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고 힘들었던 신학교생활은 빨리도 지나갔다. 17살의 나이로 한복두루마기에 까까머리로 삭발례를 받았던 나는 어느덧 12년의 과정(중등과ㆍ철학과ㆍ신학과)을 마치고 1926년5월27일 대구 계산동성당에서 드망즈 안 주교님 주례로 사제품을 받았다.
신학교 입학생58명중 끝까지 전과목을 이수하고 졸업과 함께 신부가 된 동기생을 김필곤(바르나바) 조차성(바오로) 최덕홍(요한) 권영조(마르꼬) 이성만(이냐시오) 박재수(요한) 김후상(바오로) 석종관(바오로) 이성인(야고보) 류요셉 그리고 나를 포함한 11명이었다.
그 당시 신학생들은 사제품을 받아야만 수단을 입을 수 있었다. 그래서 11명의 서품동기들은 서품식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남산동 샬트르 성바오로회 수녀님들이 준비한 옷을 입고 품을 받았다.
한국에서 한 번에 행해진 것중 가장 많은 수가 서품된 이날 서품식에서 우리는 22명의 선교사들과 한국인 사제들로부터 안수를 받았다. 서울 구천우 신부는 나보다 이틀 전인 5월27일 서울에서 서품을 받은 것으로 안다.
서품식에는 가족뿐 아니라 많은 친척들이 와서 축하해주었으며, 앞으로 걸어갈 사제의 길을 격려ㆍ기도해주었다.
부모님은 당신의 자녀가사제로 서품된 것을 누구보다 기뻐하셨으나 한편으로는『착한 신부가 되어야하는데…』『사제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옷을 벗게 되면 어떡하나』하고 오히려 걱정부터 하셨다.
지금까지 사제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부모님의 염려 때문이 아닌가싶다.
서품식 다음날 11명의 서품자들은 각자 첫미사를 드리고 주교님과 점심을 함께했다. 식사 후 우리는 임지를 부여받았다.
신부가 된 후 처음 부임한곳은 전북부안이었다. 부안은 김제에서 40리 정도의 거리였는데 김제까지는 기차를 타고 갔고 김제에 내려 자동차로 부안에 도착한 후 15리를 더 가야 성당이 있었다. 성당을 갈 때는 장거리 이용자를 위해 말을 대기시키고 있는「마방」이라는 기관을 이용했다.
지금 대부분의 새신부들이 보좌신부로 발령받아 몇 년동안 사목생활을 하듯이 그때도 사제로 서품되면 서양 신부 밑에서 보좌신부를 해야했다. 보좌신부도 2가지가있어 보통 큰 본당에는 보좌를, 시골본당 신부들은 자유보좌와 또 다른 보좌신부를 두었다. 자유보좌는 그 본당이 아닌 다른 곳에도 갈 수 있는 보좌였고 보좌는 본당 외곽지역을 주로 맡았다.
나도 신부가 되어 백페셀 신부 밑에서 보좌를 했다. 이때는 한국신부들이 태부족한 상태였고 상대적으로 외국신부들이 많았다. 외국신부들은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춰 대중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이들은 상당히 개방적이어서 한편으로는 신자들로부터 오해도 많이 샀다. 그래서 한국신부들은 그들과 어울리는 것을 조심해야했다.
그리고 대부분이 외방전교회 소속이었으므로 선교회성격에 따라 현실참여보다는 영혼구제에 역점을 두었다. 3ㆍ1운동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이런 이유들이 개신교보다 전교발전을 뒤지게 만들지 않았나 생각한다.
신부가 되어 처음에는 공소를 순시할 때 말을 이용했다. 말을 사고 마부도 두었는데 말의 관리문제로 마부는 꼭 필요했다. 안장도 없이 말을 탔기 때문에 마부가 항상 붙잡고 다녔다. 그렇지 않으면 미끄러져 떨어지기 일쑤였다. 그러다 얼마 후 자전거를 구입했는데 지금까지 길이 좋지 않고 자갈길이 태반이어서 먼 길을 한번 갔다오고 나면 엉덩이도 아프고 힘도 쭉 빠지곤 했다.
본당보다 공소가 많았던 그때 본당에서 10리 정도거리에 사는 신자들은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본당에서 미사참례를 해야했다. 10리밖에 사는 신자들은 공소를
다녔고 공소회장이 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갓난 어린아이들에게 대세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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