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 동남방 치명산 중턱에 자리잡은 순교자 이 루갈다의 묘지엔 갖가지 경이로운 사실들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대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이러한 사실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오래전부터 체험자들과 주위 사람들의 증언을 조사한 바 있는 관계자들의 글을 여기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전주교구 고 김 바르톨로메오 주교님은 평생을 두고 순교자 루갈다에 대한 신심이 남달랐고 루갈다의 전기를 꾸미는데도 관심이 매우 커서 불초나에게 여러번 서면으로 부탁하여 왔다. 그래서 나는 외람하게도「피묻은 쌍백합」이란 제목으로 그분의 생애를 꾸며보았다. 그때가 1958년 봄이었을 것이다.
그 원고가 탈고될 무렵 7월 중순에 마지막으로 원고의 미비점을 메꿀 자료를 찾을 겸 루갈다의 묘소를 한 번 더 참배하러 전주로 갔다.
우리 한국-백년 순교사에 있어 너무나 유명하고 가히 극적인 사연을 남뿍지닌 금자탑의 전기였기에 그를 꾸미기에 늘 황송한 생각을 가졌었다.
김 주교는 그 원고를 대강 읽으시고 만족해하면서 출판하기로 결정 지으셨다.
그래서 나는 금상첨화격으로 김 주교님이 알고있는 루갈다 무덤에서 조사하여 함께 실으려고 자세히 기록하였다. 주교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몇번이나 감탄해마지 않으면서 루갈다는 불행히 복녀가 되지 못했지만 바로 성녀품에 오를것을 확신한다고 하였다. 거기에는 나 역시 동감이었었다.
주교에게 들은 사실은 이 지면을 통하여 앞으로 2ㆍ3회 계속해서 소개하기로 하고 먼저 바로 그날에 볼초 내가 친히 목도한 사실을 여기 적는다.
루갈다의 묘소가 있는 곳은 전주의 명승지인 한벽정(寒碧亭) 서편에 높이 솟은 산꼭대기에 있다. 이 산을 지방사람들은 중바위(僧岩)라 부르고 우리 교우들 측에서는 치명산이라 불려온다.
묘소는 이산 꼭대기에 승려들처럼 보이는 기암괴석으로 된 봉 아래 남쪽에 있다. 거기를 가려면 통로가 매우 불편하여(근자 넓은길을 닦았다 함) 오르내리기가 여간 힘이 들지 않는다.
전주천 하류에서 그 산을 쳐다보며 바로 오르는 길은 험한 오르막 길이어서 젊은이는 한번쯤 쉬어오를 수 있으나 늙은이는 적어도 두 세번 쉬어서 올라가게 돼있다.
나는 세 번을 쉬고 땀을 다 말린 뒤에 묘소를 향하여 막 돌아서는데 무덤위에 세운 돌 십자가 위에 아이들이 올라앉아 나쁜 유행가를 부르기에 소리질러 쫓고나서 돌 위에 놓은 상의를 줏어들고 막 오르려 하는데 바로 무덤위에서 흰 구름의 기둥이 광목폭 넓이로 두 줄로 뻗혀오르기를 약20여 m가량 오르다가 한데 어울려 한폭이 되기를 약 10여 m 지속한다. 또 다시 두 폭으로 갈라져 좀 긴 폭은 서북쪽 중바위 너머로 천천히 사라지기 시작하고 좀 짧은 쪽은 남쪽하늘로 차츰차츰 사라졌다.
나는 너무나 황홀한 현상에 정신이 얼떨떨하여져 조금전 주교의 이야기를 듣고 정신 착각이나 일지 않았나 스스로 의심하면서 하늘 전면을 둘러봤다. 그러나 그와 같은 흰구름도 없고 광목폭 넓이의 기둥같은 것은 볼 수 없었다. 나는 천천히 사라지는 두 폭의 구름기둥을 바라보면서 시계를 들고 아주 사라질때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두 폭이 한 폭으로 또 두 폭으로 갈라져 사라지기 시작하기까지 완전 현상이 4분 동안 지속하였고 남북으로 헤어져 아주 사라지기까지는 7ㆍ8분이 걸렸다.
나는 이상한 용기로 단번에 남은 오르막길을 기어올라 중바위 밑에있는 십자가 앞으로 해서 무덤에 이르렀다. 나는 숨도 헐덕이고 현기증이 이는듯 정신이 아물아물하면서 그만 무덤앞 잔디밭에 쓰러졌다.
비몽사몽이었는데 생각에는 처음 두 폭은 그분들이 혼인하기전 동정을 표시하고 한데 어울려 한 폭이 된 것은 혼인후 표면상 부부생활을 표시하고, 또 두 폭으로 갈라진 것은 순교하기까지 4년동안 동정을 보존했던 것을 표시함이라 생각하였다.
이런 생각이 들자 혼자 중얼거렸다.『거룩한 당신들의 전기를 감히 적어서 세상에 내어놓는다는 것이 너무나 외람하고도 황송스러워 몇 번이나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당신들이 전주의 전능을 빌어 내게 이 기현상을 보여주므로 내가 쓴 것을 인증해 주는줄 압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전주교구의 수호와 이보다 더 큰 기적을 보여주셔서 빨리 시복 시성되기를 간구하고 나서 내게는 죽는날까지 영육의 건강을 주시어 남은 순교사 연구에 항상 돌보아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사실 그때 나의 몸은 극히 쇠약하였는데 그때부터 17년을 지내는 오늘까지 루갈다의 돌보심으로 별로 병없이 건강을 유지하고 지나는 것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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