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의 권고를 받아들여 나 신부와 정 신부가 충청도 흥주 땅에서 포졸배 앞에 자수하여 마침내 서울에 도착한 것이 8월 4ㆍ5일의 일이다. 범 주교의 자수로부터 거의 한 달이 흘렀다. 그동안 범 주교는 홀로 포청에서 여러 번 문초와 주뢰형을 받았다.
두 신부가 서울에 도착하자 포청에서는 세위 선교사를 합석시켜 8월 5일과 7일 양일에 걸쳐 심문을 했다.
어디서 무엇하러 왔으며 일당을 대라는 포장의 문목에 그들은 한결같이『서양국 사람으로 천주교를 널리 전하기 위하여 수만리를 멀리 여기지 않고 자원해서 조선에 나왔으며 안내자와 교인을 지고하면 비단 그 사람들이 해를 받을뿐만 아니오 우리도 해를 면치못할 것이므로 바른대로 고할 수 없으며 경비는 유진길 편에 은량을 부쳐보내어 썼고 또한 조신철 스스로 우리를 안내했다고 자복한 이상 변명하지 않겠다』대답하였다. 더욱이 범 주교는 당을 고발하라는 말에『차라리 죽을지언정 10계명을 범할 수 없고 아무리 칼과 톱날밑에 몸과 살이 가루가 된다 하더라도 직고할 수 없다』고 까지 대답하였다.
드디어 8월 7일 모두 금부로 옮겨 국청을 차리고 엄하게 핵실하라는 명이 내림에 따라 주교와 양위 신부는 의금부로 이송되어 그날부터 그들의안내자로 알려진 유진길 정하상 조신철 등과 한가지로 추국을 받게 되었다.
8월 7일에는 형벌을 가하지 않는 이른바 평문이 있었다. 이날의 문목은 출생과 내선의 목적 선교사 영입의 주장자와 인도자 입국의 연월, 로정 그리고 서울에서의 거처 경향 각지의 왕래처 등에 관한 것이었다. 세 분 선교사는 그들의 국적과 입국의 목적을 명백히 말하고나서 의주로부터 조신철과 정하상의 집에 거처하였다는 사실을 자백했을뿐 그밖의 물음에 대해선 일체 함구하였다.
그러자 판관은『너희들은 이국인이므로 바른대로 고하면 본국으로 돌아가게 될것이다』『조선사람이 너희들을 배신하여 이렇게 죽는 마당에 이르게 하였으니 어찌 너희를 해치려는 사람들을 아끼고 바른대로 고하지 않는가』는 등의 감언이설로 고발을 유도해 보았지만 그러나 선교사들은 그들이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지는 않았으며 또한 비록 한국인이 해치려 했을지라도 본시 천주교의 가르침은 남을 해치는 법이 없는고로 바른대로 고할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다음날부터는 형벌로 위협하는 이른바 형문이 가해졌다. 범 주교는 신장 9도 나 신부는 11도 그리고 정 신부는 13도를 각각 맞았다. 그러나 선교사들에게선 아무리 죽어도 어찌할 수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8월 9일에도 형문이 계속되었고 여기서 범 주교는 신장 5도 나 신부는 13도 그리고 정 신부는 11도를 맞았다. 8월 12일 판관은『너희가 전교를 구실로 삼고있으나 경향에 왕래하면서 나라를 원망하는 우리나라 사람들과 함께 뭉친것으로 보아 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이제 천주교인을 어떻게해서든지 역적으로 몰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범 주교는 이 문제에 대해『이곳에와 교통한 것은 다른 사단이 없고 다만 전교했을 뿐이오. 또한 이교의 가르침을 받드는 사람들은 그 중에 혹시 나라를 원망하는 무리가 있을지라도 모두 좋은 사람이며 원래 좋지않은 사람은 없다』이렇게 천주교인을 변호하였다.
이날엔 정 신부가 주장 5도를 맞았으며 범 주교와 나 신부에겐 아마도 지레죽을까 염려가 되었던지 주장질을 가한것 같지는 않다.
이날 국청에서 의논하여 아뢰기를『더욱 형신을 가해야 자복을 얻을 수 있겠는데 모두가 주뢰와 주장으로 인하여 경폐할 염려가 있어 목하의 형세로는 끝까지 핵실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대왕대비의『지금에 와서 핵실할 단서도 _로없으니 신유년 주문모의 예에 의하여 다군문으로 내주어 머리를 잘라 매달아 민중을 깨우쳐라』는 하교가 있었다. 이렇게 결국 우리 주교와 신부들은 마치 중죄인 모양 군문효수란 극형을 받게 되었다.
8월 14일(9ㆍ21) 범 주교 나 신부 정 신부 세 분 선교사는 좁은 수레에 올라 약 1백명의 군사의 호송아래 새남터 형장으로 끌려나갔다. 형장에 이르자 병정들은 선교사들의 옷을 바지만 남기고 벗겼다. 그리고 겨드랑에 긴 몽둥이를 끼우고 양쪽 귀엔 긴 화살 두 개를 끼우고 얼굴에 물을 뿌리고 한 줌의 회를 뿌렸다. 다음 무릎을 꿇게하고 10여 명의 병정이 손에 칼을 들고 돌아가면서 칼을치는 것이었다. 중간의 정 신부가 첫번으로 칼을 맞았다. 그러나 칼이 어깨를 스칠 뿐이어서 본능적으로 벌떡 일어났다가 곧 다시 꿇었다. 두번째 칼에 완전히 쓰러졌다. 이어 범 주교와 나 신부도 쓰러졌다. 범 주교는 세 번의 칼을 맞았다고 한다.
맑은 하늘에 급작히 먹구름이 덮이더니 천동번개와 함께 비바람이 몰아쳤다. 이 광경을 목격한 외인들도『하늘도 천주교를 믿는 이 사람들을 알아보는구나』하고 수군거렸다.
(계속)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