우형제들입니다. 모두 정성을 다해 미사를 드립시다』성가 53번「주여 임하소서」로 미사는 시작되었다. 말씀의 전례가 끝났다.
다음은 영세예절이다. 스테파노는 푸른 수의복을 깨끗하게 입고 손을 합장하고 의자에 앉은채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다. 본명을 정하고 양편에 대부가 서고 교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례를 주었다. 두사람의 영세자는 너무나 감격스러웠는지 눈에는 눈물이 흐른다. 교우들 중에도 눈시울을 적시는 아주머니들이 더러 있었다. 몸은 땀으로 흠뻑젖고 실내의 공기는 더위를 더해간다. 한마디로 견디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러나 모두가 숨막히는 실내기온은 의식하지 못하는듯 세례를 받은 두 사람의 극형수를 번갈아 쳐다보며 안타깝고 애석한 표정들이다.
스테파노의 눈에는 눈물이 멎어지질 않는다. 지난 날의 쓰라린 과거가 지금 벌어지는 사랑과 인정의 물결앞에 그의 마음은 마음놓고 녹아 내리는가보다. 미사후 과장의 책상을 가운데 놓고 멋진파티가 벌어졌다. 우리 신자들이 준비해온 음식이 책상위를 가득히 채웠다.
수박, 참외, 음료수, 과자, 빵 산더미같이 쌓인다. 축하놀이가 벌어진다.
음식에 강복하기가 바쁘게 음식을 서로 권한다. 대부 또는 참석한 교우들 중 선물을 준비한 이들이 영세자들에게 선물을 전달한다. 목주, 기도서, 복음성서 성가집 등 선물이 엄청나게 많았다. 아직도 스테파노의 눈에는 눈물이 흐른다. 절실한 뉘우침과 분에 넘치는 행복이 엇갈린 감사의 눈물인것 같다. 눈물은 더 큰방울을 만들어 뚝뚝 떨어진다. 잠깐이나마 인정의 홍수에 파묻히는듯 했다.
『스테파노 난 당신이 지금 느끼고 있는 기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소 …』
그러나 그대로 두면 눈물은 계속 나올것 같고 분위기는 점점 무거워질것 같아 모두 손벽을 치며 산토끼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선 오늘의 주인인 영세자들에게 뜨거운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점점 웃고 노래하는 분위기로 바뀌어진다.
교우들은 영세자에게 계속 음식을 권한다.
실내는 땀으로 흠뻑 적셔졌지만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기만 하다. 이제 영세자들도 함께 노래부른다. 또 독창도 부탁받는다. 노래를 부르니 박수로써 재창을 요청한다. 사양없이 또 부른다. 실내는 하나의 마음, 즉 하나의 사랑으로 일치되어 즐거움은 점점 더 짙어진다. 이렇게해서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모두가 찌는듯한 더위에는 불감증인듯 하다. 땀방울로 좁은 실내를 온통 적셨지만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책상위에 쌓인 음식도 거의 바닥이 났다. 마지막으로 두 영세자의 소감을 묻는다. 열렬한 박수로 소감을 재촉한다. 스테파노가 일어서서 소감을 발표한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주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오늘 여러분들을 통해서 다시 한번 경험했습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것이 여러분들의 장한 사랑에 보답임을 깨달았습니다. 언제나 주예수님의 거록하신 은혜와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헤어져야 할 아쉬움을 의식했는지 또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 헤어지는 아쉬움보다 받은 주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감격의 눈물인 것 같기도하다. 생활을 통해 범하는 잘못의 아픔 때문인지 또는 스테파노의 뉘우침이 자신들의 뉘우침으로 알아들은 것인지 소감을 듣는 이들의 모습들이 진지하고 숙연해보인다. 못내 아쉬워하는 석별의 정을 한아름 나누어가지면서 씁쓸한 안타까움으로 헤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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