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수도자 모범적인 성직자 충실한 선교사로 한국땅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하기 40여 년-.
활화산 같던 그의 사랑의 불꽃도 끝내 병마를 감당하지 못한채 지난 5일 왜관 수도원에서 조용히 꺼져갔다.
고 왕 레지날드(한국명ㆍ왕창도) 신부는 서독「오베르키르크」에서 교육자 집안의 5남매 중 3남으로 출생했다.
형과 아우도 교육자여서 그런지 왕 신부 또한 일생동안 교육사업에 남다른 열의를 보였다.
성 오띨리안 대학과「뮌헨」대신학교를 거쳐 1931년 3월 8일 사제품을 받은 왕 신부는 이듬해인 32년 4월 베네딕또회 선교사로 한국 파견을 지원, 그 옛날 우리 땅이었던 만주 간도성 연길현내 각 본당에서 4년동안 보좌신부 생활을 하면서 일제하에서 학당을 세우고 뭉매한 농민들을 교육시키기면서 문맹퇴치 사업에 주력했다.
그 후 연길현 내 팔도만본당 주임신부와 그가 보좌때 설립한 해성학교 교장에 취임, 52년 8월 15일 본국으로 추방될때까지 15년간 일하면서 당시 신자가 아니고는 한글을 해득하지 못할 정도로 선교와 교육, 자선사업 등에 큰 업적을 남겼다.
해방이 되자 공산군에 의해 허시로 보좌신부와 함께 새끼줄로 목을 묶여 장터로 끌려다니는 수모와 매질과 주리틀림을 당하면서도 한국인을 위해 기도했다는 왕 신부의 과거가 김 끌레맨스 신부의 강론을 통해 전해지자 장례식에 참석한 모든 신자들의 가슴을 울렸다.
한국과 한국인을 잊지 못하고 53년 11월 재입국 4년 동안 성주본당에서 사목을 하면서 30여 개의 공소를 건립했다.
『기회가 있으면 잡아라 돈이 없다 시간이 없다고 우물쭈물 하지말고 기회가 있으면 놓치지 말고 잡아라』고 말하면서 쉴새없이 일한 왕 신부는 안목또한 넓었다. 한국에서 지역적 개발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함창본당에서는 기술학교를 설립하여 함창 상지여자중상업고등학교로 성장시켜 함창지역 사회 개발에 몸소 앞장서왔다.
지난 73년 4월 17년간 정들었던 함창을 떠나 마지막 임지였던 신동본당에 와서 곧 췌장암이 발병, 작년 7월 수원 빈센트병원에서 진단결과 6개월 시한부 생명을 선언받았으나 초인적인 투병생활도 1년여를 견디어 왔다.
취장암은 암 중에서도 가장 고통이 심한걸로 알려지고 있는데『모든 아픔을 한국 신자들을 위해 참아 견디겠다』면서 죽는날까지 한국인을 사랑했다.
어느날 한 미군이 한국사람은 개고기를 먹는다고 비웃자 왕 신부는 자신의 일 같이 나서서 책망해주는 등 한국의 역사를 알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왔다.
뿐만 아니라 병마와 싸우면서도 가난한 결핵환자들이 방치되고 있는 우리의 실정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필생의 사업으로 지난 8월 19일 결핵요양원을 칠곡군 지천면 연화동에 완공 지역사회 개발에 대한 그의 신념을 확인했다.『그는 거절할 줄을 모르시는 분이었다. 무엇이던 있으면 다 내어주고, 없으면 문을 꼭 잠그고 아예 내다보지 않았다』는 김 안나씨의 회고는 왕 신부를 가장 단적으로 표현한 말일듯. 그는 아낌없이 모든 것을 준 참다운 그리스도의 사도였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