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태군은 영리하면서도 침착한 젊은이입니다. 절대로 서두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가『사랑』이란 말을 가지고 나에게 질문하려고 하면서도 결코 그것을 직선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한참 여유를 주어가면서 자기의 수용태세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흡사 무엇에 답하기전에 내가 취하는 사전준비 자세와도 같습니다. 나는 습관적으로 무엇을 말하기전에 순간적으로 침묵하거나 어-하는 버릇이 있는것 같습니다. 이 버릇이 좋고 나쁘고는 차치하고 이 순간은 나에게 대단히 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동안 나의 사고는 최대 능력을 발휘하여 주어진 문제를 가장 단시간내에 가장 우수한 해답을 정리해내는 순간인 것입니다. 선태군의 질문이 직설적이 아니란 그 이유가 흡사 이런것과 같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즉 그 본질을 알기 위하여 먼저 그 바탕을 먼저 확인하는 그런 절차적인 배려라고나 할까요.
선태군이 나에게 질문을 한 여러가지 가운데 가장 첫째 문제는 인간 자체의 문제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누구나가 한번쯤 빠지기 마련인 생명에 대한 회의같은 것입니다. 과연 이 생명은 무엇이며 왜 이 생명을 구차스럽게 살아가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가 나의 힘으로 어떻게 해결되기를 바라겠습니까? 나는 망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그대로 방치해둘 수는 없었습니다. 나도 다시 생각했습니다. 우선 선태군에게 생명의 은혜로움부터 인지시켜 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은혜로움을 인식하게 되면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나오게 될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선태군과 더불어 내가 존재문제에 대하여 무슨 논쟁같은 것을 해보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기 때문에 절대로 서로 적대적 자세가 아니고 서로가 자기 의사나 생각을 소중히 간직하면서 서로를 이해하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물론 선태군은 나에게서 배운다는 진지한 자세를 결코 잊어버리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때로는 내 자신이 더욱 긴장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선 인간은 이렇게 해서 태어났음을 설명해 줄 수 있습니다. 고대 동양의 유교도덕에 있어서는 아버지가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가 나를 기르셨으니 나를 낳아 기르신 어버이의 은혜를 갚자면 호천망극이로다고 했고 삼국시대 이래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크게 영향을 준 불교 교리에 의하면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무한대의 윤회 가운데 인생은 부처님의 자비에 의한 것이라 설파하고 전 세계적으로 그 교세가 가장 큰 기독교 교리에서는 하느님의 전능전선의 의지에 의하여 자기 모상대로 다듬어진 것이 인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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