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집행 장소의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듯 무거운 침묵이 두텁게 깔려 모두가 벌어질 상황에 가슴만 조이고 있었다. 1947년 2월 28일 스테파노가 사형집행을 당한 날이다. 성세받은지 7개월째였다. 날씨는 아직 매섭게 차가웠고 눈비가 내리고 있었다. 28일 아침 9시경 책상앞에서 신문을 뒤적거리며 있노라니 전화벨이 요란스럽게 울린다.
2월말 아니면 3월초에 사형수 형집행이 있다던 얘기가 불현듯 생각나면서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친다. 나의 예감은 적중했다. 오전 10시부터 형집행이 있으니 교도소로 오란다. 처음 당해보는 일이라 한동안 구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가슴만 뛰었다.
정신없이 수녀님과 함께 교도과장실로 들어섰다. 한마디로 분위기는 침울했다.
10시로 예정된 형집행이 오후 1시로 연기됐단다. 집행될 사형수는 4명인데 그 중 스테파노는 맨 마지막이다.
시간이 많이 남아 과장사무실에서 기다릴수밖에 없었다. 두 손을 마주잡고 책상위에 엎드려 주님의 특별한 은혜가 있어 달라고 간청했다.
스테파노가 무서운 죽음의 순간에 신앙을 버리고 하느님을 배반하더라도 그의 영혼을 외면하지 마시고 당신 사랑 안에 있게 해주십사 하고 기도했다.
오늘 집행될 4명의 사형수 중 스테파노를 제외하고는 모두 개신교 신자다. 그러기에 스테파노가 순간적으로 하느님을 배반하고 반항과 욕설로 일관한다면 가톨릭의 체면도 말이 아닐 것이다 하는 엉뚱한 염려도 일어난다.
형집행 장소는 교도관들과 검찰청 직원으로 꽉 메우고 있었다. 수녀님은 내 뒤에 서서 오돌오돌 떠는 것 같았다. 바로 이 자리에서 사람을 처형시키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마음은 극도로 긴장됐다. 스테파노가 푸른 수의복을 입은채 두 사람의 교도관에 의해 집행장소로 나온다. 시선은 일제히 형장으로 들어서는 스테파노에게 향한다. 너무나 불쌍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스테파노는 나의 눈과 마주쳤을 때 기쁘고 반가운 얼굴로 빙그레 미소를 짓지않는가! 나의 머리는 쇠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은 현기증을 느꼈다. 긴 한숨을 내려쉬었다. 『스테파노 정말 장하고 장하구나』자신의 죽음이 곧 임박했음을 전연 의식못한채 엄마 아빠의 손에 매달려 걸어오는 천지난만한 어린애같다. 이토록 마음이 평화로울 수가 있겠는가? 스테파노는 걸음걸이 몸짓 얼굴색 하나 어색함 없이 태연하면서도 겸허한 자세로 교도관이 시키는데로 온순하게 형장에 앉는다.
교도소 소장의 인정심문이 끝나고 스테파노에게 왜 두 눈을 기증했느냐는 질문에 『저는 지금까지 한가지로 남을 위해 좋은일을 해본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실명하여 젊은 눈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기쁜마음으로 나의 두 눈을 바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남을 위하는 일이라면 하는 생각에서 … 이 보잘것 없는 결심도 주님을 믿는 마음에서 얻어낸 결단입니다.』라고 조용히 대답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종교적인 절차가 남았다. 나는 스테파노 앞에 바짝 다가섰다. 스테파노를 가운데하고 주변에는 교도관들이 둘러싼다. 나는 스테파노의 입에 귀를 가까이 하고 마지막 고백성사를 주고 성체를 모셔주었다.
그리고 나서 떨리는 마음을 억지로 진정시켜 마지막으로 한마디했다.
『사랑하는 스테파노, 오늘 스테파노는 나보다 먼저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리스도의 나라로 갑니다.
나도 언젠가는 스테파노를 뒤쫓아가고 말 것입니다. 또한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도 마찬가지로 스테파노의 뒤를 밟아야 할 날이 분명히 올것입니다.
단지 스테파노가 먼저 가는것 뿐입니다. 분명히 하느님은 스테파노를 기쁘게 맞이하실 겝니다』
『신부님 진정으로 고맙습니다. 영원한 행복이 있는 주님의 나라에 먼저 가겠습니다』하면서 성가53번을 합창하잔다. 수녀님은 너무 당항해서 입을 열지 못하고 나는 성가를 부르긴 부르는데 극도로 떨려서 제대로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스테파노는 어찌 이다지도 조용하고 침착할 수 있겠는가 1절이 끝나니 2절이 계속된다. 성가가 끝나자 나도 모르게 스테파노의 머리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이제 모든 절차는 끝났다. 집행은 한순간이었다. 모두가 긴한숨을 내쉬면서 형장을 나온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소근거린다. 『교도소역사 이래 이렇게 장한 죽음이 또 있었겠는가?』하고 너무나 깊은 충격을 받은 인상들이다. 믿음의 힘이 죽음의 고통마저 잊어버리게 하다니! 모두가 사무치는 안타까움으로 몇 분 전에 영웅적으로 죽어간 스테파노의 모습을 각자의 마음에 가득하게 되새기며 자신들의 생활을 아프게 반성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스테파노는 말없이 행동으로, 영웅적인 죽음으로 많은 사람들의 가슴안에 생할한 그리스도를 선사한 것이다. 『장하다! 스테파노여, 주님의 영광을 기리기리 누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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