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코시대의 종말은 스페인의 진로에 많은 문제점을 던져주고 있다.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특히 수세기를 거듭해온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로서 대교회 관계에도 적지않은 변화가 불가피하게 됐다. 과연 프랑코의 죽음은 스페인교회 향방에 어떠한 손익을 가져다줄 것인가? 한마디로 스페인교회는 금세기 뛰어난 가톨릭교 신봉자였으며 강력한 후원자인 프랑코를 잃었음에 틀림없다. 교회는 그가 지금까지 교회와 성직자들에 부여해온 특혜를 앞으로도 계속 보장받을 수 있을까?
프랑코와 교회가 불가분의 인연을 맺게된 것은 1930년대의 스페인 내란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6년 2월 사회ㆍ공산주의자 및 대다수의 반교회 무정부주의 자들로 구성된 인민전선 공화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스페인 가톨릭은 위기에 직면했다.
스페인 전역에 걸쳐 교회ㆍ수도원 및 교회 재산들이 약탈당하고 파괴되는가 하면 수많은 성직ㆍ수도자 그리고 평신지도자들이 무참히 죽어갔다.
바로 이 무렵 프랑코는 군인들과 팔랑헤 당원 군주제주의자들 및 그의 우익세력을 규합, 공화정부 타도를 선언했다.
당시 프랑코는 국수주의(國粹主義) 투쟁을 하나의 성전(聖職)으로 생각했으며 스페인 주교들은 그의 입장을 강력히 지지하고 나섰다.
1936년부터 3년간 계속된 이 내란으로 수명의 주교들을 포함 6천8백여 명의 사제들과 3백여 명의 수녀들 그의 수많은 평신도들이 희생됐다.
전쟁이 끝난후 가톨릭의 절대적인 후원이 승리의 결정적 요인이 되었음을 감사한 프랑코는 먼저 공화정부가 제정했던 반교회 법을 페지시키고 교회 신학교 기타 교회건물 복구에 최대한의 원조를 아끼지 않았다.
정치적으로는 전체주의적 체제를 채택, 민주주의의 모든 흔적을 뿌리뽑기 시작했으며 정당과 자유노동 결합을 치외법권화하고 언론을 폐쇄시켰다. 이와 함께 프랑코는 가톨릭교회를 국가를 지탱케하는 기둥들중의 하나로 삼았다.
이 같은 기초위에서 출발한 프랑코와 교회간의 관계는 급기야 1953년 바티깐 시국과 스페인간 정교조약을 체결함으로써 프랑코는 공공연히 교회의 통치권까지 한 손에 쥐게됐다.
정교조약은 과거 16세기부터 내려온 국가의 가톨릭 주교 임명권을 재인정하고 가톨릭을 국교로 승인하는 동시 교회와 성직자들에게는 특혜를 베풀었다.
성직자들에 대한 특혜는 국가가 사제들에게 월급을 지급하고 군 복무를 면제시켜주며 특히 자기 주교의 동의 없이 성직자는 체포되지 않는것 등이다. 이외에도 정교조약은 모든 학교와 대학들에 의무적으로 종교교육을 실시하며 이혼을 금지하고 교회결혼만을 유일한 합법적 혼인으로 인정했다.
정교조약 이후 성직자들은 국가가 부여해준 특권을 마음껏 누리며 프랑코의 통치에 순응해 나갔다. 프랑코의 성전과 그가 스페인의 가톨릭 부흥에 지대한 공헌을 했음을 인정한 성청은 1954년 평신도에게는 가장 영예로운「그리스도 훈장」을 수여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전세계를 쇄신의 물결로 출렁인 제2차「바티깐」공의회는 스페인이라 예외일 수는 없다.
과거엔 엄두도 못낼 프랑코를 비판하는 소리가 교회 내부에서 일기 시작했다.
교회의 진정한 사명이 무엇인가를 놓고 스페인교회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사회정의 인간의 자유회복 노동조건 개선 피압박자들의 해방을 부르짖는 층이 있는 반면 종전의 안일무사를 계속 고집하는 층으로 교회 내부는 분열을 거듭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71년에 개최된 세계 주교 시노드는 스페인교회로 하여금 프랑코의 정치ㆍ사회ㆍ경제정책 전반에 걸쳐 비판을 가속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마침내 71년 9월 스페인교회는 전국주교 신부 합동회의를 열고 교회가 국가와의 관계를 끊고 가난한 자들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요지의「교회쇄신안」을 마련했다.
이 안은 성직자의 정부관직 및 그밖의 특혜를 과감히 포기한 반면 국가의 주교 임명을 중지토록 촉구했다.
뿐만 아니라 정치단체와 무역동맹의 자유로운 결성을 포함한 인간 기본권의 회복과 교육 결혼 기타법률의 개정 등을 강력히 요청했다.
이듬해 3월 스페인 주교회의는「교회쇄신안」을 찬성 51 반대 10으로 가결하고 프랑코 예속에서의 탈피를 보다 강력히 추진해나갔다. 또 다시 73년 1월에는「교회와 정치세력」이란 교서를 발표하고 쇄신안의 실천을 거듭 천명했다.
교회가 움직일 때마다 프랑코는 당황의 빛을 더해갔다.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을 비판하는 자는 용납할수 없다고 몇번씩이나 경고했다. 심지어 교회와 성직자에 대한 특혜를 중단하겠다고 위협했다.
이러한 악순환속에서 이렇다할 대교회 관계의 매듭을 짓지못한채 프랑코는 갔다. 얼핏 보면 프랑코가 불평해온 것처럼『교회가 그를 배신한 입장』일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배신이라기보다 스페인교회가 오랜 동면에서 빛을 찾아 깨어난 것으로 봐야할 것같다.
늦게나마 스페인교회는 교회의 참된 사명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깨닫고 그 길을 가기위해 안간힘을 쏟고있다.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을 교회와 정부와의 관계를 어떻게 매듭지어나갈 것인지-. 프랑코의 후광을 업고 새로이 권좌에 오른 국왕 카롤로스에게 온 세계 가톨릭의 관심이 집중되는 소이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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