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커먼 작업복에 온 몸이며 코가 까맣게 되어있는 여자를 한번 상상해보세요. 제가 바로 이런 모습을 하고있는 연탄장수 아낙네랍니다. 하지만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지요. 오히려 자랑스럽기도하고 고맙기까지 하답니다. 내 자식들, 그리고 나의 남편과 살아가는 보금자리를 누구못지 않게 아름답게 해주는 근원이기 때문이지요』
충북 괴산에서 자라나 그곳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한 나는그 이듬해 남편을 설득시켜 밭 몇떼기 있는 것을 조카들에게 주어버리고 서울로 올라왔다. 평생을 손바닥만한 땅에 의지하여 여기서 나오는 작물로 찢어지도록 가난하게 살아가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평생을 그러구러 살아온 우리 부모네들을 보면 더욱 소름끼치게 실감나는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젊은 동안에 기반을 닦아 앞으로 태어날 자식을 위해 안일함을 벗어버리자고 약속했던 것이다.
서울에 올라온 우리는 당장 갈 곳이 없어 같은 고향분댁 신세를 지면서 곁방살이를 하였다. 취직자리를 구하지 못한채 남편이 집안에서 맴도는 동안 첫 아이가 생겼다. 방세도 못 갚고 막막한 나날을 보냈으나 동향(同鄕)인 주인아주머니는 독촉은 커녕 오히려 내게 용기를 북돋워 주었고 오늘날의 우리 가정이 있기까지 많은 도움을 베푸신 은인이셨다.
계속해서 남편의 취직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나는 막일을 시작했다. 그래서 동네아주머니들이 가져다주는 빨래를 해서 주고 품값도 받았고 바느질도 했으며 동네근방 회사의 커턴이나 의자카바같은 것도 빨고 다듬이질까지 해주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때 익숙치가 않아 며칠을 앓아 눕기까지 했으나 하루도 쉬지않고 열심히 일을 했다.
얼마 안되는 품삯을 받아 생활에 보태쓰는 것은 물론 여기서 조금씩 떼어내서 적금도 들고 한푼도 낭비하지 않았다. 남편은 내가 아파 누워있을때마다 죄지은 사람처럼 미안해했지만 나는 오히려 용기를 북돋아주며 위로를 해서 우리 부부의 금슬은 동네에 소문이 자자하도록 좋았다.
둘째아이를 낳아 더욱 바쁘게 고되게 일하고 있을때 남편이 드디어 취직이 되었다. 월급은 많은 편이 못되었지만 하느님의 은혜로 알고 우리 부부는 무척만족해했다. 그 즈음해서 나는 동네에서 신용을 얻어 싼 이자로 돈을 빌려다가 돈놀이를 하고 있었고 30만원짜리 계를 들고 있기도 해서 희망에 부풀지 않을수 없었다. 이제 서울 올라온 보람이 이루어지는듯 싶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에선지 나는 한꺼번에 시련을 감당해야 하는 시간을 맞이했다. 한푼 두푼 모아 현금으로 지니고 있는 큰 돈이 화폐개혁으로 소용이 없게 되어버렸고 내 큰 꿈이 자라고 있는 계가 깨어져 수포로 돌아갔으며 게다가 남편까지 직장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서로를 위로하며 상처입은 마음을 달래주었다.
남편 퇴직금 30만원으로 남편친구와 제과공장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친구의 사기에 걸려들어 몽땅 날리고 우리는 무일푼이 되고 말았다. 손이 부르트도록 막일을 하면서 고생한 모든 보람이 헛수고가 되가는것만 같았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재산이라곤 자전거 하나 뿐이었다. 서울와서 처음 자리잡은 고향같은 효창동 셋방을 떠나 더 작은 곳으로 이사를 갔다. 거기서 우리는 자전거 하나를 자본으로 연탄배달을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연탄배달을 가던중 고향아주머니를 길에서 만났다. 내 모습을보고 깜짝놀라던 아주머니는 세상에 그리도 열심히 일해서 어디선가 잘살고있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이게 무어냐며 효창동에 다시가서 연탄장사를 해도 거기서 하라고 끌다시피 하였다. 워낙 효창동 부근에서 신망을 얻어놓았던 터였으므로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연탄배달하여 조금 모인돈 과 집세 등을 합해 우리는 효창동에서 연탄장사를 시작했다.
옛부터 안면이 있는 분들이 단골을 해주어서 생각보다 장사가 잘되어 일이 밀리기 시작했다. 자전거로는 어림도 없어 리어카가 장만되었고 이것도 부족해서 이젠 삼륜차까지 동원되었다.
계가 깨는 바람에 어찌나 혼이 났던지 그후로 돈이 생길때마다 저축을 했고 적금도 들었다. 그 열성이 어찌나 대단했던지 어쩌다가 내 이야기가 소문이 나서「건전한 소비생활 발표회」에서 연설을 한적도 있었다.
이 자리에서 한 말을 나는 아직도 가슴깊이 되새기고 있다. 검소와 저축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불경을 인용했다『젖이 나는 젖소의 젖을 짜는데 그날 그날 안짜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짜면 되겠지 하는 생각을 갖지말라. 젖소의 젖은 마침내 말라서 나오지 않을것이다』
아침 저녁 열심히 일하고 검소한 생활로 저축을 한 결과 우리는 소원이던 집을 한 채 샀다. 아이들 학비를위해 장학적금을 들었던 30만원과 50만원짜리 적금도 두 구좌를 타게되어 이제는 기반을 잡은 것이다.
이것이 우리 힘으로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분명히 이웃의 힘으로 된 것이다. 동네 아주머니 저축회 회원들 모두의 도움으로 오늘의 우리 가정이 꽃피운 것이다.
모두 학교에 다니고있는 4남매들이 부모님께 효도를 하겠다고 장학생이 되어 한껏 기쁜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우릴 도와주신 분들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더욱 불우한 이웃을 도와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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