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교회에서나 우리는 한가지 공통하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다같이 어떤 인간도 자기 뜻대로 태어난 것이 아니란 엄숙한 사실입니다. 알렉산더 대왕도 나폴레옹도 아인슈타인도 인도의 마술사도 다 자기 뜻대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남의 뜻에 의해 태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곧 인간이 피조물이라는 뜻입니다. 자기의 탄생을 점친 사람도 없고 자기 탄생을 주문한 자도 없습니다.
자기는 공짜로 태어났다는 말입니다. 소위 공짜 인생이란 이런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지요. 나의 생명은 나의 것이라고 하는 생각 말입니다. 나의 생명은 내 맘대로 할 수 있다고 하는 생각말입니다. 어째서 이 생명이 내가 소유한 것입니까? 무엇으로 내 생명을 소유했다는 말입니까? 무엇을 소유할때는 무슨 대가가 있어야지요. 하찮은 옷가지 하나를 얻는데도 그 값을 치루어야 합니다. 나는 무엇을 주고 이 생명을 가졌다는 말입니까? 어째서 내 것이라는 것입니까? 내 것이면 내 맘대로 해도 좋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내 것이 아닌데도 내 맘대로 한다면 도둑입니다. 내 것 아닌 내 생명을 내 마음대로 끊어버린다면 그건 도둑이지요. 거기다가 남의 생명을 뺏는다면 이건 도둑이라도 더 큰 도둑이 되겠지요.
세상에는 참 이상한 일도 많이 있습니다. 몇 년 전에 노벨문학상을 탄 작가가 자살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보고 크게 실망했습니다. 그가 쓴 많은 작품도 그가 탄 노벨상의 의미도 한꺼번에 그 의미를 상실하고 말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고 나서 선태군을 바라보니 무언가 이상한 표정을 지으면서 어느점에 납득이 가지않는 점이 그의 얼굴에 그려지고 있었습읍니다.
그 다음의 이야기는 종교에 관한 이야기가 되어야 할 차례임을 선태군이나 나나 다 같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종교적인 이야기는 가급적 피하고 싶은 것이 나의 심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솔직하게 말해서 종교에 관해서는 무슨 확신 같은 것이 서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한가지 이야기할 것이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종교 자체가 지지되어 왔다는 사실입니다.
종교 이전에 종교적인 것이 있는데 그것을 신앙이라 합니다. 종교가 신앙을 요구하는 것은 종교적인 것이 종교에 앞서는 때문인지도 모릅니다.『사람은 다 종교인이다』고 하는 말은 다 수긍하지 않을지라도『사람은 다 종교적이다』하는데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신앙이 종교를 낳는 근원이라면 사람은 다 신앙적이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 비단 이것은 논리로서 성립될 뿐 아니라 실제로 우리 생활에서 얼마든지 증명되는 사실들입니다. 그래서 어느 의미에서「신앙적 인간」이라고도 표현할만한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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