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기사년 정월에는 비오는 날이 잦다. 겨울에는 푸짐한 눈이 펑펑 내려주어야 제격인데 엄동설한 한복판이 꼭 해질 무렵만 같다.
뿌연 안개비가 연막치듯 시계를 가려놓기도 하고 온종일 아예 청승맞은 빗소리로 가둬놓기도 한다.
새해다운 매콤하게 카랑한 맑은 날씨가 아닌 후덥지근한 궂은 날이 연달은 괴이한 난동현상이다.
날씨가 사람의 심리작용에 적잖은 영향을 끼침은 불문가지다.
그래서 더 부쩍 기승을 떠는 인신매매 강도 살인 배임 횡령등 말세풍경일까.
오늘아침 조간 1면에는 국민의 절반인50ㆍ9%가 항상 범죄 피해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는 기획원 조사통계국의 88년 사회지표중의 그 부문 통계가 나와 있다.
올해 다시 집중 조사한다면 국민의 절반이 아닌 훨씬 더 많은 대다수가 공포와 불안을 겪고 있음이 드러날지도 모른다.
목숨과도 맞바꾸는 여자의、소녀의 정조를 그들의 보모 남편 자녀 앞에서 거침없이 욕보이는가 하면 길가는 아낙네를 납치하고 친구의 누이동생을、심지어는 애인마저 팔아넘기고도 경찰에 잡혀 와서 킬킬거리며 부끄럼이나 뉘우침의 기색도 없다하니 그들은 대체 어떤 별종 심장을 달고다니는지? 하고 너는 궁금해 한다.
그리고는 다시 덧붙여 의아한 상념으로 빠져든다. 대관절 그들을 그렇게 만든 범죄의 대부(代父)는 누구일까? 하고.
그런 때의 너는 마치도 사회의 공해와는 무관한 청렴결백한 국외자같다.
나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남위에 군림한 적이 없고 불로소득으로 이득을 본적도 없다. 나는 하느님을 믿고 있으며 주일마다 충실히 미사참례도 거르지 않았다. 나는 오직 인간의 양심이나 정서 따위를 깡그리 잊은 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습격을 당할지도 모를 떼강도들의 소행에 겁을 먹으며 그들의 표적이 되는일이 없도록 조신하며 어두컴컴한 뒷골목은 피하고 깨끗하고 넓은 길만을 골라 다녔으며 집으로 돌아와선 재빨리 자물쇠를 잠구고 숨을 죽이고 살았을 뿐이다.
나는 그저 조그맣게 웅크린채 하루하루를 공들여 힘들여 부단히 손을 움직여 먹이를 구했으며 밤에는 그렇게 또 하루를 탈없이 작은 평화 속에 움직이며 살게 해주심을 하느님께 감사하는 기도로서 마쳤다.
나는 하느님의 계명을 충실히 지키려고 발버둥 치면서 가족과 친지와 함께 누리는 화평에 안심하며 살았으며 더구나 황금송아지를 경배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결백하다. 떼도둑들과는 상관없는 별세계의 하느님의 백성일 뿐이야 라고 너는 거듭 생각한다.
그리고는 열심히 기도를 드린다. 천주님、저희 가족과 저희 집안과 이웃친지들을 떼도둑들로부터 지켜주소서、하고. 오늘도 여전히 하늘은 무지룩히 처져내려 눈썹 위까지 내려와있다.
오늘은 또 어떤 끔찍한 말세적 범죄가 세상을 시끌시끌 들끓게하고 떠들썩하게 숨막히게 하려나.
불길하게 내리누르는 하늘이 오늘의 상스럽지 못한 일진을 예고하고 있는 건만 같다.
우리는 왜 이렇게 편협한 자기본위、폐쇄적인 이기주의로 꽁꽁 묶여 있는 것일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남의 죄과를 소리높여 지탄하는 나 자신을 칭칭 옭아맨 끊을수 없는 오랏줄을 문득 본다.
이 징그러운、부드럽고도 집요한 사탄 같은 밧줄….
떼도둑의 하나가 곧 너 자신이며、그들이야말로 전혀 생판 남이 아닌 나자신의 피붙이라는 인신과 참회가 뜨거운 통회와 기도와 북바치는 통곡으로 터져 오르지 않는 한 죄는 날로 기승만 더할 것이다.
구혜영
<소설가ㆍ모니까ㆍ반포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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