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의 본명은 에밀 J. 카폰(Emil J. Kapaun). 그는 비오듯 쏟아지는 포탄아래서도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전우를 찾아 상처를 치료해주는가 하면 총탄에 맞아 죽음에 임박한 전우에게는 마지막 병자성사를 줌으로써 남은 한 마리의 어린양까지도 주님곁에 인도하고자 분투한「전장의 그리스도」였다.
뿐만 아니라 전우의 고통을 대신 감수하여 자기목숨까지 바친 큰 사랑의 소유자로서 전우들 사이에서는 「가시철사를 쓴 그리스도」의 칭호를 받은 영웅적인 성인이었다. 1951년 5월 23일 그는 35세의 젊은나이로 압록강 근처 중공군의 포로수용소에서 폐렴을 앓는 가운데 그의 공로와는 반대로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 임종을 맞았으며 무덤조차 찾을 길이 없다.
미국정부는 그의 헌신적인 공로에 대해 미국 제2위의「유공십자훈장」을 수여했으며, 전투중 특수임무 수행에 대해서 「동성(銅星)훈장」도 수여했다.
카폰 신부가 각층의 사람에게 성인ㆍ영웅내지 숭배의 표상이 된 요인은 그의 가정과 교회생활에서부터 선량하고 성실한 지도자로서의 성장을 거듭하면서 성직자다운 사랑의 사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1916년 4월 20일 미국 캔사스주「필센」부근의 조그만 농가에서 소박한 보헤미안 부부의 첫 아들로 태어났다. 이날은 성목요일 그리스도께서 최초의 사제직을 임명한 기쁜 날이었다. 그는 부모의 깊은 가톨릭 토대 속에 선천적인 보헤미안의 특유한 남성적 성격과 기질을 타고났다. 어떤날 그는 어머니의 분부로 우유를 짜러 암소한테 갔을 때, 암소가 말을 듣지않고 괄괄하게 굴었다.
이것을 본 그는 필경 어머니의 솜씨가 아니라서 그러는줄 알고 어머니의 옷을 입고 나갔다. 그러자 암소는 점잖게 우유를 짜게 내버려 두었다고 한다.
이렇듯 그는 온화 근면하고 판단력이 좋았으며 신중하고도 어떠한 환경에서나 이겨나갈 수 있는 투지력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항상 사람의 마음을 끄는 미소와 함께 유모어를 지니고 있었다.
낚시대회 등 여러 경쟁에서도 항상 우위를 차지하곤 하던 그는「필센」고등학교에서의 새집만들기 대회에서 약 4m 높이의 낡은 전주위에 22개의 방이있는 새집을 만들어 학교운동장에 세움으로써 1등은 물론 온통 화제거리가 되었다.
한편 총명한 그는 고등학교의 8년 정규교육을 6년만에 수료했다.
어렸을적에 나무밑에서 사제들이 하는 모습을 흉내내던 그는 성직을 갖고자 굳은 결의를 주교께 전달하여 장남으로서 어려웠던 신학교 입학을 무난히 해결할 정도로 불요불굴의 정신을 가졌다. 그는 신학교 동급생들에게 항상 깨끗하다는 인상을 주도록 노력했으며 가끔 순교자가 되고 싶다고 얘기하곤 했었다. 그의 모든 면을 본 친구들이 후에 꼭 신부가 되리라고 말하면 그는『글쎄 아마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신부가 될지 모른다』고 하며 결코 자랑하지 않는 깊이를 나타냈다. 그런가하면 장학금으로 학비에는 부족함이 없었지만 잡비를 마련하고자 병아리를 키우기도했는데 그것도 쉽지는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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