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불구도 가지가지다. 수족이 부자유스런 사람, 이목구비에 이상이 있는 사람 등등…
그런데 이 허구많은 불구중에「활성대단축증」이란 불구를 알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드물것이다. 아마도 선천적인 것이라고 짐작되는 이 병을 제일 처음 알아낸 사람은 국민학교 1학년때의 담임선생님이었다.
어느날 국어시간에 나는 일어서서 국어책을 읽게 되었다…『바두가 바두가 이이와 나하고 노오자』라고 내 딴엔 자신있고 우렁차게 읽고 있었는데 친구들이 와아 하고 모두 웃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선생님은 뒤이어 나에게 자꾸 읽기를 시켜보았으나 나는 여전히「ㄹ」발음을 할 수가 없었다
「일」을「이」라 하고「말」을「마」라고 밖에는 발음할 수 없다.
깜짝놀란 담임선생님이 그날로 가정방문을 오셔서 어머니로부터 우리집의 사정이야기를 들으셨다. 어머니는 워낙 빈농 태생으로 나이가 차면서 떠돌아 다니다가 아버지를 만나 결혼했으나 형과 나를 낳고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살 길이 막연해서 어느 정육점에 들어가 잔심부름을 해주면서 근근히 살아가게 된 박복한 여자였다. 워낙 잔일이라 밤새 일을 해 주느라 경황이 없어서 내가 그런병이 있는지조차도 몰랐다면서 선생님을 붙들고 울음을 터뜨렸다.
일에 쫓겨 어머니도 없이 졸업식을 가진날 나는 도지사 표창장을 받고 그 고장의 중학교에 장학생으로 선출되었다. 그 후도 가난과 무지에 가득찬 어머니의 뒷바라지로 계속 1등을 하면서 중학교를 졸업하였고 모 상업고등학교에 역시 장학생으로 입학을 하였다. 학년이 바뀔때마다 나의 이상한 발음 때문에 반친구들의 놀림을 받았지만 그들은 점차 나를 이해해주는 친구가 되어 주었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주간에는 돈을 벌고 야간에는 공부를 했다. 방학때나 주말엔 껌팔이도 하였고 신문배달을 하기도 했다. 농촌일이 한창일때는 거름이나 인분도 나르며 점심은 찬밥으로 때우고 저녁은 죽이나 밀가루 감자로 때우는 것이 태반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좀 더 큰 뜻을 펴기위해 서울로 올라와 P콘크리트 회사에 취직을 했다. 그러나 나의 발음으로 손님들이 계약상의 오해를 살 때가 빈번해지자 6개월간의 고용기간이 다가와 해고당하고 말았다. 비참한 마음으로 고향으로 돌아온 나는 비관을 극복하지 못한채 자살을 결심하고 약을 먹고 말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사경을 헤매다 의식을 회복한 내게 희망을 주신 또 한 분의 은인은 의사가 소개해준 어느 목사님이었다. 목사님은 나에게 땅과 흙 그리고 곡식과 가축들을 위해 일할 필요성을 강조하시면서 경기도 광주에 있는「가나안 농군학교」에서 일하지 않겠느냐고 물으셨다.
가나안 농군학교에서 일하면서 나는 비로소 나의 소망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근면검소ㆍ절약의 정신으로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생활을 배우면서 실망을 뒤로하고 모범적인 일꾼이 되어 갈 수 있었다. 그곳에서 기술을 익힌뒤 나는 고향으로 돌아와 유휴임야지를 개간하는 의욕을 보였다.
군대 복무중에는 모범용사로 표창을 받았다. 해안근무중 수중침투하는 공비를 발견하여 묘안을 써서 기어코 잡은 것이다.
우리 부대에는 경사가 난 듯이 좋아했고 소대장은 나에게 특별휴가와 보상금도 하사해 주셨다.
제대하기 바로 전에 나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기분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숱한 멸시와 천대를 받고 자라난 시간들을 돌이켜보며 이제는 그것 정도는 괴로와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용기와 신념을갖고 힘찬 새출발을 하였다. 군 복무중 펜팔로 알게된 아내는 나와의 결혼을 만족해했고 지나온 내 시련의 시간을 위로하며 존경해 주었다.
땀흘려 일한 보람으로 우리는 지금 임야 5천평 위에 산양 20마리 돼지10마리 돼지새끼 15마리를 키우며 삼십평짜리 양송이 묘판도 가지고 있는 이 농촌에서는 부자라면 부자일만큼 부족함이 없는 부부가 되었다.
지금 나는 농촌에서 나의 소망을 확인시켜준 가나안 농군학교의 뜻을 되새기며 꿋꿋이 살고있다. 그러면서도 나만큼 불구의 고통속에서 살아가고있는 사람들에게 꼭 이렇게 말하고싶다. 『이 세상 어딘가에 자기 스스로를 고독의 독방에 감금하고 저마다의 슬픈비밀의 자물쇠를 잠그고 사는 사지가 부자유스런 여러분, 슬퍼마시고 위축마십시요, 용기를 내어 뛰쳐나오십시요. 우리는 결코 버려진 몸이 아닙니다. 스스로 돕는 자에게 이웃이 있고 하느님이 계십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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