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5일, 역시 웅장한 성 요한 라떼라노 대성전은 순례객들로 크게 붐볐다.
성전 입구의 어수선함은 어쩔수 없었다. 그러나 중앙제대에선 미사가 집전되고 있었고, 내부의 많은 소성당에서 묵상하거나 만원인 고백소를 피해 구석구석에 선 채로 고백하는 순례자들도 있었다.
「구세주의 성전」으로 불리운 이 성전은 세례자 요한과 복음사가 요한에게 봉헌됐으며, 4세기 초에 건립된 이래 9세기말의 지진과 14세기에 두번의 화재로 소실되는 수난을 겪었고 현대의 성전은 17세기에 재건됐단다. 성전안에는 알렉산드로ㆍ 갈릴레이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조각들과 거대한 성상들이 살아움직이는듯 했고, 가톨릭의 대헌장이라 할 수 있는 사회 회칙「레룸ㆍ노바룸」을 반포한 교황 레오 13세의 무덤과 교황 제대가 있었다. 교회 일치를 위한 5차례의「라떼라노」공의회가 바로 이곳에서 열렸단다.
성전 왼편 길가에는 수난 직전, 총독 빌라도의 집에서 그리스도가 갖은 모욕과 수난을 받으며 몇번씩 오르내렸다는「스칼라ㆍ상따」가 있었다. 28층계로 된 이 성(聖)계단은 콘스탄띠노 황제의 모친 성녀 헬레나가「로마」로 옮겼다는데, 작은건물속에 들어있어 몰려드는 수많은 순례객들로 출입조차 어려웠다. 계단 입구 양쪽에는「유다스의 입맞춤」과「빌라도가 예수를 군중에게 내주는」장면을 묘사한 자코메띠의 석상이 있었다. 순례자들은 이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오르며 기도문을 암송하다간 계단에 숙연히 입을 맞추곤 했는데, 그 모습은 경건함이 지나쳐 처절한 분위기마저 감돌게 했다.
오전 11시30분경, 성마리아 대성전앞에 도착한 우리는 성전안이 복잡하므로 그 자리에서 안내원의 설명을 들어야했다. 5세기에 건립된 이 성전은 초기교회의 양식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유일한 성당이고, 서기 3백52년 8월 5일 여름밤에 기적의 눈이 쏟아지는 곳에 성당을 지으라는 마리아의 부탁으로 건립되었으며「로마」에서 종각이 가장 높고, 마리아를 전 인류의 어머니로 선언한「에페소」공의회가 개최된 곳이라는 얘기 등을 들었다.
내부 길이가 86m라는 성전안에는 순례자들로 꽉 메워진 미사가 집전되고 있었는데 앞쪽으로 비집고 가보니 우리 순례단 본진이 중앙제대옆 작은성당에서 주한 교황대사와 이문희 주교 등 사제단 집전으로 미사를 봉헌하고 있었다. 우리는 안내원의 재촉에 못 이겨 눈 인사만 나누고 예수성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로마」에 도착하기 전까지 우리는 본진과 함께 순례할 것을 기대했으나 스케쥴이 전혀 달랐다. 기자의 취재활동도 교리교사단의 스케쥴에 얽매일 수 밖에 없었다) 예수성당에선 안내원의 설명을 들을새도 없이 복음화성성 장차관을 비롯한 29명의 사제단이 공집하는 교리교사단 미사에 참여했다.
이날 오후 5시에는 성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알현식이 있었다. 5시 정각, 교황이 탄 무개차가 약 20만명의 군중 사이를 누비자, 곳곳에서 환성과 박수소리가 요란하고 후레쉬가 연거푸 번쩍여 교황의 인기가 절대적임을 실감할수 있었다. 성전앞에 광장을 향해 가설된 의자에서 교황은 한동안 군중의 환호에 답한 후 목이 쉰듯한 독특한 음성으로 약 1시간20분동안 각국 순례단에게 각 나라말로 인사를 했다. 그때마다 순례단들은 깃발을 들고 일어서며 흔히 꾸르실리스따들에게서 볼 수 있는 열렬한 반응을 보였고 교황은 일일이 이에 답례했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 특별히 교리교사단을 향해『말과 모범으로 그리스도를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사말에 이어 교황은 주변에 좌정한 약 80명의 주교들을 단상으로 불러들여 함께 강복을 내렸다.(얼마전만해도 이 같은 강복은 교황 혼자서 내렸다고 한다) 퇴장하면서 교황은 맨 앞에 자리잡은 우리 순례단과 악수하며『한국과 한국교회와 여러분의 가정에 하느님의 은총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우리 순례단은 태극기를 든 채 눈물을 글썽이며 애국가와 아리랑 복자찬가를 불러댔다. 「바티깐」의 일간지「룻세르바또레ㆍ로마노」(10월 17일자)는 교황 알현식 보도기사에서 우리 순례단의 사진을 크게 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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