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4일 서울 상계5동 철거지역에서 발생한 수녀집단구타사건은 교회 내에 적지 않은 충격을 던져주었다.
세입자대책위원회 임원ㅎ씨(58세·예비자)는 『세상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믿기 힘듭니다. 수도자들을 골목으로 몰아 집단구타하고 베일까지 벗겨 불에 태우는 행동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는 말로 당시의 「끔찍스러웠던」상황을 전했다.
가옥주와 세입자들의 집단난투극, 세입자 대표 구속 및 집단 단식농성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급기야 수녀구타사건까지 발생한 상계동 173번지 철거지역. 많은 이들은 1년 전 만해도 비록 가난했지만 이웃 간의 따뜻한 정이 흘렀던 이곳이 왜 이토록 변해야 하는가를 반문하면서 근본적으로 정부의 철거정책에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달동네의 8평짜리 무허가 판자 집이 2천 5백 만 원에 거래되고, 어제까지 만해도 형님, 아우하며 서로 돕던 이웃들이 하루아침에 원수지간으로 돌변해버리는 「기가 막힌」현상들 앞에 잘못돼도 뭔가 크게 잘못되고 있다는 우려가 이를 뒷받침한다.
해방 전 일제가 효과적인 수탈을 위해 도시화를 추진하면서 형성되기 시작한 도시빈민들. 농촌에 있으면 굶어죽기 십상이며 도시에 가면 그래도 입에 풀칠이나 하지 않겠느냐며 하나 둘씩 도시로 몰려와 도심외곽 산동네에 자리를 잡은 이들은 그동안 정부의 도시환경미화, 주택보급정책의 직접적인 대상자가 되면서 점점 도시의 외곽으로만 밀려날 뿐 여전히 정부의 「골치 아픈」존재로 남아 있음이 거의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도시문제 전문가들은 60년대 들어 본격화되기 시작한 정부의 재개발정책은 집단이주정착사업, 시민아파트건립사업, 불량주택양성화사업, 현지개량사업, 불량지역재개발사업으로 이어져 오면서 시행착오를 반복했으며, 80년대 들어 자력개발·합동개발·순환 개발방식 등 이름도 생소한 묘책이 등장하는데 까지 이르렀으나 「골치 아픈」문제는 여전할 뿐이라고 진단한다.
이중 83년 하반기 서울 구로 6동에 처음 시도된 합동재개발방식은 상계동·옥수동·신당동·사당동·봉천동등 서울시내 대부분의 재개발지역에 적용, 실시되면서 상계동에서 나타난 실례에서와 같이 가옥주와 세입자가 서로 등을 돌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이유는 어떻게 해서든지 빨리 공사를 강행 「내 집」에 들어가겠다는 가옥주들과 아무런 대책 없이 무작정 삶의 터전을 떠날 수 없다는 세입자들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건설업체와 복부인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지난11월4일 상계동 철거현장에서 철거반원들에게 머리카락이 뽑히는 수난을 겪었던 아씨시의 프란치스꼬전교 수녀회의 한 수녀는 『우리를 구타한 가옥주 측 철거반을 미워할 수만은 없다』면서 『개발의 미명아래 어차피 피해자일수밖에 없는 가난한 이들의 공동체가 와해되는 것』이 라며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또 한 가지 분명한 현실은 상당수의 가옥주가 고급아파트에 들어갈 입주금과 입주 후의 관리비를 지불할 능력이 없기에 결국 투기꾼들에게「딱지」를 팔수 밖에 없으며 비록 어느 정도 높은 가격에 딱지를 팔았다하더라도 이미 주위의 집값과 전세 값이 급등하기 때문에 변두리 산동네에 세입자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
더욱이 딱한 것은 20~50만원에 불과한 이주비만으로는 서울시내에 갈만한 곳도 없고. 또 시외로 빠져나간다 해도 막일 행상이주업인 관계로 생업에 막대한 지장을 받기 때문에 꼼짝없이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세입자들의 경우다.
이 같은 상황에서 막연한 불량주택 재개발강행은 무리가 뒤따르게 마련이라는 지적이 있을 수밖에 없다. 현재 서울시내 30여개 지역에서 일괄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재개발정책은 30만 주민을 또 다른 형태의 도시빈민으로 양산시킬 우려가 있으며 그것은 그들의 생존권을 파기시키는 현실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계동 세입자들의 장기농성, 신당동 주민 2명의 분신자살 기도 등 극한상황이 나타나고 있으며 많은 이는 정부의 지나친 도시미화정책과 전시행정의 허구성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교회는 이 같은 재개발정책에 대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개선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촉구해 왔다. 김수환 추기경은 지난 5월 CBS와의 대담에서 『올림픽을 위한 도시 미화정책 때문에 도시빈민들의 생존이 위협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천명한 바 있으며 윤공회 대주교는 지난 11월 17일 정평위 미사 중 강론을 통해『그릇된 도시빈민정책이 수십 년에 걸쳐 가꾸어 온 생활공동체를 파괴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한바 있다.
정의구현사제단도 11월 17일 성명서에서 『가난한 사람에게는 가난하게 살 권리가 있다』면서 『이들을 도시미관의 장애물로서가 아니라 누구보다 인간답게 살기를 소망하는 착하고 어진 우리의 이웃, 존엄한 인간으로 대해 줄 것』을 호소한 바 있으며 이 밖에도 많은 성직, 수도자, 평신도들이 가난한 공동체에「참여」하기를 희망해 왔다.
그러나 일부에서의 차가운 시선이 이들의 아픔을 더 깊게 만들고 있기도 하다. 암사동 철거지역 세입자 ㅁ주부(54세·다리아)는 『본당 구역반상회에 참가하기도 겁이 나요. 어떤 신자는 우리 세입자들이 큰 이권을 노리고 철거현장을 떠나지 않는다고 홀대를 하는데 참으로 두렵기만 합니다.』하면서 신자들의 따뜻한 손길을 호소했다.
상계동에서 세입자들과 근 2달간 천막생활을 하고 있는 예수회 정일우 신부는 『전에는 이권을 노린 일부 세입자, 가옥주들의 불미스런 행동이 있었지만 현재 세입자들의 요구는 아파트입주권, 고액의 보상비가 아니며 그저 사람대접해달라는 것 뿐』이라면서 『궁극적으로는 재개발사업이 주민들의 입장을 도외시하기 때문에 나온 결과』라고 설명했다.
곧 얼음이 얼고 눈보라가 몰아치는 엄동설한이 다가온다. 정든 고향을 버리고 도시로 몰려든 이들은 땔감으로 펄펄 끓는 시골집의 아랫목이 아니라 찬 기운이 그대로 올라오는 천막 속에서 언제일지 모를 정부의 도시빈민정책 변화를 바라면서 오돌 오돌 떨게 될 것이다.
『대림은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이며 이 시대에서 대림이 가장 의미 있게 와 닿는 사람들은 바로 이 철거민들』이라는 정일우 신부의 의미 있는 이야기 속에서 진정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사람들. 정의를 목말라하는 이웃은 너무나도 우리와 가까운 곳에 있음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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