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주일이 폐지, 구환주일로 전환되는 91년을 2년 앞둔 지금 전국 41개 가톨릭 나환우정착마을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정착마을이 자본이 적게 들고 수익성 있는 양계ㆍ양돈 등 축산업으로 생계를 유지하지만 자동화된 대규모인 일반축산업자들과의 경쟁에는 애당초 힘이 달릴 뿐이다. 불편한 몸으로 부족한 노동력에 그나마 정착마을 계란이라면 소비자가 구매하지 않는데다가 교통이 불편한 농촌지역인 경우 하절기 계란이 썩을까봐 중간상인들에게 개당 3원씩 할인해주면 출혈 방매하는 등 어려움이 뒤따른다. 이와 더불어 자금형편이 열악한 관계로 외상거래 할 경우 사료대금을 더 물게 되는 이중삼중의 손해를 보는 형편이다.
열악한 노동력
이같은 생존문제와 나환우들은 2세 자녀들의 교육문제와 결혼문제로 가장 심각한 좌절감을 경험하고 있다.
또한 신환자발생이 전무한 상황 속에서 점차 나환우들의 고령화로 인한 노후대책과 함께 나환우 감소추세 속에 조만간 나환우가 없어질 때를 대비한 정착마을의 장래문제는 지금부터대책을 마련해야 할 당면과제로 꼽히고 있다.
이 같은 문제점에 적극 대처해온 음성나환우 정착마을인 경북 의성군 다인면 신락동 400번지「신락마을」을 구라주일을 맞아 찾았다.
대구 북부정류장에서 2시간여 동안 달려 간 직행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들어 온 입간판에는「할 수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다. 소ㆍ돼지ㆍ닭사육 신락농장 사무실 600m」라고 적혀 있었다.
전형적 정착마을
같은 신앙을 바탕으로 한 굳건한 의지 속에 양돈ㆍ양계등축산업으로 자립기반을 착실히 다져가고 있는 신락마을은 마을입구에서부터 물씬 풍겨나오는 닭똥냄새와 돈분냄새로 전형적인 정착마을임을 짐작케 한다.
살림집과 축사가 도로주변에 나란히 정렬해 있고 마을 윗쪽에 공소와 마을회관이 자리잡고 있는 이곳은「신앙으로 똘똘 뭉쳐 자립하자」는 다짐 속에 예비신자 10명등 25세대주민 85명 전원이 신자거나 세례를 앞둔 가톨릭마을이다.
이들이 냉대와 질시속에 오랜 유랑생활을 끝내고 이곳에 정착한 것은 1960년.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음성나환우들 13세대가 황무섭씨라는 독지가의 배려로 정착한 후 대구대교구가 이곳을 인수할 때인 63년에는 거주자가 53세대 1백36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64년경 1가구에 4세대씩 살 정도로 환경이 극도로 악화되고 외국구호기관의 구호양곡이 모자랄 지경이 되자 20여세대는 이주비를 주어 다른 곳으로 전출시키는 과정을 거치며 현재의 수준으로 정착해왔다.
자립의 길 마련
이런 와중에서 마을의 자립기반을 닦게 된 것은 신락마을공소(다인본당관할) 최태만(42ㆍ그레고리오)회장과 고영근 축산조합장(49ㆍ미카엘)등 3명이 각각 닭1천수씩 양계를 시작, 축산업에 재도전하면서 부터였다.
70년 4월 22일 포항 초곡마을에서 토지가 비옥한 이곳으로 이주해 온 최회장은 2년 동안 시도해 온 축산업실패에 이어 73년부터 2년 동안 경작한 포도농사도 또다시 실패를 맛보았다.
나환우가 지은 농산물은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는 바람에 농사마저 망친 최회장은 배워둔 목수일과 건축기술로 연명하면서 79년 형님뻘인 고영근씨와 힘을 합쳐 축산업에 재도전케 된 것.
고씨의 친구인 사료공장 사장의 적극적인 격려 속에 양계사업이 성공, 각자 가정형편이 나아지면서 85년부터는 마을주민들에게도 축산업을 권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각기 출신 지방을 달리한 주민들이 제사 때나 민속명절 때마다 제각기 각자 풍습을 고집하는 등 분열상을 보이며 몇 안되는 주민들 가운데 파벌이 생겨날 정도로 마을전체의 단합이 어려웠다.
이런 분열상가운데 최회장과 고조합장의 축산업이 성공하는 사례를 지켜본 주민들이 동병상련의 공동운명체임을 강조하며 신앙 안에 단결할 것을 주장한 두 사람의 호소를 따름으로써 서서히 자립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85년12월10일 전국 정착마을의 자립을 돕는「가톨릭 자조회」로부터 1천5백만 원을 대부받아 이를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마을경제가 일어난 것이다.
양돈자금 지급
신락마을 축산조합장인 고씨와 최회장은 대부받은 돈을 배분하기에 앞서 재민 각자에게「당신이 생각하기에 우리 마을사람들 중 누가 가장 잘 산다고 생각하느냐」는 설문지배를 배부, 점수를 매겨 가장 가난한 세대순으로 자금을 지급, 10일 이내에 지급액수 만큼 돼지를 사들이도록 한 것.
이에 앞서 주민 각자가 자립을 위한 최소한의 준비자세를 갖추도록 축사를 준비한 가구에만 양돈자금을 지급했다.
이 같은 최소한의 자립의지 속에 대부받은 돈으로 사들인 돼지는 이듬해인 86년5월 양돈시세가 좋아 1세대 당 평균70~80만원의 소득을 올렸다.
이어 86년8월에는「상록회」로부터 대출받은 1천만원을신락마을 축산조합 기금마련을 위해 적절히 활용, 사료 1포대 구입 때마다 1백원씩을 적립, 현재까지 2천6백만원으로 불려놓았다.
마을완전자립을 위한 목표액을 1억원으로 설정한 신락마을은 조합기금적립사업을 계속추잔, 목표액이 달성되면 사료구입을 현금으로 거래, 현재외상거래로 1포당 4백원씩 보는 손해를 줄일 계획이다.
최회장과 고조합장의 열성적인 독려 속에 성장한 신락마을 축산업은 현재 양돈 2천두, 양계 7만수로 매월 소요사료량만 1만 포대에 이르고 있으며 1세대당 평균 논 4백평, 밭 6백평을 경작할 정도로 발전했다.
편견 없는 대우를
신락마을의 성공사례는 영덕ㆍ봉화 등 낙후마을인 경북 북부지방 정착마을 나환우들의 자립사업에 그대로 적용, 영세마을의 자립을 위한 모델케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현재 외상거래로 생기는 손해액만이라도 당장 줄일 수 있다면 그만큼 마을자립의시기가 앞당겨질 것이라는 신락마을 주민들은 정부당국에 사료비구입 및 계란판매 때의 부가가치세만이라도 감면해 줄 것을 바라고 있다.
정신적 지원 절실
신락마을 주민들은 감면혜택이 어려울 경우 5천만원 정도의 기금을 장기 저리융자해 줄 것을 아울러 요청하고 있다.
89년도 마을사업으로 신락마을은 2월중 마을회관 준공식과 함께 계란창고 건립 및 수녀원 건립을 계획하고 있다.
이중 계란창고가 건립될 경우 보관창고가 없어 그날그날 내다팔지 않으면 썩게 되는 이유로 중간상인들에게 개당 3원씩 손해 보면서 계란을 출혈판매하지 않아도 된다.
특히 이번 사업중 수녀원건립은 어느 정도 경제적인 여유를 갖게 되자 나태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주민들의 신앙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한 배려로 추진중이다.
『주민들이 대부분 60년대 밀가루 신자들이라 신앙이 얕다』고 안타까워하는 최회장은『지난 주간동안 상경해 우리마을 주민들의 신앙교육을 담당해 줄 수녀님들의 파견을 요청했지만 선뜻 나서는 수녀회가 없다』며 아쉬워했다.
굳이 수녀가 아니라도 평신도 중에서도 마을주민들의 신앙교육에 헌신할 분은 연락해주기를 요청한 최회장은『활동비등 수녀초빙에 따른 경비일체가 준비된 상태이기 때문에 봉사자에 대해서는 대가를 지불하겠다』고 밝혔다.
『일반 건강인의 입주도 받아들일 계획』임을 밝힌 고영근조합장은 마을 평균 연령이 55세라며 정부차원의 보조도 받아 온 정착마을이 나환우가 없어질 때 같이 소멸한다면 국가적으로도 손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신락공소 최태만회장은『한마음 한몸 운동의 일환으로 전국신자들이 가까운 정착마을을 방문, 저희 나환우들이 생산하는 농산물과 계란 등을 직접 구입해가는 운동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며 신자들로부터 나환우들을 편견 없이 대해 줄 것을 호소했다.
향수뿌리고 등교
또한 최회장은 구라주일 폐지에 대해 나환우를 위한 물질적인 지원은 거저 주는 도움보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좀 더 다른 차원에서 나환우에 대한 사회인식이 변화될수 있도록 정신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닭똥과 돼지똥 냄새가 몸에 배인 마을자녀들이 동료들에게 놀림을 당하지 않기 위해 향수를 뿌리고 등교하는 모습에 마음 아프다는 최회장은『결혼적령기에 달한 정착마을 자녀가 결혼하기 위해 도시공장에 위장취업을 하고 배우자를 구해오는사례도 전해들었다』고 말했다.
부모가 나환우라는 이유만으로 건강하게 태어난 그 자녀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는 사회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도 정착마을에 일반인이 입주해 함께 사는 방법도 적극 모색돼야 한다는 것이 나환우들의 바람이다.
<崔弘國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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