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 너머 바라뵈는 작은뜰의 나무들, 나무들에 어린 비수(悲愁)의 가을빛…. 11월, 계절의 플랫폼에는 상강(霜降)을 넘은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세우며 줄지어오고 창백한 햇살들이 삭은 뼈처럼 부서져 딩굴고 있다.
모일(某日)의 노을속에 점점이 나르는 가랑잎 죽음의 만장같은 서곡, 인간도 저처럼 때가 오면 떨어져가리라.
어둡고 황막한 묘지를 향해 가리라. 포도나무의 포도잎이 시들기보다 더 빠르게 시들어 썩어가리라.
하루의 끝에, 저녁이 오고 계절의 끝에 가을이 오는 생명의 끝에는 죽음이 온다. 사람의 아들은 누구든 죽는다. 아담도 죽었고 아브라함도 죽었고 그리스도 그분도 죽었다. 탄생은 죽음을 전제로 하는 가수(家授)의 체류(滯留)다. 짧은 봄날 천여(天女)의 씨를 뿌리고 돌아가는 농부다. 사람들은 누구나 잠시 하늘의 땅을 가는 소작인일 뿐이다.
죽음은 그처럼 우리들 혈관속에 심장속에 육체의 세포 하나하나속에 검은 그림자를 숨기고 있다.
그것은 시시로 숨쉬는 공기와 함께 나날이 먹는 음식물과 함께 우리의 몸속에 스며들어와 이윽고는 어느날 우리를 흙으로 돌아가게 한다.
우리는 잠시 여름 수풀같은 생명의 향연에 참가하지만 그리고 갖가지 희망이며 이상을 꿈꾸어 보지만 그것은 이내 포도밭의 포도처럼 한덩어리 악취나는 육괴로 쓰러져버린다.
삶과 죽음 알 수 없는 갈림길, 단 하나 심장의 고동으로 지상과 영원이 갈라지는 어이없는 분기점 지금은 내 혈관이 내 심장에 간단없이 붉은 피를 부어넣고 있지만 규칙적인 리듬으로 생명의 실체를 증거하곤 있지만,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가 우리는 정말로 살아있는것일까 죽어있는 것일까 나날이 산다는 이름으로 죽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리스도는 제작금의 한 사람이 먼저 아비의 장례를 치르고 당신을 따르겠다는 말에 죽은 자의 장례는 죽은 자에게 맡기고 그대는 그대로 나를 따르라(마데오8-22)고 이르셨다. 분명 그분에게 있어 이 세상은 이미 죽어있는 또는 죽어가는 사자들의 거대한 묘지임이 틀림없었다. 참으로 생명의 작은배는 인생이란 나루에 잠시의 닻을 내리고는 있지만 끊임없이 배를 흔드는 크고 작은 물결은 그곳이 인간의 영주지가 아님을 일러주고 있다. 인간의 영주지 생명의 국적은 어디 있는가.
티 한 점 없이 맑은하늘 그대로 빠져들어가 공기처럼 융해되고 말 것 같은 깊은 심연, 저곳에 누가 있어 지금 이 순간에도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생명의 다리를 놓고 있는가 인간의 가슴에 명멸하는 불멸의 등불 하나를 켜들고있는가. 11월 만추(晩秋)지상의 모든것이 낙하하는때가 오면 어김없이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 저편에 계신 아지못할 한 분을 생각하게 됨은 아마도 그곳이 죽어서도 사는 그분의 나라 그분의 집이기 때문이리라.「나는 아노라 나의 구속자가 살아계시니 나의 이 가족, 이것이 썩은후에 나는 나의 육체밖에서 하느님을 보리라」(욥기 9-29)
진실로 내 살이 썩어서 다다르는 죽음의 집에 당신이 아니계신다면 나는 어찌 멀고 캄캄한 길을 혼자가리오. 어둡고 음산한 묘지에 밤을 지키리오. 그 춥고 쓸쓸한 유택(幽宅)도 당신이 계시기에 광희로운 나라로 통하는 터널인 것을 당신이 준 갖가지 위안중에 가장 큰 위안 죽음을 이기는 그 평안함을 알고 가신 이들은 행복하다. 미처 당신을 알지 못하고 가신 이들도 당신은 잊지않고 부르시리라.
11월은 죽은 이들이 죽지않고 당신의 나라에 영생함을 다시한번 믿고 기억하는 달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