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는 1차 월북에서 밀봉교육을 받고 다시 남파됐다. 지령대로 간첩활동을 했다. 불안했다.
그러나 간첩활동은 순조로웠다. 바오로는 두 명을 포섭하는데 성공했다. 대단한 성과였다. 포섭한 두 명을 인솔해서 1차 월북때와 같은 방법으로 2차 월북에 성공했다. 바오로를 대접하는 환영은 대단했다. 그야말로 대대적인 환영이었다. 바오로의 마음은 마치 위대한 영웅이나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젠 죽어도 한이 없겠구나 하는 만족감에 순간적이나마 삶에 대한 깊은 보람을 느꼈다는 것이다.
바오로는 역시 인상에서 풍기는 것처럼 어리석었다. 마치 고무풍선처럼 부풀게 만드는 야단스런 환영이 양의 탈을 쓴 늑대의 흉계인줄을 바오로는 알리 없었다. 바오로는 그때 그 환영에 대한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백골이 진토되는 날까지 공산주의라고 하는 조국을 위해 몸바쳐 충성을 다하겠다고 몇번이고 다짐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몇 일이 지나지 않아 무엇인가 대단한 위험과 공포를 느끼게 하는 분위기를 피부로 느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세심히 상황을 관찰했을 때 이유가 있었다. 포섭해간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바오로에게 베푼 지나친 환영에 시기질투해서 바오로의 약점을 밀고했다.
바오로라는 사람은 당신네들이 기대하는 만큼 공산주의를 위해 생명을 바칠 정도로 철저한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바오로라는 사람은 공작금을 낭비해 가면서 빠에 서양춤을 추며 방탕했으며 부르조와적인 색채를 띠면서 공산주의 이념에 빗나가는 생활을 한 사람이다.
당신네들이 지나친 기대를 바오로에게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라는 내용의 밀고를 했다. 그때부터 그들의 바오로에 대한 태도가 일변했다. 결국 나를 이용할대로 이용하고선 나를 죽여 버리겠구나 하는 불길한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친다.
그러나 속으로 짐작하는 것 뿐이고 밀봉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끝마치고 3사람이 역시 남파되어 간첩활동을 했다. 그러나 바오로의 마음은 더 많은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는 생활이었다. 지령을 받고 다시 월북하게 된다면 그때는 나의 생이 끝장날 것이다 하는 예감만 계속 마음에 떠오른다.
『바오로 이젠 날씨가 점점 무더워집니다. 세상에서 바오로가 제일 불쌍하다고 보았는데 그 이유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고개를 숙인채 한참 있더니 입을연다.『신의 존재를 부인하면서 공산주의에 맹종했다는 사실 때문에 신부님은 저를 불쌍하다고 말씀하신 것이지요. 천주교에 대한 내용을 듣고 싶어집니다』 『하느님을 믿는 종교가 천주교입니다. 하느님의 존재를 의식하는 것은 인간만의 권리입니다.
내 육신에 깃들고 있는 정신작용이 하느님을 찾아 냅니다. 육신에 깃들고 있는 정신 즉 영혼이 있기 때문에 우주를 다 준다 해도 바꿀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위대한 가치도 상대적인 가치입니다.
바오로, 가치라는 측면에서도 가치의 서열이 있어야만 만물이 서로 구별되는 것입니다. 확인되고 경험되는 상대적인 가치 서열에는 인간이 가치의 정상을 이루는 것이 분명합니다.
인간이란 가치 서열에서 한단계 뛰어넘으면 궁극의 가치 즉 절대가치의 존재에 도달하게 됩니다. 바로 하느님의 존재인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현재 누리는 현실적인 삶이 전부라면 피조물 가운데 인간이 가장 불행한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고통을 예민하게 의식하는 동물입니다. 고통을 의식하면서 번민하는 상황만을 고려한다면 세상은 실제 고통의 바다밖에 되지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끝없는 행복을 얻고자 하는 한없는 희망 때문에 불행한 것이 아니고 행복합니다.
내일에 대한 희망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역사적으로 명백히 보증하신 분이 우리들이 구체적으로 믿고자 하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바오로, 오늘 또 시간이 다 되었군요. 다음 만날때까지 잘 계십시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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