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뱀띠의 해이다. 격동의 무진년이 지나갔으니 새 해엔 왠지 밝은 모습으로 이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뱀은 창세기에서 간교하여 태초의 여인 에와를 꾀어내어 범죄하게 했다. 출애굽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을 배반한 벌로 독사에 물리게 한 기록이 나온다. 뱀은 징그럽고 간교하여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꼭 배척의 대상만은 아니다. 멕시코의 유명한 테오띠오칸 유적지엔 거대한 뱀신전의 피라밋이 있는데 그 안에큰 돌과 바위에 여러 가지 뱀이 새겨져있어 그들 조상들이 뱀을 숭상했던 자취가 엿보였다. 중국에서도 전국시대에 뱀을 복장신(伏藏神)이라고 재신(財神)으로 삼고 숭배했다. 우리나라도 예외없이 옛 선조들이 업 구렁이라고 칭하면서 정화수를 떠다놓고 빌었다.
근대에 와서도 뱀꿈을 꾸면 재수가 좋고 뱀의 흔적을 몸에 지니면 재운이 따른다고 하여 뱀가죽으로 만든 허리띠、지갑、시계밴드 같은 것을 갖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재수가 있고 운이 좋다는 기사년에 우리 신자들은 무엇보다도 신앙생활의 발전이란 재수가 붙어 주었으면 좋으련만.
89년 새아침에 나는 다부지게 신앙생활을 하여 주님 보시기에 기뻐하는 자되게 해주십사고 첫 바람을 주님께 아뢰었다. 나로서는 좀 무겁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기도가 튀어나온 이유는 88년 새아침의 기도가 어느 정도 성취되었기 때문이었다. 88년의 기도내용은 매일 미사를 거르지 말 것과 나날이 바치는 정해진 기도와 아울러 묵주의 기도를 꼭 2번씩 드려 시간의 11조를 바칠 수 있는 내가 되게 해달라는 간구이었다. 지난 1년을 감사하면서 89년 새아침에 기쁜 마음으로 이 기도를 드렸었다. 15일이 지난 오늘나의 일상생활을 통해서 자세히 살펴보니 이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매일 1시간을 바치자는 88년의 기도는 어느 정도 형식적으로도 넘어갈 수가 있으나 주님을 매사에 기쁘게 해드리자는 목표는 실질적으로 파고 들어가야 하므로 나의 삶 전체를 드리지 않고서는 안될 것 같다. 나와 퍽 거리감이 있다고 느껴져 실천의 가능성이 희박하다. 섣달 그믐날 주님께 드리는 보고내용은 씁쓸하다.『새아침의 결심은 2%밖에 못 거두었읍니다』라고 내놔야 할 것 같다.
그 길은 한마디로 말해서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 말씀의 지혜는 한비자(韓非子)란 저서에 나오는「涸澤之蛇」란 말과 일맥상통한다.
옛날 중국 전국시대 말엽에 법률가이며 사상가인 한비란 사람이 쓴 글에 나오는 얘기이다. 물이 마른 못에 두 뱀이 살았는데 어느날 작은뱀이 큰뱀을 보고 말하기를『네가 나를 버리고 앞서서 가면 너를 보고 인정머리 없는 놈이라 하겠고 네가 나를 업고가면 덕 있는 놈이라고 너를 우러러 볼것』이라고 해서 큰뱀이 작음뱀을 업고 갔다는 것이다.
이것은 힘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봐줘야한다는 말이다. 관민화합의 상징이기도 하고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화합하라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또한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줘야하고 선택받은 사람이 버림받은 사람을 구제해야하고 양지에 사는 사람이 음지에 사는 사람을 돌봐야 한다고 깨우쳐준 교훈의 말씀이다.
요즈음에 한창 벌이고 있는 가톨릭의 한마음 한몸운동도 마찬가지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공동선을 행하자는 것이므로 모두가 한 마음으로 적극 이 운동에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만 착한 사마리아인의한몫을 담당하게 될테니까 말이다.
기사년 새해라고해서 신자들에게 별수는 없겠지만 올해 벽두부터 공산국가와의 교역도 시작되어 굳게 닫혔던 문이 서서히 열리고 있다 곧 밝은 소식이 들려올 것만 같아서 가슴이 설렌다. 또 세계성체대회가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뜻깊은 해이기도하다. 이러한 때 우리들 크리스찬만이라도 성체 안에 모두가 하나 된다면 주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 하고 새아침에 생각해 본다.
<마리아ㆍ왕십리본당ㆍ성산의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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