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평신도의 존엄성'
나는 포도나무요 당신들은 가지입니다(8~17항)
교황은 제1장에서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들어 신비로서의 교회 안에서의 평신도의 존엄성을 다룬다. 사실 성직자와 수도자와 함께 교회의 친교의 신비에 참여하는 평신도의 존엄성에 비추어볼 때, 지금까지 평신도의 신원을 정의함에 있어서「평신도는 성직자도 아니고 수도자도 아니다」라는 식으로 부정적으로 서술되어 있는데 대한 이의와 불만이 1987년 세계주교 시노드의 개회 벽두부터 제기되 바 있고, 이제 교황은 여기서 평신도의 신원을「긍정적」으로 서술하는 문제부터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에 교황은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우선 포도나무의 신비를 설명한다.
포도나무의 신비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는 모두 포도나무의 이미지를 이용하여 하느님의 백성의 신비를 표현한다. 제2차 바티깐 공의회의 가르침도 복음에 나오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이미지를 이용하여 교회는 포도나무임을 밝힌다(교회헌장 6항). 교회의 내적 성격을 강조하는 이러한시각에서 볼 때, 평신도는 단지 포도원 일꾼일 뿐만 아니라 포도원의 중요한 일부분이다. 평신도는 교회의 다른 모든 구성원들과 함께 참 포도나무인 그리스도께 붙어 있는 가지들인 것이다.
교회의 친교의 신비 속에 비추어 볼 때, 비로소 평신도의 신원이 알려지고 그들의 기본적 존엄성이 드러난다. 이러한 존엄성의 맥락에서 보아야 비로소 교회와 세계 안에서의 평신도의 소명과 사명을 정의할 수 있는 것이다.
평신도는 누구?
교황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긍정적으로 서술하기 위한 출발점은 세례성사임을 밝힌다. 신앙과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결합함은 교회의 신비안에 그리스도인으로 존재함의 원천이다. 이신비는 그리스도인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이요 평신도들의 모든 소명과 역동성의 기초이다.
평신도는 누구인가를 기본적으로 서술함에 있어서 우리는 세례성사로부터 나오는 그리스도인 생활의「새로움」의 특히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본적인 면을 분명히 염두에 두어야 한다.
(1)세례성사는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즉 그것은 세례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독생성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2)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난 세례 받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지체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로 서로 결합되어 있다.
(3)세례성사는 성령의 도유로써 우리를 영적 집으로 축성한다.
사제ㆍ예언자ㆍ왕직 사명에의 참여자
그리하여 세례받은 사람들은 바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사명, 즉 사제직, 예언자직, 왕직 사명에 참여한다. 제2차 바티깐 공의회는 이러한 참여에 대하여 심오한 가르침을 제시하고 있다. 교황은 모든 하느님의 백성은 그리스도의 이 삼중(三重) 사명에 참여함을 강조하면서, 평신도들에게 이러한 공의회의 가르침을 새로 읽고 이해를 새로이 하도록 권고한다.
사제요, 예언자요, 왕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삼중 사명에의 평신도의 참여는 세례성사의 도유가 그 원천이 되며 견진성사로써 더욱 발전하고 미사성제로써 실현되고 역동적으로 유지된다. 이 참여는 평신도가 교회의 다른 모든 구성원들과 한 몸을 이루는, 즉 친교를 이루는 정도에 따라 이루어진다. 즉 이 참여는 친교인 교회에서 나오는 것인 만큼 친교 안에 그리고 친교를 위하여 생활화되고 실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평신도와 세속성
그리스도인 생활의 새로움은 그리스도 안에 세례받은 모든 사람들의 평등성의 기초이다. 하느님 백성의 모든 구성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태어남에 따른 존엄성을 함께 하고 자녀되는 은총도 같고 완덕에로의 소명도 같다(교회헌장 32항). 세례성사에서 흘러나오는 동일한 존엄성으로 말미암아 평신도는 성직자, 수도자와 함께 교회의 사명에 대한 책임을 함께 하는 것이다.
그러나 평신도에게 있어서 세례성사의 이 동일한 존엄성은 성직자나 수도자와 구별되지만 분리되지는 않는 생활양식, 즉「세속성」이라는 특성을 지니는 것이다. 교회는「육화된 말씀」의 신비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내적 성격과 사명에 내재하는 진정한 세속적 차원을 지니고 있다. 사실 교회는 비록 이 세상에 속하지는 않지만(요한17, 16), 이 세상에 살고 있다. 교회는 인류를 구원하고 현세질서를 개혁하는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을 계속하기 위해 세상에 파견된다.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이 세속적 차원에 참여하지만 그 방법은 서로 다른 것이다.
평신도는 세속에 살고 있으며 세속에서 부름을 받아 세속의 온갖 직업에 종사하며 가정과 사회생활의 일상 환경 속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세상」은 평신도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신들의 소명을 수행하는「터전」이며 수단이다.
교황은 평신도들이 자신들이 세상에 처해 있는 위치를 버리라는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세례성사는 그들을 결코 세상으로부터 빼내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처한 세상의 상황에 알맞은 소명을 그들에게 맡기는 것이다. 평신도들은 세속에서 복음의 정신으로 스스로의 임무를 수행하며 마치 누룩과도 같이 내부로부터 세계성화에 이바지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러므로 평신도들에게 있어서 세상에서 현존하고 활동하는 것은 인류학적, 사회학적 실재일 뿐만 아니라 특히 신학적, 교회적 실재이기도 한 것이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평신도들이 처한 세상의 생활에서 당신의 계획을 드러내시고 그들에게 세속일에 종사하고 그것을 하느님의 계획대로 관리함으로써 하느님의 나라를 추구하도록 하는 특별한 소명을 부여하신다. 이러한 의미에서 평신도의 세속성은 시노드의 교부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사회학적으로만이 아니라 신학적으로도 정의되어야 한다.
聖化에의 소명
평신도의 존엄성의 완전한 의미를 고찰함에 있어서 필수적인 출발점은 교회의 신비가 끊임없이 요구하는 바인 성화에의 근본적인 소명이다. 성화에의 소명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맡겨진 기본적인 임무이며 교회의 신비로부터 나오는 부정할 수 없는 요구이다. 그것은 세례성사를 통한 그리스도와의 결함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요구이다.
따라서 평신도는 특히 자신의 고유한 사명인 세속 일에 종사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따르고 본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신도들은 일상의 가정, 직업 및 사회생활에서 성화되어야 한다.
성화에의 소명은 세례성사의 새로운 생활의 본질적 요소이며 따라서 평신도의 존엄성을 결정짓는 요소이다. 동시에 그것은 교회와 세계 안에서 평신도에게 맡겨진 사명과 긴밀히 연결된다.
성성(聖性)은 모든 이가 교회 안에서의 구원사명을 수행함에 있어서 기본전제이며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조건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평신도의 존엄성은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의 평등성의 원천이며「친교」의 정신을 보장하고 북돋아주고 일상생활현장에서의 교회로서 성성을 추구하는 평신도의 사도직과 사명의 역동적인 숨은 힘이다.
제2장
'평신도의 참여'
한 포도나무의 모든가지들(18~31항)
교황은 제2장에서 친교로서의 교회 생활에의 평신도의 참여의 문제를 다룬다. 교황은 여기서 특히 지난번 시노드에서 진지하게 검토된 바 있는 공의회 이후에 새롭게 대두된 평신도의 직무문제와 평신도운동의 문제들을 다룬다.
교회친교의 신비
그리스도와 세례 받은 모든 사람들은 포도나무와 가지로 상징되는 신비스런 친교로써 결합되어 있다. 이 친교의 생활이야말로 바로 교회의 신비이다. 교황은 친교로서의 교회에의 능동적 참여를 바탕으로 해야 비로소 평신도의 사명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고 밝힌다.
제2차 바티깐 공의회의 가르침의 기본 개념은 친교의 교회론이다. 친교로서의 교회의 실재는 통합적인 것, 「신비」의 중심 내용, 즉 하느님의 인류구원 계획이다. 따라서 교회적 친교는 단지 사회학적 또는 심리적 실재로서 이해하려고 해서는 충분히 파악될 수 없는 것이다. 친교로서의 교회는「새로운」백성, 「메시아적」백성이다. 이 새로운 백성을 그리스도와 그리고 자신들간에 결합시키는 유대는 살과 피의 유대가 아니라 세례받은 모든 사람들이 받은 성령의 유대이다. 교회적 친교는 더 정확하게는 살아서 움직이는 몸에 견줄 수 있는「유기적」친교와 비슷한 것이다. 사실 그것은 생활의 소명과 신분, 직무, 은사 및 책임의「다양성」과「보완성」을 특징으로 한다. 이 다양성과 보완성으로 말미암아 평신도 개개인은 몸 전체와의 관계에서 파악되며 몸 전체를 위해 전적으로 고유하게 이바지한다.
교회 안의 다양성과 단일성의 역동적 원리는 바로 성령이다. 교회 친교는 평신도들이 감사로이 받아들이고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생활해야 할 성령의 크나큰 은사이며, 이는 평신도들이 교회의 생활과 사명에 참여함으로써 실현되는 것이다.
평신도들은 교회를 위하여 자신들의 다양하고 보완적인 직무와 은사를 행사한다. 평신도가 행사하는 은사ㆍ직무ㆍ봉사는 친교 안에 친교를 위해 존재하며 모든 이를 위해 그리고 사목자의 지도 아래 서로를 보완한다.
직무와 은사
직무와 은사는 세례받은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건설하기 위해 교회의 구원사명을 위해 능동적이고 공동책임적으로 활동하도록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이다(교회헌장 4항).
직무에는 우선 신품성사에서 나오는 서품에 의한 직무가 있다. 이것은 역사 안에서 사도적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 직무는 봉사의 정신으로 모든 하느님의 백성을 위해 수행되는 것이다.
평신도들은 세례에 의한 신분과 자신들의 고유한 소명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에게 알맞은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사제직ㆍ예언자직ㆍ왕직 사명에 참여한다. 그러므로 사목자들은 세례성사와 견진성사 그리고 혼인성사에서 나오는 평신도들의 직무와 역할을 인정하고 증진시켜야 한다. 사목자들은 필요에 따라 교회법이 정한 바대로 교계적 직무와 관련되기는 하지만 실제로 성품(聖品)에서 나오지는 않는 직무와 역할을 평신도들에게 맡길 수 있다. 평신도들은 비록 독서직이나 시종직을 받지 않았더라도 교회의 필요에 따라 그리고 성직자가 부족한 경우에 말씀의 직무, 전례기도의 사회를 보는 일, 세례성사를 베푸는 일, 성체분배를 할 수 있다(교회법230조3항).
그러나 이러한 임무를 수행한다고 해서 평신도가 사목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시노드 교부들은 공의회 이후 평신도들의 능동적인 전례 참여가 촉진되어 왔음을 긍정적으로 평가함과 동시에「직무」라는 말이 지나치게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공통사제직과 교계적 사제직이 혼동되고 동일시되고, 교회법이 준수되지 않고 성직자「대리」의 개념이 임의로 해석되고 평신도가「성직자화」하는 경향이 생기고 실제로는 신품성사에 근거한 봉사와 유사한 교회 구조를 따로 만들어 내는 위험이 생기고 있음을 비판한 바있다.
바로 이러한 위험을 극복하기 위하여 시노드 교부들은 세례받은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는 교회의 사명의 단일성과 신품성사를 근거로 한 사목자들의「직무의 다양성」을 더욱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여 더욱 명확하게 표현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따라서 우선 평신도들에게 다양한 직무, 임무, 역할을 부여함에 있어서 성직자들은 세례를 기초로 시행하도록 최대한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사목자들은 객관적으로 그렇지 않거나 더 나은 사목계획을 통해 다른 대안이 있을 수 있는 경우에「긴급 상황」이나「필요에 따른 대리」를 쉽사리 남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평신도들이 전례와 신앙 전파와 교회의 사목구조에서 합당하게 수행할 수 있는 다양한 직무와 임무와 역할은 성직자들의 직무와는 달리 세속 안에서의 그들의 고유한 소명에 부합하도록 행사되어야 한다. 교계적 사제직과 동통 사제직의 본질적 차이, 신품성사에서 나오는 직무와 세례 및 견진성사에서 나오는 직무의 차이가 존중될 때 평신도에게 맡겨진 직무가 더욱 질서있고 효과있게 교회적으로 실천될 수 있는 것이다.
은사는 성령께서 교회 공동체를 건설하고 인류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 주시는 특별한 은혜이다.
은사는 그것이 참으로 성령께로부터 오는 은혜이고 성령의 진정한 인도로 행사되는 한 사도직의 활력과 그리스도의 몸 전체의 성성을 위한 매우 풍요로운 은총의 원천이다. 그러나 죄의 힘이 신자들과 공동체의 생활을 방해하고 어지럽히는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식별」이 필요하다. 은사의 진실성과 온당한 행사에 관한 판단은 교회의 사목자들에게 속하는 일이다(교회헌장12항). 어떠한 은사도 교회의 사목자들에 대한 순종을 면제하지는 않는다.
교회생활참여
평신도는 직무와 은사를 행사함으로써만이 아니라 그밖의 여러 방법으로 교회의 생활에 참여한다. 이러한 참여는 우선「부분교회」즉, 교구의 생활과 사명에서 실현되는 것이다.
평신도들은 부분교회에의 소속의식을 적극적으로 활성화함과 동시에「가톨릭(보편적)」정신을 더욱 굳건히 하여야한다. 그들의 활동은 지역 공동체에 머물러 있더라도 그 봉사의 영역을 확대하기 위한「보편적(가톨릭)」관신, 즉 전 세계에 흩어져있는 하느님의 백성이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한 관심 속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교구 사목협의회」의 설립이 필요하다. 사실 교구 차원에서 이 조직은 협력과 대화와 식별의 기본형태가 될 수 있다. 평신도의 이 협의회 참여는 폭넓게 그리고 한정된 방법으로 적용한다면, 자문과 협력 그리고 몇몇 경우에는 의사결정을 위한 지원을 넓힐 수 있는 것이다.
부분교회의 가장 직접적이고 눈에 잘 띄는 부분은「본당」이다. 교회가 지역적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은 바로 본당에서이다. 모든 사람들이 신앙에 비추어 바로 교회의「신비」자체가 현존하여 활동하고 있는 터전인 본당의 참뜻을 재발견할 필요가 있다.
본당은 조직이나 지역이나 건물이 아니라 한마음으로 결합된 형제적 하느님의 가정, 성찬적 공동체, 신앙의 공동체, 유기적공동체이다. 진정한 교회 친교의 관점에서 그리고 교회의 사명을 위한 깊은 관심에서 본당은 쇄신을 위한 노력이 더욱 긴요하다. 본당의 조직을 특히 평신도의 사목책임에의 참여를 촉진하도록 교회법이 허용하는한 최대한의 신축성을 다하여 적응시켜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평신도들이 사목자들과 함께 사목적 문제들을「전반적인 토의」를 통해 검토하고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는 공의회의 가르침(평신도 교령10항)「본당사목협의회」를 더욱 확신을 갖고 과단성 있고 광법위하게 인정함으로써 적절하게 구조적으로 발전시켜야한다.
한홍순
<교황청 평신도위원회위원ㆍ외국어대 상경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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