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야한다” (요한3장1~12)
귀중한 것을 보는 눈을 가진 사람과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리는 사람과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이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첫 번째로 방문했을 때의 많은 신기한 일들을 하셨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 기적을 행하는 것을 보고 그 사람을 믿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며 극히 당연한 일이다. 단순한 마음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 단순한 사람들이라야 하늘을 우러러 좋은 것을 받아들일 마음을 늘 열고 있다. 이렇듯 단순하고 당연한 일인데도 기적을 보여 달라고 하던 사람들이 진작 기적을 보고는 고개를 돌리는 옹고집들이 세상에는 늘 있게 마련이다. 그들에게는 믿기에 필요한 징표들이 주어질 수가 없다.
그들의 눈은 빛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멀쩡한 눈을 감아버린다. 예수의 기적을 보고 이런 태도를 취했던 부류들은 유대아인들의 지도계급이었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이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예수께 기적을 보여달라고 요청하였던 것이다. 악의에 찬 요청이었다. 이런 사람들 중에도 눈을 떠보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학식이 풍부하여 성서에 능통하였고 백성들의 교사격인 랍비라는 호칭을 가졌을 뿐 아니라 국민의회격인 산헤드린 의원이었다. 그의 이름은 니꼬데모였다. 이 사람은 예수의 기적을 보고 눈을 일부터 감지는 않았다.
그는 예수라는 사람을 한번 만나 뵈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예수라는 사람은 성전 소요사건이후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는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혀 있었다. 이런 사람과 수작하는 것은 이로울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눈치를 피하느라고 그는 야음을 틈타서 예수를 찾아갔다. 예수께서는 이때 니꼬데모가 그 거처를 알 수 있을 만큼 꽤 이름있는 사람집에 머물고 계셨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예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이때부터 예수를 받아들이는 사람들과 예수를 배척하는 사람들이 갈라지고 있었다. 베드로,안드레아 등 어부 출신들과 시작한 예수의 인간교제에서 예수는 학식있는 니꼬데모를 처음 만난 것이었다.
그러나 야밤에 찾아온 이 사람은 아직 어두움에 싸인 어두움의 사람이었다. 어두움이 빛을 찾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는 예수께서 앞으로 펼칠 교리의 첫장을 이룬다-지상생명과 천상생명의 대조를 비추어 주는 일이었다. 이제 어두움과 빛의 대화가 전개된다. 니꼬데모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는 예수를 랍비라는 존칭을 써서 인사하였다. 이 말은 제자들이 예수를 따라다니며 부르던 말이다. 니꼬데모는 사회의 유명인사였고 민족의 지도층에 속했던 것으로 미루어 나이도 꽤 듬직하였고 예수는 30세를 막 바라보는 새파란 젊은이였던 점을 생각하면 니꼬데모의 이 존칭은 꽤나 근거가 있는 것이었다. 그 근거는 그가 본 예수의 기적이었다.
하느님이 함께 계시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기적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당신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인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는「우리」라는 말을 했다. 예수의 기적을 보고 눈을 돌리지 않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초기 예수의 제자들도 그랬지만 니꼬레모도 예수의 기적을 보고서 믿게 된 사람 중 하나이다. 예수께서 원하신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아무 조건 없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예수를 믿는 신앙이었다. 그래서 세속의 사람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대답하였다.『정말 정말 내말을 들으시우,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없읍니다』물론 들어갈 수 없다는말이다.
얼마 전에 나타나엘에게도 이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하늘과 사람의 아들 사이를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1장51)』라고. 니꼬데모는 어리둥절하였다. 세속적으로 성서를 보던 눈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래서 대꾸하였다. 사람이 또다시 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냐고. 새로 난다는 원문은「다시 나다, 위로부터 나다」라는 뜻을 가진다. 예수께서는 새로 난다라는 말을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뜻을 가지고 설명하셨다. 그것은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난다는 뜻이었다. 물론 새로 나는 것은 세례자 요한의 세례예식이었고 성령이 덧붙여진 것은 앞으로의 새로운 세례를 말한다.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난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얻는다.
그것은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뜻한다. 사람이 육신으로 나서 육신에 쳐져 있으면 육신으로 썩어 없어지고 만다. 그러니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려면 성령의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육신에서 나온 사람은 육신일 따름이며 성령에서 나온 사람은 성령의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예수께서는『정말 정말(아멘 아멘)내 말을 잘 들으시오』라고 다짐을 하셨다.
아멘이란 말은 신약성서에서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틀림없는 진실이라는 확증의 도장과도 같이 맹세코라는 뜻이다. 이 뜻을 더 강조하기 위하여 요한복음서는 거듭 아멘을 사용하였다. 성령으로 새로 난다는 말을 설명하기 위하여 예수께서는 바람을 가리켜 설명하셨다. 아마도 니꼬데모와 대화 하던날 밤 상쾌한 산들바람이 붙었는지도 모른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어디서 불어오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
사람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바람이 뺨을 스칠 때 사람은 그 바람의 효과를 느낀다. 사람의 생기는 숨기로 알수 있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바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생기를 우리는 기(氣)라고 한다. 성서원어「성령」은「기」「바람」이러한 뜻을 가지고 있다. 하느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 붙어 넣은 생기는 하느님의 기이다. 성령은 바로하느님의 기이다. 니꼬데모는 아직도 못 알아듣는다.
이스라엘의 이름난 선생이라는 사람이 예수의 말씀을못 알아들은 것이다. 세속을 찾는 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하늘의 일을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여기서 예수께서는「우리」와「너희」를 대조시켜서 말씀하셨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하고 우리의 눈으로 본 것을 증언하는데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이 말은 사도요한이 이글을 쓰던 백년경에 예수를 거부하는 자들을 두고 예수의 입을 빌어 한 말이다. 예수의 입장에서는 이「우리」는 성부ㆍ성자ㆍ성령과 제자들을 포함한 우리였고 사도요한의 입장에서는 사도시대의 교회를 가리킨다.
백민관 신부
<서울가톨릭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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